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영화
<터미널(The Terminal)>을 보면서 계속 떠오른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가 바로
<첫키스만 50번째(50 First Dates)>
. 이 두 영화는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첫키스만 50번째'에는 영화가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식이 분명하게 살아있다. 예를 들어보자. 떨어지는 다리미에 얼굴을 강타당하고도 우스꽝스런 자국만 남은채 멀쩡히 잘 돌아다니면 코미디영화다. 그러나 두개골이 함몰되어 죽는다거나 피를 줄줄 흘리며 주인공에게 다가온다면 호러/스릴러영화다.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전에 다리미에 대한 입장을 정해야 된다. '나홀로집에'를 만들 것인가, '패닉룸'을 만들 것인가는 감독 마음이지만 두 영화가 짬뽕이 되어선 안된다. 그게 다리미가 영화 속에서 가져야 할 정체성이다.
'첫키스만 50번째'를 보자. 초반에 헨리(아담 샌들러)의 사람됨을 묘사하는 부분이나, 그가 루시(드류 베리모어)의 환심을 사기 위해 벌이는 엽기 행각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그저 가볍게 눈요기할만한 코믹 영화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단기기억상실증을 루시에게 통보하면서부터 그와 같은 가벼움은 점점 무게를 갖추게 되고 종국에는 '저렇게까지!'하는 감탄사와 함께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그때서야 돌이켜보는 전반부는 단순히 흥미만을 유발하기 위한 요소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감독의 연출은 이미 고점에서 저점을 향해 일직선의 완경사를 그리고 있었으며 관객들은 자신도 모른채 즐거이 그길을 따라갔을 뿐이다.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영화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터미널'에는 그런 목적의식이 증발되어있다.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그 감정을 해석하는 코드는 5분마다 뒤죽박죽으로 바뀐다. 크로코지아 내전 사실을 안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가 '심하게'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애국심 내지는 애향심에 동조를 해주어야 하는가 순간 망설임과 함께 민망함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다 터미널 안에서 생존의 방법을 하나 하나 찾아가는 에피소드들에서는 투니버스를 시청하는 즐거운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아니면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을 지켜보는 측은함을 가져야 할지 헷갈린다. 돌연 아멜리아(케서린 제타 존스)와 관계가 급진전할 때는 이 영화가 코믹 멜로 영화였던가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데, 또 조금 더 생각하면 이 친구 아버지의 그 애절한 유지(遺旨)가 떠올라 코끝이 시큰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버린다.
아멜리아와 함께 빅터와 가장 큰 갈등의 대척점에 서야 할 딕슨(공항 보안국장)의 정체성도 밋밋함을 넘어 자아분열에 가깝다. '국장으로의 승진'이라는 관건이 빅터-딕슨 사이의 갈등을 조장할 유일하고도 최고의 뇌관이다. 그리고 자리에 연연하는 딕슨은 그 자신의 도덕적 신념과는 분리되어 오직 과도한 직업정신에 기초해 악역으로 묘사가 되어야 할게다. 그게 아니고선 얼간이 캐릭터 밖엔 그가 할 역활이 없다. 그럼에도 보안감사 에피소드를 한창 영화가 진행되는 중간에 끼워버린다거나 덜컥 국장으로 승진시켜버려 더이상 갈등요소를 찾아내기 어렵게 만든다거나 하는건 그야말로 감독의 연출력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뿐인가. 감초 역할을 하는 조연들은 고착화된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며, 굽타(청소부 할아버지)가 비행기에 뛰어드는 장면은 매너리즘과 유치함의 결정체가 어떤 것인가를 3백명 관중이 일제히 체험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보안요원들의 감정에 대한 감독의 입장정리도 시종 불분명했기에 마지막 외투 벗어주는 장면에서는 극장내의 수십명의 관객들이 '저건 아니야!'를 연발하게 만들었던 건 당연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리고 들로리스(비자심사직원)와 엔리케(콧수염난 백인 젊은이)의 결혼이 현실세계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희극적 설정이었던데 반해, 두 사람의 결혼사실이 딕슨에 의해 빅터를 압박할 수 있었던 지극히 현실적 설정으로 탈바꿈한 것 역시 '다리미'를 제대로 구분 못하는 감독의 실수라 할 수 있다.
심하게 말해서 이 영화는 똥개 훈련시키는 영화다. 앉아 일어서 앉아 굴러 짖어 굴러.....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끝까지 웃어 울어 감동해 웃어 울어...를 챗바퀴 돌듯하고 있어, 감독이 관객에게 요구하는 게 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기대하고 봤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톰 행크스와 스필버그의 합작품이 이 정도 수준이란 건 미국 드림팀이 올림픽 초반에 탈락한 것만큼이나 의아스런 일이다. 이 영화가 가진 유일한 미덕이 있다면 '캐서린 제타 존스는 예뻤다' 정도가 아닐런지.....
터미널 ★★☆ - 작위가 지나치면 이렇게 영화를 망친다
덧.
일부 평론가들의 이야기
(전략)......반면, 이 영화에 반감을 나타낸 평론가들로서,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스티븐 레이는 "코메디와 비애감의 고르지못한 혼합."을 지적했고, 아리조나 리퍼블릭의 빌 멀러는 "이 영화의 모든 점은 마치 강요된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고 불평했으며, CNN의 폴 클린턴은 "행크스의 캐릭터와 이상한 상황을 배우는 처음 45분 동안 영화는 꽤나 흥미롭다. 하지만 이내 영화는 잠수해 버리고 다시는 부상하지 않는다."고 평했다. 또, LA 데일리 뉴스의 글렙 휩은 "마치 추수감사절 연휴 성수기에 항공기 이용을 자제하듯이 이 문제많은 영화의 관람을 자제하시라."고 빈정거렸다.
출처 :
http://blog.naver.com/neonhun/20004841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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