아테네 올림픽 남자 기계체조 개인종합 부문 금메달리스트인 폴 햄이 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메달 반환 거부의사를 분명히 함에 따라 국내 네티즌들의 다수는 공분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폴 햄 발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규정에 따라 내가 챔피언이 아니라는 결정이 내려진다면 메달을 돌려주겠지만, 국제체조연맹의 양보 요청에는 따를 수 없다."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지만, 나는 폴 햄이 언급한 그 '규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류를 따라가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라 판단한 언론들 사이에서 묻혀진 기사 하나를 보자.
오심 왜 보고만 있었나
ＦＩＧ 관계자는 “이의가 있으면 다음 연기가 끝나기 전에 심판에게 이의를 제기해야지 그 다음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표팀 이주형 코치는 “다음 연기를 하기 전에 항의를 하면 벌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ＦＩＧ의 15분 이내 서면 항의규정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이의를 제기하는 시간과 방법에 대한 제한은 이미 체조연맹에서도 오심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 처리방안을 제시해 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런 규정이 없다면 경기가 끝난 후 누가 언제 무엇을 문제삼아 판정에 불복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에서 올림픽이 종료된 후에도 메달 색깔과 주인공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함이다.(다른 말로 '권리위에 잠자는 자'를 배제한다는 뜻이다.)
더욱이 위 기사에서 '벌점을 주는 줄 알고 항의를 하지 않았다'는 이주형 코치의 발언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경기 직후 그의 인터뷰를 보면 경기 결과에 대해 하등의 하자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주형 코치, "판정 문제 없다"
오심이 드러나자 체조연맹은 규정에 따라 해당 심판진을 전원 자격정지하였다. 그런데 우리 대표단은 무엇을 했는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지금에 와서 한다는 소리가 '폴 햄은 금메달을 양보하라'는 것이다. 납득이 안된다. 한 술 더 떠서 부정한 방법으로 김동성 선수의 금메달을 앗아간 안톤 오노와 비교하여 그를 인격적으로 비하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올림픽 정신'이니, '스포츠맨십'이니 해서, 폴 햄이 자청해 메달을 돌려준다면 칭찬받을 만한 것이나, 이의없이 규정에 따라 획득한 메달을 이제와서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또 그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는 건 온당치 못하다. 설령 메달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무지함으로 제 밥그릇을 잃은 어린아이의 떼씀과 간청에 못이긴 유력단체의 압박에 밀려 빼앗기다시피 하는 것이지 어떻게 '양보'가 될 수 있겠는가. 올림픽은 아이들 장난이 아니다. 체계와 조직과 규정에 의해 꾸려지는 세계적인 대회가 무슨 아이들 구슬치기에서 금 밟고 던졌다고 짜증내니까 맞춘 구슬 없던 걸로 하고 대충 원래 자리로 갖다 놓고 다시 치기로 하는 놀이 수준이 아니란 말이다.
세상에는 오심이 명백히 드러난 이상 두말없이 메달을 내놓는 것이 스포츠맨쉽이라 보는 우리 같은 사람들도 있고, 자신의 책임을 방기한채 정당한 절차를 무시하고 오직 여론에만 읍소하는 것을 비스포츠맨쉽이라 냉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가 옳다 말하겠는가.
***** 리디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 + 카테고리유지되었습니다 (2004-09-10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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