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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정치/에쎄이(Essay) - 장의사의 돈벌이  
   posted at 2004-05-17 03: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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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level 0  llllllllll 
 퍼머링크 : http://reedyfox.com/island.php/june/105  [복사]
‘행복해지기를 두려워 말자!’ 지난 17대 총선기간동안 민주노동당이 사용했던 여러 캠페인 구호들 가운데 하나이다.  처음 들을 때도 귀에 착 감기고, 뜻을 음미하며 되새겨 볼수록 울림을 주는 숨은 의미에 작은 감동까지도 느껴지는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이 캐치프레이즈는, 그러나 민주노동당에서 직접 만든 것은 아니고 브라질 노동자당(Partido dos Trabalhadores, 약칭 PT라고 한다)이 2002년 대선 때 만들어 사용한 구호였다(이 정당 소속의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가 지금의 브라질 대통령이다).  변화를 통해 자신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가 자신들만의 것이 아닌,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가진 것임을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는 의미인데, 개혁의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전달해 주는, 거듭 생각해 보아도 정말 좋은 문구다.

밝은 표정으로 정당원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룰라 대통령.  앞의 붉은 별은 PT의 심볼이다


그리고 이런 문구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당에 인용해 사용할 수 있는 정당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 정당이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당당히 원내진출에 성공했다는 것이 무척이나 다행스럽고 기쁘다.  형편없는 글이었지만, ‘경계이론과 분리이론을 통한 정당관의 비교’글에서 앞서 쓴 것처럼, 나는 비록 이루고자 하는 꿈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성과를 거둔 민주노동당과, 이들과 선의의 정책대결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열린우리당이 촘촘히 그려내는 디테일과 실현의 방식이 다를지언정 그들이 지향하는 공동선(共同善)의 외양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소박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게 정말로 나만의 ‘소박한’ 생각이 아닐까, 하는 자괴감 같은 게 들게 만드는 글을 만나는 일이 잦아져 고민스럽다.


물론 여느 때처럼 그런 글에 대해 (1) 정치적 이견을 지닌 이들을 싸잡아서는 경멸적 언사를 동원해 부르는 일은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 (2) 정치가가 자신의 정치적 결단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지는 것과 그의 지지자들이 그의 결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나쁜 결과에 대하여 ‘이것이야말로 너희들에게 퍼부어져야 마땅한 저주’인 것처럼 끓어 넘치는 적개심을 표현하는 것은 사실의 왜곡일 뿐이라는 것, 그리하여 (3) 마치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들이 우리의 조상들에게 저지른 잔학한 행위들과(일본인들은 당시 관동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집에 불을 지르며 독을 타지 않은 우물에는 자신들만이 알아볼 수 있게 조선말로 표시를 하고 다닌다며 닥치는 대로 재일 조선인들을 살해하였는데, 그 추정치는 최소 6천명에서 2만명을 헤아린다.  어처구니 없는 유언비어 몇 마디로 몇 만명이 죽어나간 것이다.  이것은 '日本人'이라는 사람들의 정체성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과는 궤를 달리하는 성질의 집단살해이고 만행(蠻行)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부족한 재앙이었다), 그리고 가까이는 지금 이라크에서 미군들이, 그리고 반군 게릴라들이 서로 주고받는 민간인들과 포로들에 대한 행위와 다를 바 없는 증오의 재생산 그 이상의 어떤 것도 될 수 없다는 말을 세세히 그러모아 ‘댓글’로 달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거푸 이어지는 인터넷에서의 이런 글들을 보고 있으면 논리대결이라는 페어플레이를 통해 남을 설득해 동조(同調)를 이끌어낸다는 애초의 토론의 목적은 말할 것도 없이, 그저 어찌 해볼 길 없이 막막하고 심지어 무섭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을 때가 있다.  이야기를 나눌 테이블이 아니라, 상대방을 불타오르는 적의(敵意)로 난자하기 위한 시퍼렇게 날 선 칼이 서로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데 까지 미치자 드는 두려움 같은 것.


인터넷에 있는 여러 정치사이트들 가운데 열린우리당 창당에 반대해 새천년민주당 지지자들이 만들어 낸 홈페이지들이 몇 있다.  이들이 새천년민주당을 지지하고 열린우리당을 배척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그들이 인터넷 사이트를 만든 주된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주장의 자연스러운 테마가 되는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눈에 띄게 들어오는 주장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부안 핵폐기장 선정과 관련한 환경문제에 대한 목소리였다.  ‘우리의 고향에 핵폐기물을 쌓아두게 할 수는 없다’는 주장은, 핵폐기물 처리의 불가피성을 압도하는 몇 배의 힘이 듣는 이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이러한 당위(當爲)에 실리는 힘이, 마침 당해 정책에 대해 최종결정권을 가진 노무현 대통령과 그와 다르게 보이지 않는 열린우리당에 대한 비난을 담을 커다란 그릇으로 주저 없이 사용되었다.


