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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교육자집안/모태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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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견(偏見)
편견이 체화(體化)되는 데는 얼마만큼의 경우의 수가 필요할까. 자연과학에서는 하나의 가설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실험값을 동일하게 얻어낼 것을 요구한다. 실험자마다 제각기 다른 실험 결과를 가져온다면 공식화 할 수 있는 가설이라고 애초에 부를 수도 없을 것이기에 오랜 시간을 거쳐 입증의 절차를 요구하는 것을 무리한 부탁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인 개개인의 ‘편견’을 진짜 내것으로 만들려는 경우라면 어떠할까? 간섭받을 필요도 없고, 드러내지만 않는다면 비난받을 일도 없을 마음 깊은 곳의 편견 말이다. 이번 이야기는 각자가 하나쯤은 품고 있을 법한 개인의 편견에 대한 것이다.
인격이 고매하고 신앙이 깊다 하더라도 드러나는 경우가 적을 지언정 마음속의 편견은 드러나지 않는 도의적인 범죄로서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 같다. 언젠가 존경하는 한 목회자의 입에서 ‘일의 융통을 꾀할 때 으레 뇌물을 쓰는 것이 전라도 사람들의 특징’이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것을 듣고 기겁을 한 적이 있다. 강대상 위에서 설교 도중 전해지지 않고 사석에서 나온 말이라 천만다행이라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호남도 영남도 아닌 고향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도 서글픈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지역감정은 우리 마음속에 하나쯤 들어차 있을 대표적인 편견의 예가 되어준다(이에 대하여는 2주 뒤에 글을 정리하여 올려드리려고 한다). 고약한 예이지만, 호남 사람이 영남 사람에게, 반대로 영남 사람이 호남사람에게 갖게 되는 반감이 체화되는 데는 몇 명의 호남사람, 혹은 영남사람을 만나보는 게 필요할까. 내 경험으로는 더도 덜도 말고 단 두 명으로 충분하다. 그러니까, 편견을 학습하는 데에는 두 개의 케이스를 경험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예단(豫斷)을 가지고 있는데다 두 명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예단에 ‘부응(副應)’ 해주는 타 지역 사람을 만나면 예단은 편견에서 확신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굳어진 편견은 앞으로 만나게 될 인생의 모든 호남, 영남 사람들을 향해 겨누어지게 된다. 편견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 두 명을 경험하여 굳어진 편견은 200명의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해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2. 교육자 집안
우리는 어떨 때 ‘교육자 집안’이라는 말을 쓰게 될까. 아마도 잘 모르는 누군가를 다른 이에게 소개해 줄 때 사용되는 것이 범례일 것이다. 물론 ‘좋은’ 의미로이다. 그러니까, 양친이 모두 고등교육을 수학하셨으며,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을 가지고 계시고, 하여 기본적인 학식은 물론 인품이나 덕망 등을 망라할 수 있다고 흔히 생각하는 ‘집안교육’ 하나는 더 말할 필요가 없는 퀄리티를 보유한 사람이다, 라는 의미로 이야기하고자 할 때 ‘아무개는 교육자 집안 출신’이라는 말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설명이 가장 빈번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위력을 발휘하는 때는-말할 것도 없이 배우자감이 될 사람을 소개받는 경우가 그러하다.
