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자전거여행 1일차 : 목포 -> 함평
2004자전거여행 2일차 : 함평 -> 부안
2004자전거여행 3일차 : 부안 -> 해미
2004자전거여행 4일차 : 해미 -> 당진
2004자전거여행 5일차 : 당진 -> 서울
7. 2004년 7월 16일 (4일차)
06:20
일어나다. 어젯밤보다는 덜했지만 비는 계속해서 주룩주룩 내렸다. 널어놓은 빨래가 말라있을리 만무했고, 젖은 속옷과 젖은 겉옷, 젖은 양말과 젖은 운동화를 신는 기분은 참 구질구질했다. 이른 아침인데 할머니 두 분이 지팡이를 짚고 신기한듯 쳐다보다 가신다.
06:40
자전거 위에 짐을 다 꾸리고 나서야 바람 넣는 걸 깜빡했음을 깨달았다. 이런 낭패가.... 안그래도 휴대용에 싸구려 펌프라 바람이 잘 들어가지도 않는데 짐을 싣고 펌프질 하는 건 역부족이다. 모르겠다. 그냥 출발하기로 한다.
해미읍내에서 램프를 타고 국도로 올라섰다. 국도 규모가 꽤 크다. 왠만한 고속도로 크기다. 도로 호흡이 길어서 내리막도 은근히 길게 내려가고 반면 오르막도 은근히 길게 올라간다. 달리기엔 수월한 길이지만 역시 사람 마음이 요상해서 원하는 만큼 페달이 잘 나가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07:30
서산시계에 접어들었다. 모든 것이 네모반듯하고 구획도 큼직한 것이 인천 남동공단에 들어선 것 같았다. 한창 아이들 학교가는 시간이었다. 근처에 서산여고와 서산여중이 있어서 교복 입은 여학생들로 길거리가 넘쳐난다. 샴푸향기가 온통 휘날린다. *-_-* 행복하다....
갈재 사고이후 계속 아파왔던 무릎이 나아졌다. 대신 그동안 한 번도 아프지 않았던 사타구니가 아려온다. 계속 비를 맞아가며 달려온 터라 마찰이 심해서 그런가 싶다. 서산시 안에서 마땅히 뭔가를 끓여 먹을 짬을 찾기 힘들었다. 비도 오고, 아이들 학교 간다고 가방 메고 여기 저기에 돌아다니는데 좀 그렇잖은가. -_-;;
08:50
왕복 6차로 29번 국도변에 있는 투명 플라스틱 재질의 버스정류장에서 멈춰섰다. 아침 먹을 시간이다. 물을 끓여 사발면에 부었다. 비는 계속 내리지만 빗발이 약해져 달리다 보면 오히려 약간 더운 편이다. 라면에 연양갱도 두 개 뜯어 먹으니 속이 좀 차는 것 같다. 하지만 어젯밤 밥을 반도 다 못 먹은 원인은 아직 모르겠다.
29번 국도에서 77번 국도로 바뀐다. 같은 길인데 도로 명칭만 바뀐 듯. 77번 국도는 인천부터 목로를 지나 부산까지 오직 해안선만을 위주로 개척된 도로로 알고 있다. 곧 도착하게 될 대호방조제나 석문방조제 위로 난 길로 모두 이 77번 국도로 포함된다. 단일 국도로는 우리나라 최장인 셈이다.
