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자전거여행 1일차 : 목포 -> 함평
2004자전거여행 2일차 : 함평 -> 부안
2004자전거여행 3일차 : 부안 -> 해미
2004자전거여행 4일차 : 해미 -> 당진
2004자전거여행 5일차 : 당진 -> 서울
5. 2004년 7월 15일 (3일차)
01:00
정미소를 무너뜨릴 듯한 기세로 비가 퍼부었다. 슬레이트 지붕에 비가 퍼부으면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시끄러워 잠이 깼다. 텐트 창을 열고 도로쪽을 봤는데, 비가 숫제 대야로 푸는 것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마침
덩열군한테 메시지가 왔다. 엄청난 폭우란다. 그쪽 사정 알만했다. '강우량 기록 갱신한 곳 꽤 될 듯....'이라고 답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새벽, 진도 지방에서는 시간당 강우량으로는 측우 사상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한다.)우야간에 잠은 자야지....
05:40
컵라면을 먹고 텐트를 걷다. 빗줄기가 많이 가늘어졌다.
양말과 조깅화를 신었다. 어제처럼 비가 오는 날씨에는 차라리 샌달보다 이게 나을 것이다. 부안군 백산면 출발.(빨간색 화살표) 자고 나니 무릎이 한결 낫다. 오른손은 여전히 욱씬욱씬. 부안군 백산면 출발.
06:15
김제시 통과. 구름이 오락가락 했다. 구름 사이로 비친 햇빛이 김제 시내를 비스듬히 비췄다. 아직 기지개도 켜지 않은 듯한 고요함.....
06:43
동진강 일대의 평야를 달리다. 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 사진을 찍었다. 어제까지 하도 언덕이 많아서 과연 이런 곳을 곡창지대라 부를 수 있으려나 했는데, 지금 바라보는 풍경은 피부로 실감이 된다. 이렇게 탁 트인 땅을 보기도 쉽지 않다.
빗발이 제법 굵어진다. 편도 1차로 국도변에 흙이 많아 맘 놓고 속력을 높이기 곤란하게 되었다. 대부분 굵은 알갱이 흙이지만 간혹 진흙이 예고없이 나타나는데 무심코 밟았다간 낭패다. 흙받이 같은 건 소용이 없다.
해가 뜬 날씨지만 먹구름이 가득하고 비도 많이 내리기에 경광등 두 개를 모두 켜 두었다. 안전이 제일이다. (사고 내놓고 이런 말 하니 이상하다;;)
노란 비옷 입은 사람 둘이 탄 택트가 내 옆을 휭 지나갔다. 간격이 멀어지며 사라지나 했더니 저어어기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한 사람이 내린다. 간이정류장 건물 안에서 비옷을 주섬주섬 벗는데 청바지와 블라우스를 차려 입은 젊은 아가씨였다. 딸 아이 출근길에 비 맞고 구두 버린다고 직접 정류장까지 아버지가 태워다 주신 것이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더니 딸 아이가 벗어 준 비옷을 챙겨 갔던길을 되돌아 오는 오토바이. 부모 사랑이란...... :)
비가 많이 내려 핸드폰을 꺼낼 수가 없었으므로 시간을 확인할 수는 없었고, 대략 일곱 시쯤에 김제 벽골제를 지나쳤다. 들러 볼 엄두도 못내다. 비가 문제다 비가 문제.
대야면을 지나는데 별안간 뒤가 급해졌다. 휴게소가 있을 곳도 아니고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가 파출소를 발견했다. 건물 입구에 경찰 아저씨 몇 분이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자전거를 세우자 주위의 이목이 집중됐다.
"저기...... 화장실 좀 사용해도 될까요?"
그러자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분이 두 손을 짝 부딪히며 말했다.
"아암! 써야지! 쓰라구 만들어 논 건데 써야하구 말구!"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려다 비도 오고 귀찮기도 해서 다시 물었다.
"저... 화장실에 휴지도 있나요?"
"이 사람아. 휴지뿐이겠나!"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들어가서 말뜻을 알았다. 국도변 휴게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화장실 시설에다 좌변기에는 무려... 무려....