결혼에 대한 경험이 없는 내가 이상적인 배우자감에 대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스운 것이 될 테지만, 적어도 결혼은 두 사람이 만나 남은 삶을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혼인관계의 계속에 대한 합의라고 할 때(말투하곤…….) 안정되고 믿음이 가는 사람이 배우자로서 더 호감이 가는 것은 보편적인 생각이라고 할 것이다. 교육자집안이라는 것은 이런 특수한 상황을 굳건히 백업해주는 귀중한 정보가 된다. 기왕이면, 내 배우자의 집안이 좋으면 좋겠는데 이럴 때 교육자 집안이라는 말은, 왠지 안심이 되면서도 뿌듯한 느낌이랄까, 그런 인상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주문(呪文)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내가 재벌2세가 되기를 선택해서 태아날 수 없듯이 아무리 이렇듯 좋은 인상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다고 해도 모두가 교육자 집안 출신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겠는가, 세상에는 '교육'이 직업이 아닌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아무나 교육자 집안에서 날 수 없고, 또 그런 배우자를 맞이하기는 더 쉽지 않으니 그 희소가치가 출신을 더 높고 좋게 생각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어주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지난 몇 달의 짧은 시간 동안, 나에겐 이러한 일반적인 생각을 거스르는 ‘교육자 집안’에 대한 편견하나가 마악 자리를 굳히려는 사건이 ‘두 개’가 생겼다. 그 한 예는 같이 공부를 하던 이들 사이에서 드러났는데, 소소한 이야기를 하다가 나의 아버지가 아무개통운주식회사의 노조위원장이라는 직함으로 일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이다(‘노조’하면 핏발 선 눈에 붉은 깃발이며 머리띠 같은 게 떠올라서 몸서리쳐지실 분이 계시다면, 굳이 사과할 것 까지는 없겠으나 미안하다는 말씀을 올린다. 변명아닌 변명삼아 말하자면 아버지가 일하시는 노동조합이 소속되어 있는 항운노조는 민주노총이 아니라 한국노총 소속의 단위노조조직이어서 노동3권의 행사에 있어 생각하시는 것만큼 강성(强性)도, 체계적으로 조직이 운영되지도 않는다).
항운노조 산하의 한 단위사업장 노동조합을 리드하는 것이 아버지의 직장에서의 3년 전부터의 일인데, 이것이 하필 어머니는 교감선생님으로 정년퇴임을 하시고, 아버지는 현직 교장선생님인 그 사람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학교 운영과 교육에 사사건건 딴지만 거는 전교조'와, '돈 좀 더 받겠다고 툭하면 파업이나 일삼는, 나라경제는 아랑곳 없이 저들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집단인 노동조합이라는 것들'에 대한 반감(反感)이 뒤섞인 자신의 아버지가 가진 혐오를 솔직히, 그리고 고스란히 전달해 준 그 사람은 이후 퍽이나 나와는 소원해져 버렸는데, 나는 평생을 교직에 몸담은 학식과 인격이 높으실 그 사람의 부모님의 생각을 미루어 짐작해보다가, 혹시 내가 모르는 마약밀매나 청부살인 같은 것을 노동조합이라는 데서 원래부터 해오던 게 아닐까 하는 억측을 정말로 진지하게 해보게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넘치는 '노조 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을 설명할 길이 없지 않는가. 교육자 같이 합리적이고 사려 깊은 판단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충만한 분들이 그렇게 나쁘게 노조를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노조가 나쁘기 때문일 것이야, 라고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의 교육자 집안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가 최근에 이루어졌다. 이 역시 절친한 나의 벗 가운데 하나와 관련된 일이다(생각하면 이 역시 끝없이 우울해질 일인지라 다시 자세히 적지는 않겠다). 아, 이를 어떻게 하면 좋은가. '교육자 집안이란, 머리는 굳을 대로 굳어져서 자신과는 다른 생각을 용납할 줄 모르며 한줌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일체의 주장에 치를 떠는 교육관련 직종을 영위하는 수구적 이데올로기를 세대를 거쳐 세습하는 가족공동체'라는 강력한 편견이 체화되는 데 필요한 경우의 수가 만족되어 버린 것이다.
일반에 대한 생각에 거스르는 편견인지라 정말 굳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없앨 도리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요즘 나는 이를 일반화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 중이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인격을 가진 분들 슬하에서 자란 이들을 만나보지 못해서 그렇지, 하고 스스로를 타이르기도 하고. 아무튼 난리도 아니다. 이 무슨 사서 고생인가.
3. 모태신앙(母胎信仰)
비슷하게, 사람의 출신과 관련한 편견으로 모태신앙이라는 말에 얽힌 이야기도 제법 많다. 목사님의 자녀들이나 교역자 분들의 자녀들 가운데 특히 많을 모태신앙. 태어나기 전부터 신앙생활을 한 것으로 여겨지는, 역시 해당사항이 없는 사람들로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선천적(先天的)'인 신앙은, 교육자집안이라는 말 만큼이나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좋은 인상을 주는 일종의 보증문구(保證文句) 같은 역할을 해 주는 것 같다.