‘우리의 고향을 핵폐기물로부터 지켜내겠다’는 이들의 대의에는, 그 속내의 문제가 어떠하든 논쟁의 의제가 지니는 무거움과 올바름에 대한 기준이 담겨 있었기에 이를 주장하는 이들은 그것들을 온전히 가져가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핵 폐기장 설치반대의 목소리는 노무현이라는 권력과 그에 기생하는 열린우리당이라는 정치세력에 대한 저주와 악다구니에 뒤덮여갔고, 마침내 사이트에서 벌어지는 모든 논쟁은 ‘미친 노빠새끼들의 박멸’이라는 결론아닌 결론을 향해 치달아서는 삼천포에서 한참 더 들어간 어딘가 쯤에서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다시 이라크 파병문제가 새로이 논의되어야 할 당위성과 필요성을 얻는 시점이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나누어진 명분과 실리에 대한 무거움과 올바름의 기준을 처음부터 올곧게 이야기해 온 이들이 그것 봐요, 파병은 미친 짓이라고 했잖아요! 하면서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  그들의 입을 틀어막는 가시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그들 자신의 입에서 돋아나는 것을 나는 본다.


너희는 우리처럼 파병반대로 소리높이지 않았지, 너희는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맹목적인 추종자들이지, 하여 너희는 친미라는 죄를 지은 씻을 길 없는 죄인이야, 너희는…….  어느 샌가 파병의 부당함이라든가, 전쟁의 무익함 같은, 원래 말해주고 싶었을 이야기의 무거움과 올바름을 뒤덮어버린 저 무성한 저주와 증오의 가시덤불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도 손을 내밀어 볼 수도 없을 만큼 멀어져버린 너도 나도 아닌, 그리고 민주무슨당 지지자도 열린무슨당 지지자도 아닌 ‘우리’들이 맨 처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그것들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가버린 건지.  옳고그름을 압도해버린 편가르기 앞에서 들어설 자리가 없어진 나는 덩달아 무르춤해질 수 밖에 없다.


이글의 초안(初案)을 적었을 때는 총선이 마악 끝나고 열린우리당의 과반수 등원과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로 인해 국가보안법의 개폐와 이라크파병문제의 재검토 및 철수문제가 하나 둘 씩 제기되던 시점이었다.  그리고 글을 정리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의원(국회의원의 임기개시시점에 대하여는 헌법학상 견해대립이 있으나 당선자라는 신분대신 의원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자 한다)이 조선일보사 노동조합과의 초청강연회에서의 발언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4월 25일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로 인해 비판여론이 형성되자 사과를 한 이래 두 번째다.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금지라는 당의 방침을 어긴 것에 대해 지지자들은 이것은 조선‘노보’와의 인터뷰가 아닌 ‘강연’이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으며, ‘전체 맥락’은 결코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2004년 5월 14일자 조선노보


조선'노보'의 기사전문



그러나 반대파는 이러한 사정을 세세히 따져가며 열외(列外)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당장 노회찬 의원의 강연내용은 예쁘게 꾸며져서 조선'일보'의 좋은 기사가 되어버렸다.  안티조선을 목이 터져라 몇 년이고 질리지도 않게 해온 사람들이 그 욕을 먹어가면서 구독과 취재요청을 포함한 일체의 타협을 거부한 이유는 그들이 언론의 자유가 뭔지도 모르는 극렬좌파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조선일보가 싸움의 ‘룰’이라는 것을 애초에 지키지 않는 집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노회찬 의원이 그 반칙에 걸려들었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공간에서 이를 비난하는 이들과, 그들을 미친 노빠, 열우당 지지자, 혹은 노사모 회원들로 맞받아치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을 것을 생각하면 정신이 다 아득하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리 사생결단을 낼 요량으로 싸우는 것이었던가.

인터넷 조선일보의 관련기사


십년 전쯤 읽은 싸구려 페이퍼백 소설에 의하면(외계의 생명체들이 인간의 감정에서 발산되는 에너지를 자원삼아 살아가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들을 어느 과학자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 이를 알게 된 일련의 과학자들이 연쇄적으로 살해당하자 그 미스터리를 쫓아 엎치락 뒷치락하며 진실을 밝혀낸다는 내용의, 굉장한 Sci-Fi였다), 미국 디트로이트의 경찰은 사건이 생기면 이 사건으로 누가 맨 마지막에 돈을 쥐게 되는가를 가늠해본 뒤 비로소 수사의 단초를 잡아나간다고 한다.  이라크 파병문제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논쟁에 임한 사람들, 그리고 이번 노회찬 의원의 발언으로 ‘아마도’ 공수(攻守)가 바뀌었을 격론의 현장에 뛰어든 사람들 가운데 결국 돈을 쥐게 되는 이들은 누구일지, 마치 DPD의 경관이라도 된 것처럼 생각해 본다.  헌데... 이런 피비린내 나는 사건으로 피해자가 늘어갈 수록, 결국 돈을 쥐게 되는 이는 범인도, 피해자도 아닌 ‘장의사(葬儀社)’가 아니었던가.  시신을 치장해주고 윤기나는 관(棺)의 주인들이 늘어갈 수록 돈을 더 많이 쥐게 되는 장의사들 말이다.  논쟁에 몰입하느라 '희생자를 늘리는 것'이 싸움의 목적이 되어버리지는 않았는지, 함께 돌이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길 빈다.  개혁이라는 열매를 엉뚱한 이들이 거두게 되는 일이 생기기 전에 말이다.


참고 서지:

인터넷 Critical Theoretical Approaches to Restructuring Processes and Resistance in Latin America, York University 
http://www.yorku.ca/cerlac/gsla.html새창으로 열기

인터넷 조선일보
http://www.chosun.com/w21data/html/news/200405/200405150031.html새창으로 열기

인터넷 민주노동당
http://www.pangari.net새창으로 열기

한겨례21 제506호 기사 '거대한 소수의 치밀한 승리 - 민주노동당은 4.15총선에서 어떻게 희망을 쟁취했나, 그 10가지 포인트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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