웅진 코웨이 비데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_-* 비좁은 자전거 안장에 시달린 엉덩이를 위해 물온도 조절해가며 각종 기능을 체험해보고 온풍으로 뽀송뽀송 말려도 주었다.
군산경찰서 대야지구대 파출소 아주 맘에 들었다.
일을 보고 나오자 경찰 아저씨들이 한 마디씩 하신다. 비가 많이 오면 어디 한데서 고생하면서 자지 말고 가까운 파출소를 찾아 보란다. 대야 지구대에도 자전거 여행하는 학생들이 곧잘 자고 간다고. 자전거를 끌고 건물을 나서는데 덩치가 산 만한 경찰 아저씨 한 분이 당부 말씀하신다.
"안전운행 혀~!"
11:00
금강 하구둑을 건너다.
무슨 설명 없냐고? 비는 오고 바람은 엄청 불고 그랬다. 뭘 기대하는 건가? -_-;; 비 내리는 날 자전거를 달리면 분명해지는 게 하나 있는데 하반신이 거의 걸레가 된다는 거다. 흙이 튀는 게 아주 사람을 몰골로 만들어 버린다. 여러분 깨끗이 빨아 말린 흰 면티를 입은 다음, 자전거 타고 물웅덩이를 신나게 지나가 보시라.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그런 거를 몇 시간 반복한다고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를 게다. 그거 피하려면 시속 5km 이하로 거북신공을 발휘하면 된다만.....-_- 가능할 턱이 있나.... 금강 하구둑 건너면 조형물이 하나 나오고 조금 더가면 버스정류장이 구석에 하나 있는데 거기서 버스를 기다리던 승객들이 날 측은하게 쳐다보던게 기억 난다.
서천쯤에서 밥을 먹을까 하다가 하반신이 하도 지저분해서 지금은 그냥 연양갱이나 두어 개 먹고 이따가 휴게소 나오면 화장실에서 좀 씻기도 하고 한 다음, 식당에 들어가자 생각했다. 그러고서 달리는데 이넘의 휴게소가 좀처럼 나오지가 않는 거였다. 하는 수 없이 그냥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서 밥을 사먹자 생각했는데 조금 번화하다 싶은 곳에서 찾은 식당은 하나 같이 신발 벗고 들어가는 식당이었다. 흙투성이로 들어가 앉을 수는 없으니 계속 달렸다.
13:10
서천부터는 자잘한 언덕이 계속되었다. 비는 거의 그쳤고 짐을 덮은 비닐을 자동차 호루처럼 둘둘 말아 묶었다. 비인면쯤에서 작은 사고가 있었는데, 진흙탕을 피하려고 핸들을 꺾다가 자전거가 미끄러져 넘어졌다. 별 것 아닐 뻔도 했는데 하필이면 넘어진 곳이 피하려던 그 진흙탕이었다. 자전거 하며 왼몸을 중심으로 온통 시커먼 진흙 칠갑이 되어버렸다. 식당 밥은 다 먹었구나 생각했다.
보는 사람 없나 둘러보고(소심쟁이-_-;;;) 타월 하나를 꺼내 몸을 닦아냈다. 시궁창 냄새가 났다. 배도 고픈데 몸까지 진흙 투성이가 되고 보니 서글픈 맘이 되었다. 다시 자전거를 탔는데 왠지 뒷바퀴에 바람이 좀 빠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 맘이 그렇다. 한 번 그런 거 같으면 계속 그런 것 같애 보인다. 타이어 바람이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어쩐지 속도도 잘 안 나는 것 같고 페달질도 더 힘들어진 것 같고, 진흙을 덮어썼으니 기어에도 흙이 먹어들어가서 뻑뻑해진 듯 했다. 의욕 0%........ 내일은 출발하기 전에 바람을 좀 넣어야겠다.