대산이 가까워질 무렵 도로는 왕복 4차로로, 다시 편도 1차로로 좁아졌다. 트럭은 도리어 더 많아진다. 한두 대 보이는 정도를 넘어 열에 아홉은 15톤 아니면 18톤 트럭이다. 톤수 높은 유조차나 LPG(혹은 LNG) 탱크로리도 상당히 많고, 모양이 요상하게 생긴 화학제품을 실은 듯한 차량도 자주 지나간다. 이러니 갓길로 달리는 것도 점점 불편해지고 신경을 쓰게 되어 쉽게 피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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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넘들이 다 지나갈때까지 기다렸다가 커브를 통과한다. 화면이 흐린 것은 계속 비가 내리고 있기 때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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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을 지나 삼길포를 향할 때쯤에는 아예 자전거를 내려 걸었다. 갓길 폭도 거의 없는데 차량도 전부 덤프 트럭이다. 한 번에 열 몇대씩 꼬리를 물고 달려온다. 커브에서는 내륜차 때문에 갓길 안쪽까지 다 먹어 들어가므로 움직이질 못하고 있다가 그 차량 행렬이 다 지나간 뒤에서 잰 걸음으로 뛰어 올라가야 했다. 산업도로냐 뭐냐;;;
10:24
여행 출발이후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다. 위태위태하게 화물트럭들과 함께 구배를 돌며 힘겹게 진행하던중 삼길포로 통하는 마지막 고개를 넘은 것이다(지도에서 노란색 화살표).
그런데 여기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속도 기록을 세웠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덤프트럭들은 떼를 지어 고개를 오르내린다. 그 막대한 중량을 감당하기엔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에 죄다 1단(혹은 2단)을 넣고 언덕을 올라가는데 그러다보니 맨 앞 차량의 속도에 맞춰 자연스레 행렬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 행렬이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몇 분간은 차가 없었다.
그래, 삼길포 넘어가는 고개에서 잠시 섰다 차량 행렬이 한 차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내리막길은 오대산이나 갈재같은 커브가 거의 없는, 사실상 직선주로에 가까웠기에 전방시야 확보에 용이했다. 그리곤 신나게 달려 내려간 것이다. 그 삼길포 내리막에서 무려 58.6km/h 를 찍었다. 살 떨리는 그 기분.... 캬~! 동계올림픽의 봅슬레이나 루지를 타는 쾌감이 이런게 아닐까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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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그 고개. 저 멀리 희미하게 수평선이 보인다. 표지판에 '삼길포'와 '석문', '대호방조제'라는 글자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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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 왜목마을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인가. 목포에서 출발해 태안반도에까지 이르렀다는 게 새삼 흥분되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은 대호방조제 진입부. 지도에서 보이듯이 저기를 다 건너간 다음, S자 모양으로 꺾어야 대호방조제를 본격적으로 달릴 수 있다.
대호방조제에 대한 설명과 사진 보기
10:55
헥헥;; 평속 30킬로에 가깝게 죽도록 달렸음에도 대호방조제를 건너는데 15분이나 걸렸다. 그냥 사진으로보면 그저 그렇네 싶어도 달려보면 정말 끝이 안나온다. 게다가 갓길이 없다.(털썩;;) 왼편에 콘크리트 갓길이 있긴 한데 군데군데 구덩이에다 진흙투성이라 속도를 낼 수가 없단 말이지....;; 갓길도 없는 편도 1차로를 덤프트럭과 마주 달리자니 아주 살 떨리더라.
근데 여기서 또 헤매기 시작했다. 내가 원래 길눈이 어두운 편이 아닌데 왜 이러나 몰라. 왜목마을은 당진군 석문면 교로2리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지도상으로는 대호방조제를 건넌후 오른쪽으로 돌아 계속 77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당연히 나와야 하는 거였다. 근디 왜 안 나오냔 말이지.
설상가상으로 오락가락 하던 비가 다시 폭우 모드로 전환, 엄청시리 쏟아지기 시작했다. 황급히 페달을 젓기 시작해 열심히 도로를 따라갔건만 눈앞에 펼쳐진 표지판에 황망해지는 마음.... 내가 달리고 있는 길은 77번 국도가 아니라 615번 지방도였다.
길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어째스까 곰곰히 생각해본들 뾰족한 수가 있나, 곰재의 뼈아픈 추억을 되새기며 혹시라도 놓친 골목길은 없는지 되짚어 가기 시작했다. 따가울 정도로 굵어진 빗발. 하지만 되돌아가서 다시 마주친 것은 대호방조제, 그러니 놓친 골목이 없다는 얘기다. 몇 번을 살펴봤지만 대호방조제를 내려와 왼쪽으로 빠지는 길은 전혀 없었다. 딱 하나, 미심쩍은 골목길이 있긴 했는데 들어가보니 당진 열병합발전소가 들어선 막다른 길이었다.
