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다섯 살 어린 여동생이 하나 있다. 다섯 살 차이가 나기 때문에 내 기억 속에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어느 병원 대기실에서 앉아 하염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던 일,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자 병실에 엄마가 하얀 옷을 입고 얼굴이 뚱뚱해져서는 누워 있다가 고개만 겨우 돌려 나를 바라보던 일, 그리고 그 옆에 눈을 꼬옥 감고 있는 불그스름한 얼굴의 아기가 뉘여 있던 일 같은 것들이 흐릿하지만 존재만큼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여자들의 수족(手足)이야 남자들보다 당연히 작게 마련이지만, 여동생은 유난히 손발이 작은 편이어서 어렸을 땐 잠들어 있는 동생의 손바닥을 살짝살짝 꾹꾹 눌러 본다거나, 잠결에 꼼지락거리는 손을 보며 음 정말 조그맣군, 하며 흐뭇해(?) 한 적도 있다. 이것이 기화(奇貨)가 되었는지 나는 지금도 여자의 손에 유달리 집착을 보이는 편이어서, 어느 정도냐 하면 괴외선생을 하러 가서는 학생 되는 아이의 손을 부탁해 사진으로 찍은 적도 있을 정도다. 예쁜 손은 좋다. 작고 예쁜 손은 더 좋다.
여동생이 있어서 특히 좋은 점은 역시 동생으로부터 오빠대접을 받을 때이다. 배가 고프다고 하면 정말로 음식을 만들어 준다거나 할 때는 놀랍고 감동스럽다. 물론 볶음밥에 들어간 감자가 우적우적 소리를 내며 씹힌다거나, 팬 케이크 속에 하얀 가루가 들어있어 이게 뭐냐고 물으면 ‘어머, 아직 조금 덜 익었나보네.’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릴 때가 있는데 이건 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교련시간에 시험을 본다면서 나를 억지로 끌어다 앉히고는 머리에다 삼각건이나 붕대를 감았다가 풀었다가 하면서 연습으로 빌려가는 것 정도는 괜찮지만.
집안에 있을 때 동생은 대부분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彼氏彼女の事情)’에 나오는 유키노(宮澤 雪野)처럼 하고서 휘적휘적 돌아다닌다. 머리는 질끈 빗어 뒤로 묶어놓고 - 그래서 꼭 자기 주먹만한 꽁지가 뒤에 생긴다 ― 삐져나오는 머리카락은 실핀들로 모조리 제압한다. 거기에 안경을 쓰고 헐렁한 트레이너를 입고 돌아다닌다. 트레이너 상의 가슴부분에는 ‘Wayne State University'라는 글자가 산세리프체(Sans-serif體)로 아치를 그리며 쓰여 있는데 물론 그녀는 웨인대학 학생은 아니므로 꼭 그 옷을 입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나 어쨌든 집안에서 그녀는 이 세상 어딘가에 웨인대학의 존재를 주장하는 가장 유력한 증거가 되어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집 안에서 그녀가 하는 일 중 제일 두드러진 것은 토끼 몽실이를 돌보는 것인데, 먹이가 되는 건초를 버니버디에서 구입하고, 착한 일을 했을 때 상으로 토끼전용 캔디를 준다거나, 자주 빠지는 털을 촘촘한 빗으로 정성스레 빗어주는 일등을 한다. 덕분에 몽실이는 동생하고의 의사소통이 제일 원활한 편으로서 유대 또한 무척 돈독한데, 이러한 까닭에 일년에 몇 번 있는 임신주기에 이르러 암컷인 몽실이가 자기의 털 가운데 부드러운 것만을 스스로 뽑아서 새끼를 낳을 보금자리를 베란다 구석에 먹이도 먹지 않고 며칠을 걸려 정성을 다해 만들고서는 그렇게 애써 만든 둥지 한 가운데 그녀의 하얗고 조그만 양말 한 짝을 물어다 놓은 것을 나중에 동생이 발견하고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운적도 있었다.
집 밖에 있을 때 동생이 어떤 모습인지는 알 길이 없다. 옷도 신경 써서 입고, 화장도 할 테지만, 일전에 우연히 본 화장하는 동생의 모습은 왠지 남같이 느껴져서 -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위違. 화和. 감感. 이다 - 이후로는 외출하기 위해 변신중인 동생은 가급적이면 대면을 삼가는 중이다. 왜 마법소녀들의 변신과정은 언제나 철저한 비밀에 부쳐져야 하는지 알 것만 같은 심정이다.
며칠 전 동생의 어렸을 적 친구 중 한명이 결혼을 해 아기를 낳았다고 하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아기가 꿀벌이 그려진 옷을 유난히 좋아해 친구의 아기는 이름대신 ‘꿀벌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아아, 동생 역시 결혼해 아기를 낳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나이가 된 것이다.
하지만 아마 실제로 그런 일을 겪는다면 외출하기 위해 화장을 하는 여동생을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어색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 것 같다. 요컨대, 여동생은 변신할 때가 있기 마련인데, 나는 언제나 꼬마로 보이는 여동생의 변신이 언제나 낯선 것이다.
그래도 변신을 거듭하는 여동생의 삶에 멋대로 간섭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변신에는 룰이 있으며, 이루어야 할 나름의 목표가 있는 것이니까. 나는 그저 세상의 모든 여자들에게도 이런 식의 현기증 나는 변신의 순간이 있는 것이겠지 하고 짐작하며 그래도 동생은 동생이니까 하며 마침 몽실이를 토닥거리고 있는 동생의 머리를 역시 토닥거려 준다. ‘왜 그래?’하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는 동생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그녀가 왠지 쓰다듬으려고 하기만 하면 버둥거리다가 어디론가 달아나버리는, 속내를 알 수 없는 토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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