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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관계가 있다
모든 것은 '관계성'에서 시작된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 아무 존재도 아니었다는 김춘수의 '꽃'에서부터, 5천 송이의 장미 중에서도 내게 의미있는 것은 단 한 송이밖에 없다고 말하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이르기까지 '관계성'이라는 개념은 존재와 존재를 연결하는 중요한 끈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그 시작은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님은 닷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여섯 째 날에 그분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이 형상은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부의 인격과 성품을 본땄음을 뜻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희미하면서도 명백히 남아 있는 선한 본성으로부터 하나님의 성품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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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가 어린 왕자와 관계가 없었다면 금빛 밀밭을 보고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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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와 같은 성품의 유사함이 인간의 특별한 가치를 규정 짓지는 않는다. 100 미터 육상선수의 트랙에서의 0.001초가 일반인들의 일상 속에서는 큰 의미가 되지 못하고, 100 년을 살다간 위대한 인물의 생애가 전우주의 수십억 년 역사에는 겨우 티끌에 지나지 않듯이 인간이란 종(種)도 하나님에게 그 존재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주 같은 것쯤이야 책 한 페이지 덮었다 다시 펴면 새로이 만들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존재의 세계'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의의는 그것이 '하나님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 단 한 가지다.
사람들은 사람의 생명이 귀하며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에 슬퍼하며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통해 어려운 처지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느 사람의 사연을 접하고 애통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 속에 죽어가는 이의 숫자는 그 사람 말고도 셀 수 없이 많고, 그 모든 처지와 사연과 상황에 하나 하나 슬픔 그리고 애통함으로 반응하는 이는 없다. 누구나 '관계성'이라는 끈이 미치는 울타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울타리 넘어 아무리 처절하게 쓰러져 가는 사람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와 나를 이어주는 관계성의 끈이 없다면 나는 마치 그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부지와 불식의 차원을 넘는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어린이들이 하루에도 수천 명씩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서 잘 먹고 잘 살며 혹은 몇만 원의 구호금으로, 혹은 '안됐네' 하는 동정심만으로 자족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스스로 존귀하다 말하는 인간 사이에서도 이러할진대, 그 능력이 무한대에 이르는 하나님에게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가 그저 '0'에 수렴할 뿐이다.
관계가 없다는 것은...
그러므로 관계가 없다는 것은 곧 대상이 (나에게) 없는 것과 같다는 뜻이요, 죽은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그와 반대로, 관계가 있다고 말하는 순간 비로소 그것은 (나에게) 생명력을 갖게 된다. 예수님은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다'라고 생각하지 마라. 하나님께서는 이 돌로도 아브라함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인간이라는 생명체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태생의 자격 같은 것은 돌멩이로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결국 진정 하나님에게 가치가 있는 것은 '그분의 자녀', '그분의 백성'이라는 관계성이며 그것이 없는 것은 - 하늘이든, 바다든, 흙이든, 돌멩이든, 원숭이든, 사람이든 - 의미가 없다. 죽은 것과 같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관계된' 피조물이었다. 그 관계됨이 그들의 '생명'의 근원을 이룬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기 전에 창조하신 식물과 동물 역시 '생명'을 갖고 있기는 매한가지였지만 그 생명은 하나님과 관계됨이 없었다. 그것들은 오직 사람을 위하여 존재했고,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터전이자 배경일 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없는 단순한 유기생명체로서의 인간은 그분의 기준에서 철저히 무가치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여 살생을 금하는 스님들도 생명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채식을 한다. 채식을 살생의 범주에서 제외하는 기준은 기껏해야 식물과 동물의 활동성이나 감정 반응의 정도 차이다. 하물며 사람도 같은 생명체를 놓고 '죽임(殺)의 객체'가 된다 안된다를 나누는데, 신인 하나님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가소롭겠는가. 길거리에 나뒹구는 돌멩이 하나든, 생명제중 유일하게 영적세계에 대한 사유가 가능하다는 인간이든, 하나님 입장에서는 말 한 마디로 생기게 했다가 없어지게 할 수 있는 물질계의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바로 그 무가치한 존재에 의미를 두시고 뜻을 계획하실 때 비로소 하나님과 관계성을 갖게 되고 참생명을 얻게 된다.
아담과 하와가 생령의 존재로서 에덴동산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때문이었다. 그 관계성의 막대한 의미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만약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나는 '정녕 죽으리라'고 번역된 개역 성경의 표현을 더 좋아한다. 아담을 붙들고 정색을 하는 하나님의 염려와 걱정 그리고 약속의 단호함이 잘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약속은 생명 상실에 대한 최초의 경고였으며 하나님과 인간이 관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이유
하나님은 영광을 받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영광을 받기 위하여'라는 말은 너무 추상적이고 너무 도식적이다. 이 표현을 조금 발칙하게 바꿔본다면 '하나님은 번식하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말로 나타낼 수 있다. 이것은 그분의 첫번째 명령이었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 그분의 성품은 우리 인간에게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번식하여 출산한 제 자식을 품에 안은 부모의 기쁨으로 나타난다. 그 작고 보잘 것 없는 핏덩이가 당장 돈을 벌어주지도 명예를 가져다주지도 않지만, 나의 모습을 닮아(형상대로) 출생하였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부모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부모 공경이 단순히 인간 세상의 도덕율에 그치지 않고 십계명에까지 명시된 것은 부모가 자녀를 기뻐하고 그 자녀가 제 부모의 자녀됨을 감사히 여겨 서로 교제하는 모습이 곧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를 밑그림으로 하는 복사판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찬양받기 위해 영광받기 위해 인간을 도구로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냐는 비난은 성립하지 않는다.) 선악과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성을 인정하고 거기에 순종할 것인가를 묻는 상징적 조건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이 창조된 목적, 곧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깨닫고 그 교제에 참예하여 영화롭게 되기를 기대하셨다.
그러나 만약 인간이 그 관계성을 거부한다면 관계성으로 말미암아 소유하였던 '의미'는 소멸하게 된다. 하나님이 말한 '죽음'은 이 '의미'의 소멸이며, 육신의 죽음이 아닌 영의 죽음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단절됨과 동시에 생명체로서는 살아 있으나 그분의 창조 목적과 섭리상으로는 무생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림을 의미한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더이상 하나님의 백성도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었다. 그저 하나님이 창조했던 수많은 생물 중 하나에 속할 따름이었다. 식물과 동물이 숨이 다하면 산과 들과 강과 바다에 쓰러지고 그저 썩어져 땅으로 돌아가듯이, 아담과 하와 이후 사람이란 존재는 단지 생명체로서의 기간을 유지하다 영원히 사라지는 운명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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