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군 제대를 두 달쯤 남겨놓고 휴가를 나왔을 때 인천 CGV에서 혼자 관람했던 기억이 난다.
수양록을 찾아보니 영화티켓과 함께 남겨둔 메모에
'장진영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 영화'라고 되어 있다.
이 영화가 대단하게 특별한 내용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시작과 동시에 진수가 누구를 좋아하고 무지개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조금씩 빗나가며 또 다가섰다 이내 물러서는 사랑의 자박거림에 있지 않을까? 그 속에서 시간과 기억에 관한 가슴 저린 이야기가 펼쳐지고, 술을 눈물처럼 마시다 비로소 군대가기 전날임을 담담히 말하는 쿨~한 모습이나, 청소기를 든채 어쭙잖게 발을 폴짝 거리기도 하고 작은 화분이랑 생수도 나눠 마시는 귀여운 모습도 볼 수 있다.
"드라마 같은 사랑은 없어!"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거의 굳어갈 즈음에 이런 영화를 한 편씩 봐 주면 봄눈 녹듯 스르르 풀어져 다시금 촉촉해지는 걸 확실히 느낀다.
덧.
때로 건망증이 심하다는 점이 도움이 된다.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
를 보면서 내용이 전혀 기억에 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끝까지 가슴을 조마조마해 가며 행복하게 감상할 수가 있었다. 마치 봤던 영화인줄도 모르고 <은행나무 침대>를 보고 있는 진수(이정재)와 똑같다.
덧2.
영화 <오버 더 레인보우>에도 아쉬운 점이 많다.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국어책 읽듯 하는 연기를 보여주는 건 아무래도 각본 팀의 문제겠거니 하고 있다. 상인(정찬)이 모든 사실을 밝히는 클라이막스 대사도 어떻게 보면 화룡점정의 의무가 있었던 녀석인데, 참 밋밋하게 처리해버린 점도 실망이다. 그나마 신선하다고 느꼈던 것은 카메라 구성..... 특히, 엔딩 직전 현상액에 든 인화지 속으로 카메라가 쏙 들어가는 장면은 꽤 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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