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염소 광장 옆에 있는 성 마태 교회의 시계가 8시를 쳤기 때문입니다. 여느 때 는 7시에 잠이 깨어 침대에서 뛰어 나가는데, 그 때는 먼저 오른발을 내디디도록 조심합니다. 왼발부터 먼저 내디디면 나쁜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만 왼발부터 먼저 내디디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불쾌한 일을 당했던 것입니다.
서두르고 있었으므로 나는 내가 만들어 둔 철도 레일을 밟고 말았습니다. 마침 2, 3 일 전에 새로운 기찻길을 깔아 침대를 터널로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엄지발가락이 몹시 아팠습니다. 나는 끙끙거리며 한 발로 창가까지 뛰어가 교회 시계탑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경을 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테이블 쪽으로 뛰어 돌아왔으나 바로 그 때 훌륭하게 만들어 둔 역을 걷어차 못 쓰게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몹시 화가 났습니다. 기분 나쁜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안경은 테이블에 없었습니다. 한참 지나서야 침대 밑 구석에 있는 게 보였습니다. 깨지지 않았게 다행이었습니다.
나는 더욱 당황했습니다. 틀림없이 30분은 지각하고 말 것입니다. 나는 문을 쾅 열고 층계 밑을 향해 소리 질렀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왜 깨우지 않았어요. 빨리 밥 줘요!”
서둘러 잠옷을 벗기 시작했으나 머리에 끼어 벗겨지지 않았습니다. 단추를 풀지 않았던 겁니다. 나는 함부로 잡아당겼습니다. 단추가 모두 떨어져 나간 다음에야 겨우 벗을 수 있었습니다. 얼른 바지를 입고 양말과 구두를 신은 다음 층계를 뛰어 내려 부엌으로 달려갔습니다. 머리를 수도꼭지 밑에 들이밀고 꼭지를 틀었습니다.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 여름에 수도가 얼어 버리는 일도 있나?’
그제야 나는 비로소 생각났습니다. 어머니 모습이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침실 문을 두드려 보았습니다. 대답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래 가게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며 침실 문을 열었으나 어머니는 없었습니다. 나는 거실로 뛰어갔습니다. 거기에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다시 뛰어올라가 옷을 단정하게 입었습니다. 교과서를 가방에 집어넣고 서둘러 역을 고쳐 놓은 다음 층계를 뛰어 내려갔습니다. 세 단씩 한꺼번에 건너뛰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우리집 가게 문은 아직 잠겨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모든 가게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고요에 싸인 광장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서너 아이만이 학교로 가는 교회 거리 쪽으로 서둘러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앞에 걸어가는 파울 블랜트슈테터를 불렀습니다. 파울은 뛰어가면서 웃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머리칼은 빗지 않아서 헝클어져 있었으며 도무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표정 같았습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파울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어져 버렸어!”
나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고 파울의 팔을 꽉 잡으며 소리쳤습니다.
“너희 집도 그러니?”
파울은 고개를 끄덕이며 굵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침 식사도 하지 못했어.”
나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앞에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교문은 잠겨 있었습니다. 남자 아이들이 걸어오며 소리쳤습니다.
“만프레드 미하엘! 우리 아버지들이 없어졌어. 학교도 문을 열지 않았어! 모두 어디로 갔을까?”
아이들이 나를 둘러쌌습니다. 카를 벤츠가 외쳤습니다.
“전혀 짐작할 수도 없어!”
아주 먼 곳에 살고 있는 프리츠 슈리트가 말했습니다.
“여기로 오는 동안 나는 어른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어!”
그 때 여자 아이 하나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틀림없이 모두...... 모두 달아나 버린 거야?!”
나는 그 여자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바보같이. 울어선 안 돼! 아마 아무 일도 아닐 거야. 어른들은 결코 달아나지 않아. 그러 일은 있을 수 없어.”
우체국장 아들 홀스트 위트너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아무도 깨워 주지 않았어! 우리집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어.”
위트너 집안은 굉장한 부자여서 가정부와 요리하는 여자까지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면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어떤 아이가 물었습니다.
“지하실도 찾아보았니?”
홀스트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지하실에 들어가는 게 무서워.”
나는 어이가 없어 소리쳤습니다.
“바보 같은 소리 마! 우체국장님이 지하실에 숨을 리 있니?”
그 동안 아이들은 더욱 늘어났습니다. 누구의 이야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도 깨워 주지 않았고 아침 식사를 한 아이도 없었습니다.
어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모든 아저씨나 아주머니, 가정부, 심부름꾼, 직공,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조리 없어져 버린 겁니다.
나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정말 어떻게 된 일일까. 빨리 찾아내야 할 텐데!”
아이들이 입을 모아 외쳤습니다.
“어디서?”
“나도 모르겠어.”
나는 토마스가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토마스는 틀림없이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여기에 모인거니?”
카를ㄹ 벤츠가 외쳤습니다.
“아니야, 윌리 하크가 없어. 오스칼과 한네스도 없고!”
뚱보 파울이 말했습니다.
“그 밖에도 없는 아이가 있어.”
푸시 투하가 말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깨워 주지 않아서 아직 자고 있을 거야.”
아이들은 모두 지껄여 대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까 수돗물이 나오지 않았던 일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나는 학교를 둘러싼 낮은 담으로 뛰어올라가 외쳤습니다.
“잠깐 조용히 해!”
곧 조용해졌습니다. 작은 광장에는 참으로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외쳤습니다.
“오늘 아침에 세수한 사람 있니?”
푸시 투하가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잊어버리고 있었는걸....”
