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하건대, 아마겟돈이 전혀 무가치한 영화란 얘기는 아니다. 다만, 딥 임팩트 앞에서 얼쩡거리지는 말아달라는 당부일 뿐이다. 비슷한 소재와 비슷한 전개를 갖고 있는 이 두 영화를 비교하는 것은 마치 캐논 G3와 하두리 캠을 가지고 해상도를 견주는 것과 같다. 아마겟돈에 대한 평가에 대하여는 DJUNA님이 탁월한 글을 써놓은 바 있으므로 일부를 옮겨보자.
[아마게돈]은 제리 브룩하이머 식 블록버스터의 자만심이 극도로 부풀면 어떤 꼴이 되는지를 증명하는 단도직입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 종말 위기'라는 커다란 소재에 도취된 나머지 이 영화는 정말 질 따위에는 조금도 신경 쓰고 있지 않습니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그 징조가 보였습니다. [아마게돈]의 예고편들은 98년에 나온 예고편들 중 가장 형편 없었습니다. 특히 리브 타일러와 벤 애플렉의 러브 신에서 지구를 구하는 용사들의 활약으로 더듬거리며 이어지는 첫 번째 예고편은 한마디로 조소감이었죠.
영화가 개봉되자 예고편이 영화를 그대로 반영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영화 내용이 너무나도 너절해서 공들인 특수 효과와 비싼 배우들이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돈들인 마케팅 때문에 영화는 상당한 흥행 성적을 올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지루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죠.
'브룩하이머의 자아 도취는 여러 수많은 재앙을 초래했는데 그중 가장 끔찍한 것은 그 방만함이었습니다 방만함은 브룩하이머식 여름 블록버스터의 특징이기도 했지만 이 영화는 도가 지나쳤죠. 이 영화는 발 루튼이라면 영화 하나를 끝내고도 남았을만한 시간을 낭비해가며 발사 이전을 묘사하는데 그 지루함은 경악스러울 정도입니다. 브룩하이머와 베이는 이런 도입부가 관객들의 '감동'을 자아내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죠. 그들은 지구를 구하는 엄청난 인물들이므로 당연히 관객들도 집중할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뻔하게 폼을 잡아서 웬만한 지능지수를 가진 관객들은 그렇게 잘 속아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나머지 부분도 시간 낭비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건 꼭 한가한 방만함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브룩하이머는 자아도취에 빠져 몰랐지만 [아마게돈]의 소재는 스토리를 끌어가기에 결코 좋은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주 액션은 소행성에 구멍을 뚫고 폭탄을 집어넣는 겁니다. 아주 단순할 뿐만 아니라 지루하죠. 여기엔 어떤 대결구도도 없습니다. 당연히 이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사고들이 등장하는 거죠. 우주 정거장의 폭발 사고, 우주선의 추락, 내부의 의견 충돌...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빈 러닝타임을 채우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동원된 것들이기 때문에 한꾸러미로 단단하게 묶는 게 쉽지 않습니다. 브룩하이머는 사이즈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소행성 폭파라는 소재가 얼마나 빈약한지 몰랐던 거죠. 이건 두 번째 재앙입니다.
아마겟돈을 보면서 지구가 멸망하리라는 긴박감을 느껴보질 못했다. 소행성의 파편이 크라이슬러 빌딩을 깨부수고 파리 시가지를 초토화하는 장면을 즐겁게 지켜봤을 뿐. '코어'에서 다시 한 번 증명이 되었듯, 젊은이에게 인생의 고귀한 교훈을 전달하는 어르신은 마땅히 목숨을 잃게 마련이라, 브루스 윌리스가 소행성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리란 것도 일찌감치 눈치를 깔 정도였으니 긴박감을 논할 여지가 있으랴.
이에 반해, 딥 임팩트를 보면, 2억 미국시민 가운데 다음 세대의 '종자'로서 100만명을 추려내는 과정속에, 50세 이상은 경제성을 이유로 아예 추첨에서 제외하는 등의 설정은 내가 분명 영화 이면의 안전한 세계에 있음에도 그들과 함께 추첨을 알리는 전화에 목매는 심정을 서서히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죽어가는 아버지 앞에서 그토록 서럽게 눈물흘리던 딸이 무사귀환한 애인과 너무나 발랄한 표정을 주고 받는 것이 '관계의 회복'인 어떤 영화와는 달리, 자신에게 남겨진 '혼자된 삶으로의 편도승차권'를 아낌없이 버린채 20여년동안을 오해와 미움 속에 간직해왔던 가족의 품에 안겨 - 두려움에 떨며 -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모습이 이 영화 딥 임팩트가 갖고 있는 드라마적 완성도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이렇듯 SF영화를 깊이없는 공상물에서 한편의 잘된 이야기로 꾸민 건 미미 레더 감독의 힘이지 싶다. 미미 레더는 TV 프로그램 연출로 경력을 시작한 사람이라 영화가 그닥 많지가 않은데, 얼른 떠오르는 게 A.I.에서의 그 슬픈 눈망울을 간직한 꼬마가 주연을 했던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정도다. 영화 이쁘게 만드는 건 미미 레더의 탁월한 버릇(?)이지 싶다. ^^
영화 초반부 레오니의 인터뷰 장면에서 레더 감독과 함께
편집의 절반을 BGM의 승리라 믿는 나로선 딥 임팩트의 배경음악도 정말 맘에 든다. 영화 내내 배경음악이 끊임없이 흐르는데 어느 한 부분에서도 관객을 거스르거나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도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본연의 임무를 다한다. 딥 임팩트의 배경음악은 제임스 호너가 맡았으며 그는 이미 영화 타이타닉의 음악감독으로서 아카데미상을 거머쥔 바 있는 실력자다. -_-)b
주연을 맡은 티아 레오니는 패밀리맨 등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암튼 앞에서 나왔던 마지막 장면의 연기가 가장 맘에 든다. 이 레오니가 X파일의 히어로, 멀더 역의 데이비드 듀코브니의 아내라는 사실은 다들 잘 모르실 거다. ^^ (안됐다, 스컬리.....)
마지막으로, 이 영화엔 우리의 프로도가 나오더라. ^^
(물론 98년도에는 몰랐었지. 얼마전에 이 영화 다시 보다가 반지운반자가 등장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엘리야 우드가 전혀 무명은 아니었나 보군....;;; 뭐 이런 경우는 많지. 매트릭스의 모피어스가 이벤트 호라이즌의 함장으로 나오는 것 등등.....)
덧. 모건 프리먼은 역시 공무원 역할이 어울려. -_-;;; 카리스마 쥑이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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