77번 국도
이어야만 하는 615번 지방도를 달리며 걱정이 태산 같았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져 도로는 반쯤 잠겼고 수면위로 튀겨오른 물방울과 수증기 같은 게 한 데 뒤섞여 앞을 분간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행이 순탄한 날이 없구나.....
바로 그때 떡 하니 이정표가 나타났다. '왜목마을'!!!! 뒤늦게 알았던 것이지만, 615번 국도를 타고 점점 내륙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바다로부터 몇백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을 달리고 있었다.
왜 이리도 내가 왜목마을에 집착을 했냐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바다 일출과 바다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환상이 머리에 각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텐트를 치고 번개탄과 조개를 준비해 니나노 하면서 구이를 해먹는 모습을 그리며 해미에서 태안반도 가장자리를 향해 굳이 우회하는 경로를 선택했던 거다. 물론 한낮인데다, 폭우가 쏟아지는 이 날씨속에 그런 꿈이야 망상에 가까워졌지만 말이다.
8. 사투를 벌이다
12:00
이정표를 따라 둘리 궁둥이만한 언덕을 넘자 '뜬금없이' 왜목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에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왜목마을이 바로 그 모양이다. 조그만 국민학교 운동장만한 어촌에 횟집 몇개가 전부인 황무지라니..... 관광자원을 살릴 줄 모르는 공무원들의 무사안일만큼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글쎄, 비는 쏟아지고 온몸은 흠뻑 젖었기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던 상황이라 그렇게 황망함을 느꼈던 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동화속 백마탄 왕자님(웬 백마...? -_-;;;)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실망이 막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개구이'를 먹어보리라는 열망만은 꺼지지 않았다. 번개탄에 구워먹는 낭만은 없을지언정 횟집이 있지 않은가!! 이런 날씨에 당연히 비수기일테고, 주인은 예상치 않은 습도 100% 손님의 방문에 반색했다. 조개구이 1인분을 달라고 하자, 처음에는 안된다더니 젖은(?) 모양새를 내세우며 하소연하자 못이기는 척하며 셋팅을 해준다.
그런데 그게 독이었다(고 생각한다). 조개구이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덩열 군과 선모랑 딱 한 번 먹어봤었다. 경험이 일천한지라 굽기는 굽는데 얼마나 구워야 제대로 익었는지 알 수가 없었던 거다.
덩열 군이 있을 때는 '이거 익은 거야?' 물으면 '응, 익었으니 먹어', '아니, 좀더 놔둬'하고 말해주는데 지금은 나 혼자.... 익었는지 안익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꾸역꾸역 입에 주워넣었다.
하지만 채 반도 먹지 못했다. 조개는 맛있다는 생각보다 비릿한 향이 강하게 느껴졌다. 뭔가 속에서 부글거리는 느낌도 들고 맥이 탁 풀려 속을 진정시키느라 맑은 조개탕 국물만 거푸 떠 마셨다. 덜 익은 걸 먹었나 의심도 해보지만 딱히 알 방법도 없다. 그만 숟가락을 놓고 나와버렸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는 중이었다.
12:30
더 안 좋아진 건 바람마저 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바람이 전혀 없을 때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가다보면 어느 순간에선가 모자의 차양이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훌러덩 뒤집어지는데, 그 속도가 약 20~25km/h쯤이었다. 지금 부는 바람 때문에 차양이 정신없이 뒤집히는 걸로 보아 최소한 풍속이 20km/h 는 넘는다는 결론. 거기다 남동풍, 진행방향 맞바람이었다.
77번 국도의 존재에 대해서는 더이상 확신을 할 수 없었으므로 지도를 펼쳐 경로를 수정했다. 현재 서있는 615번 지방도를 계속 달리다 당진을 거쳐 삽교호쪽으로 복귀하기로 했다. 말은 쉬운데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았다. 2002년 여행 때의 그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퍼붓는 빗속에다 거센 맞바람까지 안고 달리려니 거의 자전거를 끌다시피 나아갔다. 속은 점점 불편해져 구역질이 올라오다가 잠잠 해졌다가를 반복했다.