뭔가 국면 타개책, 기분전환이 필요했고 그래서 들어간 곳이 시골 슈퍼였다.(초록색 화살표) 그 슈퍼 옆에 수돗가가 있었는데 양해를 구하고 좀 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사정을 설명드렸더니 퍼올리는 물이라 먹지만 않는다면 양껏 쓰라시는 거였다. 오홋~~ 금새 기분이 좋아졌다. (이넘의 변덕은.....)
애시당초 자전거만 대충 씻으려 하다가 눈치를 보아하니 맘도 좋은 분들인 것 같아 숫제 짐을 죄 풀어내리고 아예 세차를 해버렸다. 그리고 웃통과 신발 양말까지 벗어제끼고 샤워까지 하는 신세를 졌다. 그러고 나서 벗어둔 양말 - 안에도 진흙 투성이였다 - 을 빨고 있는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추운데 고생한다며 뜨끈뜨끈한 블랙 커피를 한 잔 주셨다. 밥도 안 먹은 빈속인데도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들이키니 온몸이 훈훈해지는 것 같았다.
기념인데 사진 한 장 찍으시죠, 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아주머니는 챙피하다고 도망가시고 주인 아저씨만 씨익 웃으신다. 나중에 보내드릴께요, 하고 주소를 받아적었다. 거기가 웅천읍 두룡1리 마을회관이란다. 지금 생각해보면 컵라면이라도 하나 사드리는 건데 경황이 없었다.
두룡1리 마을회관에서 다시 출발할 때는 기분이 아주 업! 업! 되어 있었다.
6. 내친 김에 해미까지
15:46
가볍게 페달을 저어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가는데 인적이 드물어야 할 곳에서 한바탕 떠들썩한 기색이 느껴졌다. 시골 동네 골목 - 지명상으로 '읍내'라고 함 - 을 틀자 우루루 나타난 노란옷 입은 천사들의 물결! 바로
2004 대학생 국토대장정팀이었다.
박카스에서 주최하는 대학생 국토대장정은 1998년부터 전국을 다양한 길로 답사해오고 있었다. 이번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도 이 대장정팀의 일정이 나와 겹치는 것을 보고 혹시라도 도중 어느 곳에서인가 마주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치 않은 곳에서 이렇게 맞부닥쳤다. 마침 휴식시간이었는지, 전구간의 2/3를 걸어서 온 그들은 작은 마을 공터에 삼삼오오 앉아 피로를 풀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곤 몇몇 팀원들이 손을 흔들며 '수고하세요'하고 인삿말을 잊지 않았다. 가볍게 목례만 하고 지나쳤다가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을 깨닫고 멈추어 서서 몇 장 찍었다.
16:05
보령시내 도착. '시내 진입'이라 적으려 했지만 작은 도시라 진입할 시내가 따로 없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아직 점심도 먹지 못했다. 흙탕에 뒹군 것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지금껏 지나쳐온 곳들 중에 보령시내는 꽤 번화한 곳이었으므로 두리번 거리다 깔끔하게 꾸며진 분식집 하나를 찾아 들어갔다. 순두부찌개를 시켜 먹었다. 수첩을 꺼내 지나 온 일정을 적고 있는데 점원이 다가와 말을 건다. 핸드폰을 집어 들고 이쁘다며 만지작 거린다.
다시 출발.
거리가 애매했다. 분식집에서 지도를 놓고 머리를 굴렸는데 해미까지 가기엔 멀고, 홍성까지 가기엔 가까웠다. 그래도 일단 달려봐야 안다. 지도상의 거리만으로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자동차가 아니라 자전거이기에 몸이 지쳐간다는 점도 고려해야 했다.
19:30
홍성 도착.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해가 거의 넘어가 전조등을 켤까 말까 할 무렵이었다. 아침에 비가 그친 후로 땅이 말라서 그런지 부쩍 속도가 빨라졌다.
21번 도로와 29번 도로는 홍성시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음에도 편도 1차로밖에 되지 않았다. 21번 도로를 빠져나와 29번 도로로 접어들기전 코너에서 농협 하나로마트에 들렀다. 2리터 물과 껌을 사다.
다시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었다. 가로등도 없는 도로가 계속 되었다.
