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r】시험이 달갑지 않기는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여기에 '체념에 빠른' 내 성정이 더해지면 일은 정반대로 흘러갈 때가 많다. 시험일 2주 전부터 심박수가 날이 갈수록 빨라진다든가 잠이 점점 없어진다든가 하는 생리적 반응은 이를 돕는 부차적 요소가 된다.
시험범위 내의 책과 자료는 학교 시험을 기준으로 하면 보통 300페이지 정도인데, 이것을 우선 10분의 1인 30페이지로 줄이는 게 그 시작이다. 이것을 다시 주제별로 10 페이지로 줄이고, 그리고 다시 이것을 절반, 그리고 또 절반으로 줄여나간다. 나오지 않을 법한 것을 제한다는게 아니다. 한 단락이 한 문장으로, 한 문장이 한 단어로 수렴하는 화학반응을 통해 줄여 나가는 것이다. 마침내 시험전날이 되면 애초의 300페이지는 한 페이지로 줄어들게 되고 시험은 거기서 벗어나 출제될 리 없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 올라타게 되면 나중에는 점 하나를 찍어 놓고도 그 점의 모양새를 보고 몇 페이지에 걸친 내용을 모조리 기억해낼 수 있게되는 경험도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모든 일들은 병적인 흥분상태에서 벌어지는 것들이다.
그러면 이것이 기적의 학습법이자 민사고 아이들, 혹은 우리자식 하바드 보내기 하는 전국의 수험관련독자들을 뒷골 땡기게 하는 하일리-모티베이티드-감동만빵 책에 실릴법한 우수모범사례가 될 수 있는가하면 그렇지는 않다. 이런짓을 오래하면 미치거나, 일찍 죽거나, 인생이 남루해진다. 덕분에 나는 요즘 셋 다 겪어보고 가는 게 아닌지 거울 속의 사내에게 매일 아침 진지하게 문의중이다.
|
명 오늘 
명
PRINT Text
PRINT 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