매트리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기에 고마움을 못느끼는 것 중 하나가 '편평한 바닥'이다. 요철 있는 바닥에서의 잠자리는 설명할 수 없는 '짜증스러운 고통'을 준다. 군대시절 야외에서 A텐트를 치고 자야할 때면 바닥을 가장 먼저 골라야 하는데, 행여 돌부리가 박혀 있거나 딱딱한 나무뿌리가 튀어나와 있으면 그날 밤 꿈자리가 뒤숭숭해진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매트리스. 방수 스티로폴 재질의 말이식 매트리스는 텐트와 필수적인 조합이다.
그뿐아니라 텐트 자체는 지면과의 접촉으로부터 보온성을 가지지 못하므로 냉기가 올라오면 그것을 사람이 고스란히 흡수하게 되는데, 매트리스를 깔면 그런 문제점도 자연스레 해결된다. 산행시 산장에서 하룻밤 묵어갈 때도 그냥 마룻바닥에서 자는 것보다 이거라도 하나 깔고 자면 잠자리가 아늑해진다. 말았을 때 직경 약 20cm, 무게는 못 느낄 정도로 가벼움.
(이미지 출처는 okoutdoor.com)
14:40
복통이 심해졌다. 615번 지방도는 산길로 접어들었고 편도 1차로에 갓길이 아예 없는 상황에서 대호방조제를 통과한 15톤 트럭들은 쉴새없이 내 왼쪽을 스쳐지나갔다. 최악이었다. 배가 어찌나 아프던지 "이 고통을 떠나가게 하시면 주의 사심을 믿겠나이다"를 되뇌었다. 오래전 현철이 형과 얘기를 나눴는데, 그가 어릴 적 배가 너무나 아파 견딜 수가 없게 되었을 때 불경스럽게도 그 기도를 해버렸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던 거였다. 바른 기도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지만 고통이 너무 심해서 그걸 경감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산길을 비척비척 달리며 '안 아프게 해주세요, 안 토하게 해주세요, 잘 소화되게 해주세요'하고 이 세 문장만 반복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얼마나 달린 건지 전혀 의식하지도 못하고 그저 고통만이 가라앉기를 소망하며 나아가고 있었다. 한 번은 자전거를 세우고 길가로 내려가 시원하게 토해보기라도 하려고 입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보았지만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채 헛구역질만 해댔다.
15:40
그러다 저 멀리에서 건물의 형체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교회이지 싶었다. 안 되겠다, 오늘은 정말 교회에서라도 신세를 져야겠다 생각했다. 램프를 찾아내고 논길을 따라 국도로부터 한참을 벗어나서야 교회 건물에 가까이 이를 수 있었다.
교회는 건축중이었다. 뼈대를 세우고 붉은 벽돌로 막 외장을 끝낸 상태였다. 건물 안은 벽돌이며 모래가 쌓여있고 곧 내장 공사를 할 모양인지, 비계가 잔뜩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비를 피하기에는 충분했다. 몸은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으므로 달리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짐을 풀러 텐트를 쳤다. 구급약 가방에서 진통제를 꺼내 몇알 입에 털어넣고 끙끙 앓다 이내 웅크린채로 잠에 빠져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진짜 불쌍하다.....
)
18:40
인기척에 눈을 떴다. 텐트 밖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지퍼를 열고 고개를 내미니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께서 물으신다.
"여기는 어쩐 일인가?"
목사님인가 싶어 텐트밖으로 기어나왔다. 이 교회의 장로님이라신다.
"아... 자전거여행하는 대학생입니다. 비가 너무 많이 오고 몸도 좋지 않아 그러는데, 하룻밤만 쉬어가도 될까요?"
그분은 머리를 긁적이시며,
"쉬어가는 거야 괜찮은데....." 하며 말끝을 흐리셨다. 그리곤
"그런데 어디 학생인가?" 하고 물으셨다.