20:50
이 시간이 되면 초조해진다. 잘 곳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길을 전조등 하나에 의지해 달리면서도 눈은 길 양편을 살피느라 분주하다. 어제처럼 너른 차양이 달린 정미소라도 하나 나오면 좋겠다 싶었다. 깨끗하고 반듯한 원두막이라도 괜찮았다. 달리다가 원두막을 하나 발견하긴 했는데 성긴 나뭇가지로 뼈대를 만들고 짚으로 지붕을 엮어 너무 허름했다. 지나칠까 말까 망설이다 못내 미련이 남아 자전거를 세워두고 여기 저기를 살펴보다 온통 왕거미투성이인 것을 알고 기겁을 했다. 싫다 싫어!
또 한참을 달리다가 언덕 너머에 불빛의 군락을 느꼈다. 벌써 해미인가 의아해 했는데 고개를 넘어보니 해미는 아니고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29번 국도를 가운데에 두고 길가로 집들이 주욱 늘어섰는데 그게 마을의 전부인, 영화에서나 볼 듯한 소박하면서도 괴이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데자뷰처럼
작년 여행에서 서석면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또다른 한 고개에서 정자를 발견했다. 생긴 것은 꼭 고속도로 휴게소 남은 자투리 땅에 겉멋으로 지어둔 것 같아서, 주변에는 국기게양대 같은 것도 있었고 바닥엔 잔디와 잘 다듬어진 관상수들도 심겨져 있었다. 하지만 말했듯이 정자의 생긴 모양이 지나치게 장난감 같아서 안에다 텐트를 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입맛을 다시며 다시 자전거에 올라탔다.
내리막길에서도 눈은 바삐 잠자리를 찾았다. 왼쪽으로 휙하고 지나간 폐가에서 잠시 멈추어 하룻밤 묵어갈까 고려해봤다. 하핫.... -_-;;; 뭐라도 나올 듯한 흉흉한 분위기 때문에 그만 두었지만...;;;
상황은 더 나빠져서, 하필이면 그 무렵부터 비가 후두둑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려도 보통 오는 게 아니라 아주 폭우 수준이었다. 누가 비를 몰고 다니는 아이 아니랄까봐, 가는 곳마다 내려도 너무 내리는 것 같다. 이건 무슨 기우제가 따로 필요가 없을 정도니깐.
텐트
혼자 떠나는 자전거 여행의 최대의 적은 '짐의 무게'다. 여러 명이면 같이 쓰는 물건을 나누어 짊어질 수 있지만 혼자라면 그 모든 것을 한 명이 싣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텐트도 필요최소한의 기능, 즉 방풍과 방수만을 지원하는 초경량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왼쪽의 자카나 텐트는 스펙상으로는 2~3인용이지만 밤에 짐을 들여놓고 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딱 1인용으로 적당하다. 2명 자면..... 싸움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연인 사이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므흣... (잠시 행복한 상상을;;;;) 암튼, 2.78kg의 경량에다 전용가방에 넣으면 길이 50cm, 폭 10cm 밖에 되지 않으므로 운반하기에 딱 좋다.
다만, 가격이 4만원도 되지 않는다는 점을 유의하시길. 겨울철 산행에 이걸 들고갔다간 동사하여 다음날 뉴스에 오르기 딱 좋으며, 천이 굉장히 약한 소재라 거칠게 다루면 1회용이 되는 수가 있다.
(이미지 출처는 인터파크)
22:00
물에 빠진 새앙쥐 꼴로 해미 도착.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밥을 먹어야 했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허름한 순대국밥집이 하나 영업을 하고 있었다. 막 장사를 접을 무렵 같은데 주문을 받는다. 곧 상에 오른 순대국밥이 맛있게 생기긴 했는데 도무지 입안에 넘어가질 않았다. 혀도 깔깔하고 배가 고픈 것 같은데도 제대로 넘기질 못했다. 추운데 비를 맞고 너무 떨어서 그런가 했다. 주인집 딸래미로 보이는 작은 계집아이가 온돌 바닥 위에서 몸을 뒹굴뒹굴 거리며 내 눈치를 본다. 언제 장사 끝내고 엄마랑 집에 같이 들어가나 하는 표정이었다.
