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기독교인을 위한 영화입니다. 딱 저죠. 마지막 에밀리의 편지를 읽는 대목에서는 이 영화를 <엑소시스트>가 아니라 거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계열로 분류하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입니다. 이건 뭐, 교회에서 단체 관람을 해야할 영화예요.-_-;; 그런 이유로 문화의 저변에 다분히 기독교 사상이 깔린 미국에서는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질지 몰라도, 우리 나라에서는 다소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호러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법정 영화와 호러 영화의 결합을 시도하다 이도 저도 아닌 채로 끝을 맺었다고 말하는데, 이 영화는 엄밀히 말해 법정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 속에서 '재판'은 단지 에밀리 로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을 조금 더 공포스럽고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기 위한 설명 도구에 불과합니다.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 앵글을 달리하여 찍고 편집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재판 과정 중에 뒤집고 뒤집히는 극적 반전이 없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단적인 예로,
의사와 의사가 가지고 있던 녹취 테이프의 등장도 특별한 반전을 노렸다기 보다는, 그때까지 전혀 묘사되지 않은 에밀리의 엑소시즘을 화면에 보여주기 위한 매개물이었죠. 그저 공포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이 영화를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엑소시즘 부분에 대해 몇 자 덧붙이자면, (가톨릭 쪽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개신교 안에서 귀신 들리거(빙의)나 귀신을 쫓는(엑소시즘) 모습은 생각처럼 희귀한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멀쩡하게 교회 여름 수련회를 떠난 한 자매님이 교회당 안에서 귀신 들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개신교에서 이렇게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은 매우 싱겁습니다. 귀신을 꾸짖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러갈 것을 명령하는 것이죠. 따라서 누군가가 행하는 '귀신 쫓기'가 성경적인가 성경적이지 않은가를 판별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성경적인 '귀신 쫓기'에는 폭력이나 학대가 개입되지 않습니다. 귀신은 '(성경) 말씀'으로 상대하는 영적인 존재이며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만 쫓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귀신을 쫓는 엑소시즘이 실패하게 되는데요, 누가복음을 보면 같은 상황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남은 제자들에게 한 부모가 귀신 들린 외아들을 데리고 찾아옵니다. 그 아이를 묘사한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귀신이 그 아이를 사로잡으면, 그 아이는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또 귀신은 아이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입에 거품을 물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상하게 하면서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누가복음 9장 39절, 소리를 지르고 경련을 일으키고 자해를 했다는 점에서 에밀리 하고 똑같군요)"
하여간 제자들은 그 아이에게서 귀신을 내쫓으려 애쓰지만 계속해서 실패하게 되죠. 나중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그것을 두고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니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려웠던 거지요. 귀신은 그 두려움의 빈틈을 파고듭니다. 앞에 말씀드린 수련회에서 귀신들린 자매 얘기로 돌아가서, 처음에 그 자매가 이상한 행동 - 방바닥을 맴돌며 침을 뱉고 저주의 말을 퍼붓는 - 을 보일 때 한 형제가 용기를 내어 우물쭈물 물러가라고 권유;;를 했더니, 그 자매가 (물론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로) "니가 감히 나를???" 하고 달려들더랍니다. 그 형제가 국가대표 유도 선수였는데 울면서 달아났다는 이야기가 그쪽 청년부에선 전설처럼 남아있다고 하더군요. 결국 목사님이 소식을 듣고 달려가 귀신을 야단치고 쫓아내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여담인데, 귀신은 자신의 정체를 잘 밝히지 않습니다. 흔히 빙의된 사람들(속의 존재)이 자신을 죽은 사람의 이름을 대곤 합니다. 특히 그 사람의 가족이나 친척 중에 죽은 사람이 있으면 영락없이 그 사람의 이름을 대죠. 심한 경우에는 그 사람의 목소리까지 흉내내기 때문에 곧이 곧대로 믿는 이도 많습니다만, 귀신 쫓는 사역을 경험해보신 분들은 하나같이 '거짓말'이라고 단언하십니다. 가족이나 친척으로 가장하면 사람들이 쫓아내기 보다는 측은히 여기고 환영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귀신을 쫓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그 정체를 분명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신부가 에밀리를 향해 '너의 정체를 밝히라'고 수없이 외치지만 에밀리는 그 질문을 자꾸 회피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실화를 바탕(담당 변호사의 소송 관련 논문)으로 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대단히 사실성 있는 묘사죠.
영화와 같은 매체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특정 메시지를 호소하는 효과적 방법 중 하나는, 그 메시지를 뒷받침 하는 근거와 지지자를 부당한 방법으로 제거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부당한 과정에 대한 반감이 그 대척점에 선 메시지에 대한 호감으로 투영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엑스파일'을 들 수 있겠네요. 그간 (보수)기독교계는 이런 형식의 매체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나름의 문화 대응 사역을 해왔습니다만, 이 영화는 그러한 대응이 수동적인 반감에서 그치지 않고 얼마나 능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정말...... 기독교 영화예요. -_-;;;;
명 오늘 
명
PRINT Text
PRINT 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