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과 모란은 필 때도 아름답지만 지는 모습도 아름답다.
나에겐 모란처럼 살다 가신 고숙이 한 분 계신다. 그분을 처음 본 사십여 년 전부터 가시는 그날까지 한 번도 나쁜 모습을 본 일이 없다. 얼굴엔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신뢰감을 잃지 않았다. 신문지상에 나올 만큼 사회에 큰 기여를 한 일은 없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는 평화의 상징이었다.
9남매를 낳아 자식 농사 또한 훌륭하게 지으셨다. 그 많은 형제들끼리도 우애가 남달리 돈독했고 이 시대에 보기 드문 효자 효녀를 길러 낸 것이다.
우리 집과 고모 댁은 30~40리쯤은 떨어져 있다. 고모 집은 땅이 많아 농사도 다양하게 지었다. 묵은 김치가 밥상에서 외면을 당할 때면 고숙은 봄동을 한 자루씩 실어와 우리 앞에 상큼한 봄을 풀어 입맛을 찾아 주셨다. 집에 오실 때면 교통편이 좋지 않아 자전거를 타고 오셨다. 두루마기를 허리춤에 묶고 고모를 뒷자리에 태우고 대문을 들어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두 분은 평생을 큰 다툼 없이 지내셨고 어떠한 경우에도 존댓말을 쓰셨다. 서로를 존중할 줄 아는 그 자세가 그렇게 좋아 보였는데, 고모는 남편의 그늘에서 온실의 화초처럼 살다, 고숙이 가신지 2년이 채 못 되어 그분 곁으로 가셨다. 아마 고숙은 저승에도 한 발 앞서 가시어 편안한 자리를 만들어 놓고 고모를 부르셨을 것이다.
고숙은 떠나는 전날까지도 자신의 직분을 다하고 가셨다. 떠나기 전 몇 개월을 병원에 계셨다. 병원에 계시면서도 조상님들의 비석 세우는 일을 걱정하셨다. 사촌들은 모여 날을 잡았다. 그런데 산일 할 날이 며칠이나 더 남았는데 고숙은 서둘러 사촌들을 불러들였다. 그 밤으로 9남매 부부가 모두 모였고 다음 날 산일을 시작했다.
고숙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산일을 손수 하시기에 병이 호전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조상님들의 묘 앞에 비석을 세우고 당신의 가묘까지 만들어 놓은 후 그날 밤 가족들의 품안에서 숨을 거두셨다. 첫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고숙은 언제나 한결같은 그 모습 그대로셨다.
백목련처럼 필 때와 질 때가 판이하게 다른 사람...... 자목련처럼 양면성을 가진 사람...... 많은 사람들은 목련과에 속하는 것 같다.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이 정녕 아름다워야 하거늘, 언제나 한결같은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으니 사람이 사람을 불신할 수 밖에.
- 김찬옥의 '사랑이라면 그만큼의 거리에서' 본문 일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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