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도산을 예매한 덩열 군의 기대를 꺾고 환불, 오페라의 유령을 관람하다. 지루하기 그지 없었는데, 이런 수준 높은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졸 수 있냐는 비난을 들을 것 같아 대뇌를 채찍질 해가며 두 눈 부릅 뜨고 끝까지 참아내었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역도산을 고집했던 덩열 군의 독기 어린 시선을 막는 데는 실패했다. 크레딧이 올라가며 조명이 켜지자 관람석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영화 중간에 정확히 여덟 명이 극장을 뛰쳐나갔다. 나도 나가고 싶었다. 쓰블....-_-)
영화 '물랑루즈'와 '시카고'가 흥행에 성공하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뮤지컬'을 왜 '영화'로 만드는지에 대한 감독의 제대로 된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카고는 줄거리를 바탕으로 꾸며지는 뮤지컬의 연출 하나 하나가 너무나도 감각적이고 생동감이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허 아무개 씨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낼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물랑루즈는 남자 주인공의 짜증나는 행패에도 불구하고 여러 곡의 리메이크를 통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살려주기에 충분했다. 영화의 관람객은 19세기의 그 고풍스런 테라스 극장에 자리잡은 귀족분들만큼 고상하지도, 수준높지도 않다. 그들이 듣고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눈높이가 아니라면 굳이 뮤지컬을 영화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시카고와 물랑루즈는 스토리 자체가 관객의 집중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고 뮤지컬은 거기에 화력 좋은 기름을 더했다.
그런데 '오페라의 유령'은 어땠나? 스토리는 단 석 줄로도 요약이 가능할 만치 단순하다. 그렇다면 음악으로 승부를 하겠다는 얘긴데, 마치 우리 나라 전통의 '타령'을 듣는 듯한 그 곡들은 도대체 무엇이며, 단조로운 대사들마저 굳이 뮤지컬 형식을 취해 보고 듣는 이의 짜증을 유발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시카고에서 리처드 기어와 르네 젤 위거의 그 전율이 느껴지는 꼭둑각시 씬이랄지, 물랑루즈에서 이안 맥그리거와 니콜 키드만의 '앤 다 이아~ 윌 올웨이즈 러뷰~' 씬 같은 명장면, 명가창이 없이 그저 블록버스터의 무난한 사운드트랙만 두 시간 동안 줄창 듣고 온 기분이다.
쓸모 없는 음악이 주를 이루니 대사는 부족하고, 따라서 인물 캐릭터를 설명할 시간은 터무니 없이 부족해, 샤니 백작과 크리스틴이 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그토록 사랑하게 되어버렸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며, 크리스틴이 유령에 집착하는 이유 역시 설득력이 없어 그저 정신병 징후 있는 재능있는 아이로밖엔 보이지 않았다.(에미 로섬이 노래를 잘했긴 했다만, 영화속 청중이 보여주는 그런 '놀람'의 수준은 아니다. 특히 감정이 실리지 않은 맨들맨들한 높낮이라든가, 성량 문제는 좀 그랬다.)
이런 영화는 보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교훈을 안겨주는 영화다.
|
명 오늘 
명
PRINT Text
PRINT 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