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가 뭐 먹고 싶은 건 없냐고 묻길래 새우깡이 먹고 싶다고 그랬더니 일 주일만에 새우깡 한 박스가 도착했다. 수십 봉지 새우깡 틈에 숨어있던 그이의 편지 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태연을 가장해도 슬픈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언제고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콜라도 잘 마시거라.
사람의 기억도 진화한다.
좋은 추억으로 만들고자 하는 생각을 부지불식중에 가지면
그 대상은 미화되고 다듬어져서 실제모습과 점점
멀어지기도 한다.
원래 그렇게 자신도 변하고 기억도 변하는 것이다.
시간 앞에서 그렇게 타협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 더디 가더라도 언제고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콜라도 잘 마시거라.
그것이 진짜일 것이다. 그것만이.....
그이는 내게 '바깥 대기를 마시는 데 창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한 사람이다. 또 민희는 이렇게 말했었다. '생각이 통하는 사람과의 대화에는 전기에 감전된 듯한 짜릿함이 있다!'
그래 그건 정말 그렇다. 소통하는 방법은 달라도 모두에게 가장 절실한 창 하나쯤은 있다. 그것이 하나에서 두 개였으면 하는 집착과, 그것이 누구였으면 하는 집착 따위가 여전히 남아있지만 창 하나의 존재로도 넉넉히 배부른 나였으면 한다. (이 칭얼거림이 멀지 않은 훗날에 하나의 환상으로 자리잡고 있을까 아니면 냉소로 남아 있을까?)
2002년 4월 5일 민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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