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하십시오. 하지만 그 평안은 자매님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리라는 믿음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자매님에게 가장 유익하리라는 믿음에서 오는 평안이어야 할 것입니다."
3년전 이맘때쯤 수능을 앞두고 있던 한 고3 자매에게 위와 같은 쪽지를 보낸 일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 자매는 쪽지를 받고 평정을 되찾았고 대입에 성공하는 쾌거(?)를 올리고 그 경험을 간증으로까지 남겼다.(알만한 분들은 이 내용을 아시리라.) 그 자매는 대입에 합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결론 짓고 지금도 성실히 대학생활에 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자매가 수능에서 떡을 치고 대입에 실패한 다음에도 평안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태생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에 눈이 쏠릴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동호 목사의 표현을 빌자면, 진정한 종교는 신의 뜻에 관심 있으나 미신적 종교는 신의 능력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미신적 토착화에 가장 성공적인 종교인 불교의 신도들은 일천배니 삼천배니 백일기도니 뭐니 하며 영험한 그들의 신령한 존재들에게 자기 자식들의 대입 합격이라는 능력을 보여달라고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신의 뜻이란 곧 자신들의 정성의 정도와 치환된다. 같은 논리로 그들의 신앙수준을 근저에 두고, 우리는 좋아하는 스타의 이름을 전지 한 장에 빼곡히 손글씨로 세공하는 놀라운 정성을 가진 빠돌 빠순이의 지극함에서 새로운 종교를 창시해낼 수 있음은 물론, 매니아적 근성이 희박한 나에게 엑스파일 동호인이나 일본애니 매니아들의 활발한 활동은 종교적 승화로 보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달리 말해 자신의 정성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보겠다는 '비나이다~'종교인들은 실력있는 최면전문가만 동원한다면 길가에 찌그러져 있는 콜라캔에다가도 머리를 조아리고 소원을 빌 수 있는 수준의 종교의식을 가지고 있다 보아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이렇듯 신의 능력에만 관심이 있고 그 능력의 크고 작음으로 용함의 정도를 분별하는 세대 가운데 기독교가 보여주고 있는 진정한 종교로서의 면모는 무엇이 있을까?
수능 시즌만 되면 개교회 십자가에 셀 수없이 많은 엿이 덕지덕지 달라붙는 것을 본다. 그것은 '새벽기도회'라는 이름의 엿이다. 교회 목회자들은 십자가에 붙이는 엿의 수가 많을수록 어여쁜 그대들의 정성이 고평가 되어 각가정 자녀들의 합격 가능성이 쑥쑥 올라간다고 신도들을 세뇌한다. 나역시 교회에서 나눠주는 새벽기도회 출석카드에 도장이 한 개 두 개 찍힐 때마다 단골미용실 언니가 찍어준 도장갯수 세어가며 무료 커트에 대한 흥분이 고조되듯 내 대입 합격이 기정사실화 되어간다는 환상에 사로잡혀갔고 그런 환상에 기꺼이 빠져주길 즐거이 하였었다.
수능 시즌 직전에 '특별'이라는 이름을 내건 새벽기도회의 정체에 대해 어느 목회자도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왜 그 즈음의 새벽기도회는 평시에 진행되는 새벽기도회보다 '특별'하고 그 '특별'한 새벽기도회는 좀더 강조되어 많은 수험생들과 그네들의 부모님들이 참석해야 하는지 대답하는 목회자는 없었다. 주류에 휩쓸리기를 즐겨하며 그러하지 못할 때를 불안해하는 우리 성도들은 마냥 안도하는 마음으로 '특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였고 교회 문을 나서는 그들의 미소는 '특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지 아니하였을 때 받을지 모르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차별대우에 대한 염려를 말끔히 씻은 듯 밝고 명랑하다.
여기에 더하여 내가 경험한 특별한 고3수험생의 경험이 있다. 우리 교회는 수능이 임박한 어느 주일 저녁, 모든 고3수험생들을 교회로 모이도록 광고했는데, 그것은 이미 광고를 하지 않아도 될만치 유명한 '담임목사님 특별 안수기도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플랭카드에 또박또박 '담임목사님 특별 안수기도회'라고 뽑아서 걸어놓은 걸 보았다.) 그때 담임목사님이 해준 '특별'한 안수기도가 왜 특별한 건지 역시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 '특별'한 안수기도를 받은 개인이 받게 될 '특별'한 대우가 무엇인지 그리고 받지 않는 개인이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이 무엇인지 그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시종 기도회의 분위기는 비장했으나 기계적으로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담임목사님 앞에 선 5, 6초간의 시간이 그리도 허망할 수 없었다.
'특별'한 새벽기도회와 '특별'한 안수기도회가 고3수험생들로 하여금 진정 대입을 앞둔 자신이 갈구하여야 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내가 순복하여야 할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끔 하는 일말의 표지가 있었다고 그 누군가 말한다면 그는 새빨간 거짓말쟁이다. '특별'한 새벽기도회와 '특별'한 안수기도회장에는 십자가에 어떻게든 엿 하나 더 붙여보겠다고 몰려온 지극정성 신도들이 우글거렸다. 궁색하게나마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 목회자라면 수험생들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한 최선의 배려라고 변명은 하겠지만, 어쨌거나 그네들의 교회는 미신의 굿판을 벌린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묻기 보다 인간의 욕망을 배설하기에 참으로 적당한 자리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02.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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