가방을 뒤져 학생증을 보여드리며,
"서울에서 학교 다니고 있습니다" 말씀드렸더니 그제서야 얼굴이 환해지셨다. 세상이 흉흉하다보니 학생증을 보시고 맘을 놓으신 게다. 옆에 계시던 여자분께서 입을 여셨다. 장로님의 소개로는 교회의 사모님이시란다.
"자고 갈거면 교육관이 더 좋을 텐데... 거긴 온돌이고 싱크대도 있거든."
잠시 생각을 하니, 교회가 건축중일테니 새벽기도회는 교육관에서 할테고, 그러면 아침에 민망한 모습을 보일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들었다. 그래, 감사하지만 폐 끼치는 것 같아 여기로도 만족한다 말씀드렸다. 두 분은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더니, 화장실 위치를 알려주시고 돌아 나가셨다.
진통제를 먹어 그런지 복통이 꽤 가셨다. 힘을 내어 풀다만 짐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빨래를 했다. 교회 건물 안에 비계용 파이프가 많아 빨래 널기에 수월했다. 바람이 심해서 모래를 덮어 둔 큰 비닐을 가져다 텐트 위에 덧씌우고, 다시 그 위에 플라이를 덮었다. 벽돌로 귀퉁이를 단단히 고정해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했다.
그러고선 또 잘 생각으로 텐트 안에 들어가 있는데, 밖에서 "이봐요, 이봐요" 하고 나를 부른다. 내다보니 아까 그 사모님이다.
"아직 밥 못 먹었지? 그냥 있는 반찬만 몇 개 차렸으니까 이거라도 먹고 자요, 응?"
"아, 네..."
아...... 밥......
감사합니다 인사도 못하고 얼결에 소반을 받아 들었다. 윤기가 흐르는 팥밥에 뜨거운 닭도리탕, 그리고 열무김치와 감자볶음이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약해진다지만, 그땐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날 것 같았다. 한편으론 이걸 먹으면 또 속이 아프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음에도, 그 정성이 고마워서라도 행복해서라도 먹어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어제 오늘 음식이라면 반도 못 넘기던 내가 그 밥상을 깨끗이 비워버렸다. 맛 있었다.
상을 치우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내일도 계속 아프면 어쩌나. 계속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상념이 쉴새없이 오고갔다. 아프니까 명희 누나 생각이 났다. 작년 오대산 자락에서 춥고 외로울 때도 명희 누나가 생각 났었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명희 누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은 정말 힘드네요. 지금은 몸이 너무 아파서 도중에 중단하고 쉬고 있어요."
그리곤 핸드폰 전원을 뺐다. 그저 하소연할 사람이 필요한 거였기 때문이다. 이내 잠들어버렸다.
23:40
또 얼마나 잤을까. 시간을 알려고 핸드폰 전원을 켰다. 그때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명희 누나였다.
"승혁! 전화기가 꺼져있더라."
"자려고 일부러 꺼뒀어요."
"몸은 괜찮고?"
"잘 모르겠어요. 진통제를 먹긴 했는데...."
"거기 어딘데?"
"글쎄요. 아마 당진 좀 못가서?"
그러자 잠시 침묵하던 명희 누나가 이렇게 말했다.
"누나가 지금 차 끌고 갈게."
밤 11시 40분, 교회 후배가 여행 중에 아프다고 인천에서 당진까지 당장 데리러 가겠노라고 말할 사람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오늘은 아프기도 아팠지만, 또 한편으론 감동에 또 감동이다. 하지만 감동 받은 티를 안 내려고 나는 일부러 깔깔 웃으면서 농담처럼 대화를 돌려버렸다. 몇 분간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가고, 부디 몸조심해야 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은채 명희 누나는 전화를 끊었다.
설명할 수 없는 영혼의 포만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날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일 평균속도 : 12.8km/h
일 최고속도 : 58.6km/h
일 주행시간 : 5시간 51분 8초
일 주행거리 : 74.94km
누적 주행거리 : 463km
4일차 쓴 돈
라면*2 : 1,300원
조개구이 : 12,000원
처음에 대충 정한 여행경로 (1.2MB)
최종 여행경로(위성사진, 3.4MB)
2004자전거여행 1일차 : 목포 -> 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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