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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여름, 추론적인 가설을 하나 세우고 그것을 '평균인 이론'이라 불렀었다. 어느 부분사회를 막론하고 그 구성원들의 행동양식은 일정비율의 유형화된 표본으로 요약된다는 것이 요지다. 즉, 100명으로 이루어진 10개의 피통계집단에서 각각 10명의 모범적인 표본과 10명의 비모범적인 표본을 추출하여 전혀 새로운 100명의 모범적 집단과 100명의 비모범적 집단을 만들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10명의 모범적인 표본과 비모범적인 표본을 배출해낸다. 가령, 10개 학급에서 의사표현에 적극적인 학생 5명씩을 뽑아 새로운 학급을 꾸민다고 해서 학생 전원이 적극적인 학급이 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어느 분의 말씀에 따르면, 베르나르의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단다. 쥐 여섯마리를 유리상자에 넣고, 물을 건너야만 닿을 수 있는 곳에 먹이를 둔다. 그러면, 수영을 해서 먹이를 가져오는데 뺏기는 놈 둘, 착취자 둘, 독립적으로 찾아서 먹는 놈 하나, 뺏지도 않고 수영도 않고 남이 먹은 부스러기를 먹는 놈 하나...... 이런 식이다. 재미있는 건, 다른 쥐들로 실험을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며, 몇번의 실험끝에 착취자 쥐들만 여섯을 몰아두고 실험해도 결과는 같아진다는...... 그런 내용이란다.
베르나르도 그런 말을 한 걸 보면, 터무니 없는 내 직관이 쓰레기통 벌레 정도는 아닌듯 싶다. 더 나은, 더 훌륭한 곳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 하고, 추려내고 발전해나가는 듯 싶지만, 우린 언제가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게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중학교 시절 후반부부터 고등학교 시절 전체는 퍽 메모에 열정적이었던 기간이었는데, 그 무렵의 적지 않은 분량의 메모를 읽다보면 이상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 여전히 유치하고 여전히 박약하며, 여전히 우유부단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자신감 결여 상태다. 바뀐 건 없다. 나이를 먹으며 그에 걸맞는 체면만 학습하고 있는 걸까.
중1때 우리반엔 M이란 자폐증을 가진 급우가 있었다. 자신보다 약한 대상에게서 주체못할 우월함을 넘치도록 공급받는 우리 사회의 공기를 중학생들이라고 마시지 않았겠는가. 그는 언제나 멍투성이었고, 알아듣지 못할 growling이 내가 기억하는 M의 음성 전부였다.
나름대로 크리스찬다운 흉내를 내기도 했다. 매일 그와 하교길을 함께 했다. 알아먹지 못할 소리를 어떻게든 해독하기 위해 무던히도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어쨌든 그와 함께 하는 일은 썩 유쾌하지 못한 시간들이었고 나보다 그에게 친숙한 벗, '린치'보다 더 열성적으로 M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난 내 양심을 '그나마' 위로하고 있을 뿐이었던 것 같다. 그것이 구차한 것이었음을, 그해말 '자폐아동과 그의 진정한 벗'을 소재로 한 짧은 단편을 학급문집에 제출함으로써, 내 스스로 시인하고야 말았다.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예수를 사랑한다' 잘 발음해왔음에도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그것이 몹시 힘들어졌다. 사랑없이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었던가. 말이 우리를 시인하게 한다지만, 사랑은 마인드 컨트롤이 아니다. 사랑한다면 사랑해야 한다.
눈엣가시였던 C가 얼마전부터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나는 입으로 그를 저주했다. 마땅히 저주받을 만 하기에 저주한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판단의 기준에 대해 나는 못내 자신감을 가지지 못한다. 초등학생들이 불쌍한 급우를 터무니없는 이유로 따돌림 하고 사사로이 때린다는 사회면 기사를 보고 우리는 이 시대를 탄식한다. 우리가 그 탄식스러운 세대보다 단 한가지 우월한 것이 있다면, 더 뻔뻔해질 수 있는 힘이겠지.
사랑한다면 사랑해야 한다. 천국이 결코 비좁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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