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자녀들의 ‘슬픈 수학여행’
/ 경향신문 2006-03-21 22:33
나는 중학교 때 4일동안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혼자 자습하다가 집에 간 적이 있다. 급우들은 모두 수학여행을 떠난 기간이었다. 쌀이 없어서 밥을 못 먹는 날도 있을 정도로 집 형편이 좋지 않아서 나도 크게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못 간다는 사실 때문에 박탈감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알아서 안 간다고 말했으니 어머니께서 좋아하시겠지... 하는 철없는 생각 정도?
고1 때는 전국의 초중고등학생들이 한 번쯤 가봤다는 그 유명한
경주대전 엑스포도 가지 못했다. 그때는 엑스포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실망했던 게 아니라, 철도청에서 임시열차를 동인천 역까지 보내주었고 우리 학교 학생들만 탄 열차가 경주까지 직통으로 달리게 되어 있었는데, 그걸 못 타보는 게 못내 아쉬웠었다.
여전히 형편이 어려웠던 나도 고등학교 때는 수학여행을 갔는데, 무려 제주도 3박4일 일정이었다. 그럼에도 갈수 있었던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주도 수학여행을 전통처럼 이어오고 있는 학교측에서 비용문제가 학부모들에게 부담이 됨을 알고 신입생 때부터 한 달에 얼마씩 수학여행 적금을 붓도록 했기 때문이다.
수학여행을 갔어도 별반 대단한 기억은 아니었고 어떤 자리에서 제주도에 가봤나 못가봤나 얘기가 나오면 그냥 '나는 가봤다'라고 말할 정도의 꺼리 밖에 되지 않았다. 수학여행 못가고 학교에 남아 자습한 기억 역시 특별한 악몽 같은 것으로 남아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건 내 얘기고, 가장 좋은 그림은 역시 모두가 함께 웃고 떠들고 사진 찍고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공공재정지원으로 가능하다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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