프리츠 브루너가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아, 아, 아무도 도, 도, 도와주지 않았어.”
“무슨 소리야?”
나는 외치자마자 담에서 뛰어내려 곧 큰길을 가로질러 맞은편에 있는 가장 가까운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로 왼편 거실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나는 아무도 없는 방을 몇 개나 지나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카를 벤츠와 뚱보 파울이 뒤쫓아 왔습니다. 수도꼭지를 틀어 보았습니다. 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뒤에 있는 두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큰일 났어! 수도를 끊어 버렸어.”
카를 벤츠가 외쳤습니다.
“야단났구나!”
뚱보 파울이 말했습니다.
“나는 말라 죽고 말거야!”
나는 둘에게 타일렀습니다.
“흥분하면 안 돼, 너희들! 이건 잠시 동안 비밀로 해 두자. 다른 아이들에게는 결코 말하면 안돼! 알았지?”
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밖으로 나왔습니다. 집 앞에서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외쳤습니다.
“안에서 무엇을 했니?”
나는 대답했습니다.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았어.”
여럿이 입을 모아 물었습니다.
“누가 있니?”
“아무도 없어.”
레스펜 트롭이 울면서 말했습니다.
“어머니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하지?”
레스펜은 6살 난 조그만 여자 아이입니다. ‘영웅의 숲 거리’에 집이 있으며, 동생이 셋입니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해, 레스펜!”
나는 레스펜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습니다. 레스펜은 울음을 그치고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틀림없이 내가 도와주리라고 믿는 눈빛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도 만일 부모들이 정말 우리를 내팽개쳐 버렸다면ㅇ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어찌할 바를 몰라 고개를 수그리고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정말 모두 소리 내어 울고 싶었지만, 서로 부끄러워 울지 못했던 것입니다.
몇몇 아이들이 가방을 땅바닥에 집어 던지고 그 위에 주저앉아 걱정스러운 눈으로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교회 거리 집들은 마치 죽은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우리들에게 섞여 있는 해적들도 기분 좋은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다고 뉘우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부모님들이 까닭 모르게 사라진 것은 그들의 나쁜 장난과 관계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가만히 앉아 부모님들이 숨어 있는 곳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는 어른들이 우리들을 겁주기 위해 일부러 숨어 버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때 토마스와 하인츠 힘멜이 층계 거리 모퉁이를 돌아 뛰어왔습니다. 나는 너무나 반가워 달려가 소리쳤습니다.
“토마스!”
토마스가 내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시간 전부터 뛰어다녔어. 구석구석까지 찾아보았지.”
나는 마음 죄이며 물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아이들은 토마스를 둘러쌌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입만 쳐다보았습니다. 토마스는 머리를 흔들어 이마에 내려온 머리칼을 쓸어 올린 다음 밝은ㅁ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거리에 어른은 한 사람도 없어!”
학교 앞 작은 광장은 교회처럼 조용해졌습니다. 나는 문득 생각난 일을 말했습니다.
“읍사무소에 있을지도 몰라.”
그러자 아이들이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읍사무소에 있을지 몰라! 염소 광장으로 가자!”
아이들은 저마다 외치며 곧 염소 광장으로 달려갔습니다. 토마스가 맨 먼저 읍사무소 앞 층계로 달려가 성큼성큼 뛰어올라갔습니다. 문 앙ㅍ까지 그는 가더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우뚝 멈춰 섰습니다. 무거운 현관문에 인쇄한 큰 포스터가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토마스는 포스터를 뜯어 몸을 홱 돌리더니 포스터를 든 오른손을 흔들었습니다. 바로 뒤의 아이들이 모두 걸음을 멈추자 그 뒤에 밀려오던 아이들도 이내 조용히 멈춰 섰습니다.
나는 토마스와 함께 층계 꼭대기에 서 있었으므로 염소 광장을 한 눈에 둘러 볼 수 있었습니다. 광장은 틴페틸의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5살에서 13살까지의 아이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읍사무소 앞에 늘어서서 조용히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아이들은 없었습니다. 그 아이들은 아직 침대 위에 누워 이처럼 커다란 일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있을 겁니다.
그 때 나는 무척 마음에 걸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염소 광장 끄트머리 쪽에 오스칼과 윌리와 한네스가 갑자기 모습을 나타냈던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아주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었는데, 멀리서는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셋은 ‘큰거리’ 모퉁이에 서서 자기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많은 아이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어슬렁어슬렁 성 마태 샘으로 다가왔습니다. 오스칼은 등에 자루까지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샘으로 오더니 무슨 일인가 살펴보려는 듯 샘가에 걸터앉았습니다. 그때 토마스가 포스터를 펴 들었습니다. 부모님들이 밤사이에 카워 인쇄소에서 인쇄한 게 틀림없습니다. 토마스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편지를 남겨 두고 갔어!”
아이들이 외쳤습니다.
“읽어 줘! 읽어 봐!”
토마스는 기침한 다음 읽기 시작했습니다.
“버릇 나쁜 아이들아! 이제 지긋지긋하다! 우리가 참는 데도 정도가 있다! 요즘 너희들 행동은 너무 거칠다! 우리는 너희들을 교육시키는 것을 포기했다! 우리 생각은 이제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영원히 이 거리를 떠난다! 우리가 없어도 잘해 나갈 수 있는지 어떤지 해 봐라! 너희들은 부모를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우리를 찾을 필요 없다! 아무리 애써 봐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안녕! 틴페틸의 부모들로부터!”
토마스는 포스터를 집어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아이들은 놀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계속>
명 오늘 
명
PRINT Text
PRINT 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