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 55분에 시작된 이 영화를 보다가 6시 10분쯤에 더 이상 볼 가치가 없음을 깨닫고 극장을 나왔다. 평점이 좋을 리가 없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브로크백 마운틴>에 별 하나를 준 것은 내가 크리스찬이라는 사실과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먼저 밝혀두고 싶다. 동성애(혹은 양성애:이하 생략)의 원인에 대한 견해 차이는 있을지언정 호모포비아는 전무하다. 그러니 순전히 영화 이야기만 하도록 하자.
영화의 주인공으로 세움받은 남녀들이 하나같이 이쁘고 잘생긴 이유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무 것도 모를 것 같은 유아조차 미인을 선호한다는
연구결과
도 있듯이, 외적 조건이 출중할수록 관객은 보다 빨리 그리고 강렬하게 주인공에 동화된다. 주인공이 행하는 감정적 결단에 대해서도 쉽게 설득당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외모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갖는 매력은 외모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첫 인상에서 대중적 호소력을 갖지 못하는 사람도 그가 가진 품성이나 지적 면모로 말미암아 차차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보여주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문제는 그런 외모 이외의 요소들이 위력을 발휘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하물며 두 시간 남짓의 상영 시간 동안 모든 것을 설명해주어야 하는 영화 감독 입장에서는 오죽할까. 상상해보라. 이정재 장진영이 아니라
유해진 신이 주연의 <오버 더 레인보우>였다면, 관객들이 주인공 캐릭터를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게 만들기 위해 영화의 러닝타임이 얼마나 더 늘어나야 할지를.....(러닝타임 10시간이 되어도 그 둘의 사랑의 결합에 그다지 유쾌한 기분이 될 관객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때문에 시나리오와 연출, 배우의 연기에 대해 나름의 독립군적 신념이 없는 한, 어느 감독이든지 예쁘고 잘생긴 주인공을 선호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면 <브로크백 마운틴>의 두 남자 주인공이 못 생겼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인가? 결국 비슷한 얘기다. 주인공의 빼어난 외모는 관객들로 하여금 설정된 상황의 상당 부분에 대해 무언의 수긍을 얻어낸다.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김주혁이 이요원을 짝사랑하는 것은 감독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해진 게임의 룰임에도 어느 누구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게 있다. 이 룰은 남자와 여자 주인공 사이에서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관객들의 머리 속엔 통념의 회로가 있다. '예쁜 여자와 잘생긴 남자가 서로 사랑을 한다'가 그 통념 중 하나다. 감독은 그 통념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남자와 남자가 사랑을 한다'는 설정에서도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잘생기(거나 예쁘기만 하)면 관객들이 '아, 그러시군요' 할까? 천만의 말씀. 외국에서라면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나라에선 어림도 없는 얘기다.
<왕의 남자>에서 왜 동성애 코드가 그 민감한 보수적 통념의 테두리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는가? 그것은 감우성 이준기 두 남성의 사랑(혹은 정진영을 포함한 동성애적 아우라)을 수용할만큼 의식이 트여서 그런 게 아니다. 이준기는 남자라 하기엔 너무 예뻤고 그는 관객들의 통념 속 여성의 위치를 대신한 것 뿐이다. 그뿐인가? <형사 - 듀얼리스트>에서 강동원이라는 배우를 통해 연출된 것도 동성애적 코드 속의 남성성이 아니라 역할만 바뀐 여성성이었다.
때문에 통념 따위 다 무시한채, 허우대 멀쩡한 시커먼 남자 두 명이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허겁지겁 허리끈을 푸는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뜬금 없다'라는 표현으로밖엔 설명할 수가 없다. 아카데미에서 괜찮은 상도 받은 영환데 내가 왜 물 위의 기름마냥 감정적 공황과 표류를 체험하고 있나 싶어, 어떻게든 그 상황들을 이해하려 노력은 해보지만 '아무리 몇 달 동안 여자를 못 봤기로서니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애널을!!!', '저게 자연스러운 거라면 대한민국 군대는 집단난교의 아름다운 합숙소겠군' 따위의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파르테논 신전 기둥은 모두 똑같은 굵기로 만들어진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자리로 갈수록 중앙에 있는 것들보다 가늘다. 그래야만 착시현상 때문에 모두 같은 굵기로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실을 담는 예술매체이긴 하지만, 그것이 관객에게 현실로 느껴지게 하기 위해선 착시현상까지 고려한 감독의 개입이 필요하다. 앞서 장황하게 설명한 선남선녀 주인공들 이야기도 거기에 포함된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두 남자 주인공이 서로에게 동성애적 매력을 느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로 있다는 것과 관객에게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은 명백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그것을 무시하고 영화가 진행될 때 관객은 영화로부터 소외된다(그와 비슷한 연출 기법을 가진 장르 중 하나가 '포르노' 아닌가). 그래놓고선 작품성과 큰 시각에서의 영화의 주제를 운운한다면 그게 싸가지 없는 게 아니고 뭐겠는가(심리학이나 사회학과 리포트 제출용 감상물로 쓰면 좋겠네).
이런 전차로 <브로크백 마운틴>에 별 하나를 부여하는 바이다. 한 가지, 이 영화가 고마웠던 게 있다면, 이 영화 보러 간 날 새벽기도를 빼먹었던 터라 기도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예정에 없이 한 시간 이상 영화관을 일찍 나서는 바람에, 기도할 시간이 생겼다. 이거 하나 맘에 들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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