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이에서 어려운 것이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한번쯤 들어보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상급 학교로 진학하거나 새 직장에 입사할 때, 낯선 이들을 새로이 만나 어색함을 털어버리고 이런저런 교류가 있게 되면 어느 순간에고 기어코 맞닥뜨리게 되는 흔하디흔한 인관관계에 관한 금언.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때로는 무심코 넘고, 때로는 알면서도 넘는 그 한없이 모호한 ‘적당한’ 간격(間隔).
이 말을 조금 더 공적인 관계에서는 어겼을 경우 책임을 묻도록 하는 장치까지 마련해 놓고 있는데, 다름 아닌 부동산의 사용, 수익과 관련한 재산관계를 규율하는 실정법이 그것이다. 일반적인 사법(私法)상의 법률관계를 규율하기 위해 만든 대한민국 민법전은, 상린관계(相隣關係)라는 이웃사이에서 발생할법한 물권적 법률관계를 규율하기 위해 미리 이런저런 규정들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가운데에 '적당한 간격‘에 대해 만들어 놓은 조문이 있는 것이다. 물론 당해 조문은 사람과 사람사이가 아닌 기존건물과 신축건물 사이의 거리제한을 규정한 것이라는 점이 다르지만, 그 재산을 향유하는 주체는 결국 사람들이니, 이러한 거리두기를 ‘이격거리(離隔距離)’라는 읽기도 힘든 한자어로 적어본다고 해서 현학 허세라고 욕을 먹지는 않겠지, 한다.
【mor】제242조 (경계선부근의 건축) ①건물을 축조함에는 특별한 관습이 없으면 경계로부터 반미터이상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
②인접지소유자는 전항의 규정에 위반한 자에 대하여 건물의 변경이나 철거를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건축에 착수한 후 1년을 경과하거나 건물이 완성된 후에는 손해배상만을 청구할 수 있다.
제243조 (차면시설의무) 경계로부터 2미터이내의 거리에서 이웃 주택의 내부를 관망할 수 있는 창이나 마루를 설치하는 경우에는 적당한 차면시설을 하여야 한다.
법이 이격거리를 규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인접하여 존재하는 다른 개인의 권리, 즉 (1) 재산권과 (2)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사람간의 거리두기는 어떠한지 다시 거슬러 올라가 되짚어 보자. 놀랍게도 어색하지 않게 그대로 빌려 써도 괜찮을 만큼 겹치는 부분이 많다. 결국 존재해야 할 이격거리는 관련 당사자간의 권리를 최대한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자동적인 마음의 안전장치들로 기능한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이것이 침범되었을 때 마음이 불안하고 고민스러워지는 것은 항원과 항체가 몸 안에서 싸우느라 신열(身熱)이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의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걸 안다고 아픈게 누그러지지는 않겠지만.
규범의 세계에서 이격거리를 위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위반자는 건축을 중단당하거나, 상대방이 입은 유무형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마음의 세계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내가 침범하였거나, 혹은 침범당한 이격거리가 존재한다면? 아직 인접해있는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건물 짓기가 완성되지 않았다면 멈추어야 할 테지만, 이미 아주 가까이 누군가의 곁에 마음을 지어 올렸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논리적인 답은 두 가지이다. 내 것을 팔던가, 아니면 그이의 것을 사던가. "발생한 손해는 전보(轉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재산법의 가장 중요한 실천원리 가운데 하나이다. 마음과 마음 관계를 규율하는 가장 합리적인 준칙으로서 이 원리를 원용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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