그런데 ‘목사님’이나 ‘집사님’같은 호칭과는 또 다른 이 말이 주는 느낌은 의식적으로 듣는 이들에게는 좀 각별해서, 어떤 사람을 평가하는 데 곧잘 보이지 않는 잣대 구실을 종종 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잘 했을 때야 뭐가 문제겠느냐만은 백 개를 잘해도 한 개를 잘못하면 그게 드러나 보이는 것이 사람의 심보인지라 잘 못 했을 때 모태신앙이라는 말은 여기저기 사람들의 입에서 호출되기 바쁘다. 그리고 그놈의 편견은 바로 이런 경우를 놓치지 않는다(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라면 지금 머릿속을 스치는 사람들 몇몇이 있지는 않는지).
예수를 믿지 않는 분들이 교회를 다니는 몇몇의 사람들을 보고 기독교를 단언하는 용기를 낼 수 있게 하는 것이 편견의 숨겨진 힘이라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또 모태신앙을 가진 아무개에 대해 갖는, 이후로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을 판단하게 될 기준을 갖게 되는 것 역시 편견이 갖는 숨겨진 힘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편견이 그러하듯이 그 생각은 나만의 편견이 아니라 그 사람은 '원래 그런 것'이고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확신의 옷을 입고 머릿속 제일 편한 곳에 앉아서 도통 움직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혼쭐이 나서 내쫓기기 전까지는.
4. 어떻게 하지?
공정한 척 하지만, 사실은 누구는 좋아하고 누구는 싫어하기로 작정해 놓고 사람을 행위에 의해 평가하는 척 하는 게 대부분의 사람들의 솔직한 속내이다.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없으면 그 사람에 대한 신랄함이란 하늘을 찌르지 않던가(당장 지난 선거 때 머릿속에 들었던 몇 가지 강렬했던 감정들을 생각해 보라). 여중생이나 여고생들에게 스타 아무개가 왜 좋으냐고 물으면 잘생겨서라거나 노래를 잘해서라거나 라는 이유를 압도하는 게 ‘그냥 다 좋아요’이다. 나이를 먹고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그 소녀들보다 사려 깊은 사람으로 바뀌는가 하면 그럴 리가 없다. 그동안 먹은 나이와 공부는 애초에 이미 정해진 내 생각을 견고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총동원 될 테니까 말이다(UC Berkeley에서 9년을 공부하고 지금은 부산의 아무개 대학에서 교수로 계신 나의 벗의 아버님은, 지난 97년 대선 때 아들이 김대중후보를 찍겠다고 고심 끝에 결정하자 선거 전날 밤에 장거리 전화를 걸어 왜 김대중이를 찍으면 나라가 망하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시느라 두 시간이 넘게 아들과 통화를 하셨다. 남부 액센트의 미국식 영어와 부산 사투리를 뒤섞어 쓰는 희한한 말투를 가진 내 벗은 불효막심하게도 아버님의 가르침을 배반하고 김 후보의 당선을 도와 ‘나라가 망하는데’ 일조를 단단히 했다).
그럼 대체 이런 편견은 어떻게 없앨 수 있단 말인가. 공부도 소용이 없고 나이를 먹으면 오히려 더 굳어진다니. 세상을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고, 이미 우리 마음속에 대여섯 개쯤은 품고 있을 편견을 무엇으로 적출해 낼 수 있단 말인가. 선문답할 의도는 아니나,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서 기도하라(누가복음 22장 46절)’는 예수님이 지쳐있는 제자들에게 이른 말씀밖에는 달리 생각나는 답이 없다. (1) 내가 생각하는 게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상식적인 기준과, (2) 다른 의견에 대한 관용(혹은 오래 참음), 그리고 (3) 이들을 편견을 대신해 체화하는, 두 번이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반복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편견이 만드는 나만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생각 속에서 호흡하며 살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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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ueen Victoria, The 'Famine Queen' is struggling with Hibernia/Erin in 18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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