음식을 반이나 남긴채 모자를 다시 눌러쓰고 여전히 폭우가 쏟아지는 길거리로 걸어나왔다. 주변 상가는 칠흑같은 어둠속에 묻혀있었고, 빗소리만 요란했다. 어디로 가야 하나...... 길도 모르는 동네를 여기 저기 맴돌았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할인매장 건너편의 카센터였다. 정미소가 그랬듯 널찍한 차양이 있어 비를 피할 공간이 되었다. 내 눈을 끈 것은 카센터 오른쪽 구석에 달린 화장실이었다. 웬 일인지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을 열어 보니 타일로 잘 발라진 수세식에다 수도를 받아 쓸 자리도 꽤 널찍했다. 잘 됐다 생각하고 카센터 유리창에 마킹된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젊은 목소리의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아, 실례합니다. 카센터 사장님이시죠?"
"네, 그런데요."
"제가 자전거 여행을 하는 대학생인데요, 지금 막 해미에 도착했는데 비가 많이 와서요. 사장님 카센터 앞에서 하룻밤 비 좀 피해가도 될까 해서요."
"대학생이요?"
"네,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언제 가는데요?"
"일찍 출발할 겁니다.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네, 그럼 있다 가세요."
"아유,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요...."
"네?"
"카센터 보니까 화장실이 있던데 제가 좀 써도 될까요?"
"아, 네, 쓰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깨끗이 쓰겠습니다."
"혹시 몰라서 그러는데, 셔터문에 기대지 마세요. 쎄콤 출동하거든요."
"아, 네. 알겠습니다."
기분이 좋았다. 묵어갈 곳을 구한데다, 몸을 씻을 수도 있다니!
바로 텐트를 치고 짐을 풀었다. 사방이 어두운지라 혹시 자동차가 유턴하러 멋 모르고 진입하면 곤란하므로 텐트 꼭대기에 경광등을 옮겨달았다. 어제 정미소에서도 그렇게 했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 시원하게 샤워를 했다. 날이 춥고 비가 오던터라 시원하다기 보다는 시려울 정도였지만 씻을 수 있다는 사실에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친 김에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빨래까지 하고 텐트 위에 널었다.
마음이 푸근해져서 길 건너 할인 매장에 가서 새우깡 한 봉지와 콜라를 한 캔 사왔다. 텐트 안, 따뜻한 모포를 두르고 힘든 가운데 또 하루를 무사히 마감하게 해주심을 감사드리며 하루를 정리했다.
일 평균속도 : 13.9km/h
일 최고속도 : 46.1km/h
일 주행시간 : 11시간 8분 43초
일 주행거리 : 155.86km
누적 주행거리 : 388km
어제보다 50% 가량 늘어난 거리를 달렸다. 갈수록 평지가 많아지고 속도가 붙는 것 같다. 어제 다치지만 않았다면 더욱 많은 거리를 달렸으리라. 샤워할 때도 그대로 두었던 압박붕대를 풀렀다. 하루종일 빗물에 불어 흉하게 퉁퉁 불어 있었다. 벌어진 상처 틈새로 핏기가 보였다. 감염될까 걱정되어 알콜로 깨끗이 닦아내었다. 그 고통은 어제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고나서 반창고를 새 것으로 갈아 붙였다. 누운 채로 전등으로 지도를 비추며 내일 달릴 길을 살폈다. 내일은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3일차 쓴 돈
점심식사 : 3,500원
저녁식사 : 4,500원
생수 + 껌 : 1,650원
처음에 대충 정한 여행경로 (1.2MB)
최종 여행경로(위성사진, 3.4MB)
2004자전거여행 1일차 : 목포 -> 함평
2004자전거여행 2일차 : 함평 -> 부안
2004자전거여행 3일차 : 부안 -> 해미
2004자전거여행 4일차 : 해미 -> 당진
2004자전거여행 5일차 : 당진 -> 서울
명 오늘 
명
PRINT Text
PRINT 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