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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벗, 덩열군에게 이글을 바친다.
나는 원래 시계를 차지 않았다. 무어 옵션 옵션하여 더덕더덕 갖다 붙이는 게 만족스럽고 멋된 걸로 느껴지던 유년에는 버튼 많이 달린 시계를 갖게 되기를 소망하기도 했었다. 고등학교 땐 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교복 하의 벨트구멍에 시계를 차고 다니는 버릇이 생겨 왼손목은 비교적 가뿐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후로도 삐삐니 핸드폰이니 해서 시계랑은 친해질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지금 내 왼손에 차고 있는 손목시계는 썩 친숙하지가 않다. 땀이 차고 브래지어 자국 난 누드모델 마냥 창백한 살이 남는 게 여엉 별루다. 하기사 군대 생활을 하며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기도 한데, 제대를 하고서도 물리적으로 작살이 나지 않는 이상은 이 시계를 죽을 때까지 찰 것이다. 이 시계는 나의 벗이 선물해준 것이기 때문이다.
다 같은 선물이라도 이 손목시계가 유독 특별한 것은 우선 내가 늘 '존재의 무게를 느낄 수 없는 친구'라 부르는 이가 일부러 막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마련했다는 이유가 있고, 다음은 입대 선물이었다는 것. 97년 10월, 그이가 입대할 때도 내 마음 얼마가 녹아 들어간 시계를 그에게 선물했었다. 그는 훈련병 생활을 마치고 위로휴가를 나왔고 우리는 함께 길을 걸었다. 별반 말이 없었는데 나는 그이의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고, 그리고 손등, 그리고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유리알에 새겨진 수없이 많은 흠집들을 보며 그게 다 훈련소에서 생긴 거냐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미 고요한 밤에 그토록 창백한 시계를 쓰다듬으며 난 그의 군생활을 짐작하려 했었다.
00년 6월 나는 훈련소에 있었다. 도대체가 무슨 사고를 한다는 것 자체가 피로한 시간들이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내 시계를 보게 되었는데 그 여린 유리 위로 파편같이 깎여져 나간 유리조각들은 내게 그이를 - 아니 그이의 시계를 - 추억하게 했다. 혼란스러웠다.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존재와 존재를 용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가 자기를 녹여 내게로 흠뻑 젖어들기를 원할까. 나 역시 말이다. 난 고작 그이의 낡은 시계를 느끼는 데 30개월이 걸렸다. 그 귀한 존재 존재들의 사랑과 미움, 소망과 상처를 이해하려면 난 얼마나 용해되어야 하나. 도대체 단 하나의 상처 입은 잎사귀라도 가슴에 품을 수 있을까..........모르겠다.
며칠 전에 그이의 편지를 받았다. 설거지를 하려고 끌러논 시계가 문득 멈췄단다. 그리곤 걱정이 되어 떠오른 것이 내 얼굴이었단다. 그리고 급히 안부를 전하는 몇 줄 편지는 우표 두 개가 붙어 이틀만에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난 그이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다.
(200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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