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페틸의 아이들은 염소 광장에 늘어서 있었습니다. 토마스는 다시 주머니에서 부모님들의 말이 적힌 포스터를 꺼내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포스터를 내게 건네주며 왼쪽 아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거기에는 붉은 연필로 아무렇게나 글씨가 씌어 있었습니다.
‘지구 끝까지 가 버려라, 오스칼.’
나는 화가 나서 포스터를 조각조각 찢어 날려 버렸습니다. 종이조각은 바람을 타고 잠자코 쳐다보고 있는 많은 아이들 머리 위를 천천히 날아갔습니다.
갑자기 로벨트 풍크트가 이상한 웃음소리를 냈습니다. 그는 뚱뚱한 배심원의 말라깽이 아들입니다.
“이런 것을 믿다니 정말 어리석구나! 우리 아버지는 내일 재판에 나가야 한단 말이야.”
그러자 광장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모두 왁자지껄 떠들어 대며 저마다 자기 의견을 말했습니다. 식료품 가게 아들 푸시 투하가 소리쳤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내일 대청소를 해야 해!”
토마스가 팔을 마구 흔들어 아이들을 가라앉힌 다음 말했습니다.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야! 하지만 우리는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생각해야 해.”
카를 벤츠가 소리쳤습니다.
“모두 공원에 가서 숨바꼭질이나 하자!”
토마스가 호통 쳤습니다.
“바보 같으니!”
카를이 기분나빠하며 대꾸했습니다.
“너야말로 바보다!”
토마스는 업신여기는 눈길로 카를을 쳐다본 후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몇몇 아이가 물었습니다.
“무엇을?”
토마스는 이마를 찌푸리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는 듯했습니다.
나는 토마스의 옷소매를 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쪽에서 무엇인가 시작되었어!”
그제야 토마스는 오스칼과 그의 부하들을 보았습니다. 오스칼은 그 때 막 샘 가장자리에 올라가 두 발을 벌리는 참이었습니다. 토마스의 눈이 번쩍 빛나며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소동이 시작되었군!”
윌리는 작은 나팔을 불어 대고 한네스가 장난감권총을 탕탕 쏘았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습니다. 오스칼이 소리쳤습니다.
“해적과 여해적들! 모여!”
해적 무리들은 곧 광장을 가로질러 오스칼 쪽으로 달려가며 외쳤습니다.
“좋아, 오스칼!”
그 숫자는 아이들의 절반쯤 되었습니다. 오스칼은 팔을 마구 휘두르며 외쳤습니다.
“어른들은 달아나 버렸다! 만세! 이제 우리는 자유다! 어른들은 우리가 겁이 나서 벌벌 떨고 있다고 생각할 테지. 그 바보 같은 글 읽어보았니? 정말 우습더란 말이지?
우리는 어른들 말을 믿어야 해! 어른들은 거짓말하지 않아! 거짓말 할 리 없지. 스스로들 거짓말은 나쁘다고 하지 않았나! 하하하!”
오스칼은 크게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아이들도 배를 잡고 웃으며 박수를 쳤습니다.
“어른들은 거짓말하지 않아! 어른들은 거짓말하지 않아!”
여러 아이들이 소리 질렀고 너덧 남자 아이가 공중에 모자를 집어 던졌습니다.
오스칼의 연설은 굉장했습니다. 물론 맞는 말도 있었지만 오스칼은 무척 나쁜 아이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인가 나쁜 일을 꾸미고 있는 게 틀림없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또 오스칼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해적 우두머리 오스칼이 소리쳤습니다.
“됐어, 좋았어! 읍 전체가 이제 우리들 것이다! 누가 달아나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어른들은 달아나 버렸어! 이제 우리는 어른들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 자, 지금부터 우리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다!”
토마스가 갑자기 소리쳤습니다.
“입 다물지 못해!”
아이들은 깜짝 놀라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오스칼은 비웃으며 줄곧 외쳐 댔습니다.
“가난한 구둣방 아들과 공부벌레 녀석의 말을 들어선 안돼! 녀석들은 너희들을 얌전하게 만들어 놓고 무엇이든지 자기들이 차지해 버릴 작정이란 말이야!”
나는 생각했습니다.
‘가난한 구둣방 아들과 공부벌레라, 그 말 참 잘했다. 두고 봐. 이제 앙갚음해 줄 테니.’
그 때 또 몇 아이가 오스칼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것을 보고 오스칼이 굵은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오스칼은 쩨쩨하지 않다! 그 자루를 이리 보내, 윌리!”
윌리는 펄쩍 뛰어 큰 자루를 오스칼이 서 있는 샘 가장자리에 올려 주었습니다. 오스칼은 두 손을 자루에 집어넣어 초콜릿이며 과자 상자를 잔뜩 꺼내 아래에 있는 아이들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커다란 환성이 터졌습니다. 아이들은 참새 떼처럼 과자를 서로 받으려고 아우성쳤습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우리를 따르던 아이들마저 우리 곁을 떠나 달려가 버렸습니다. 남은 아이는 토마스와 하인츠와 나뿐이었습니다. 오스칼은 줄곧 초콜릿과 과자를 던져 주며 으스대듯 소리쳤습니다.
“거저 주는 거다! 모두 너희들 것이다!”
“도둑놈 같으니!”
토마스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는 힘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 쪽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모두 과자를 입과 주머니에 집어넣기 바빴습니다. 그리고 소리 지르며 샘 둘레를 뛰어다녔습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오스칼은 다시 소리쳤습니다.
“이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인형과 납으로 만든 군인, 공과 고사포!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있어!”
아이들이 외쳤습니다.
“만세!”
오스칼은 샘에서 뛰어내려 명령했습니다.
“자, 나를 따라와!”
토마스가 소리 질렀습니다.
“잠깐! 모두 미쳤니?”
오스칼 쪽으로 가려 했으므로 하인츠와 내가 토마스를 꽉 붙잡았습니다. 토마스는 몹시 분해하며 소리쳤습니다.
“모두 정신 차리도록 해야 하잖아.”
그는 몸을 빼내려 했으나 우리는 잡은 손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오스칼은 되돌아와 우리 쪽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저 나쁜 녀석을 해치워!”
아이들은 위협하는 듯한 태도로 바뀌었습니다.
“비겁자! 겁쟁이!”
큰 소리가 울려 퍼지고 돌이 날아와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하인츠는 얼굴이 핼쑥해졌으나 눈은 용감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토마스는 성이 나서 얼굴이 뻘게지며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았습니다. 읍사무소 층계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아이들이 한꺼번에 우리 쪽으로 몰려왔습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후퇴하는 게 좋겠어!”
우리는 궁지에 몰렸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층계를 뛰어올라 눈앞까지 다가왔습니다. 토마스는 맨 앞에 선 녀석의 가슴을 힘껏 쥐어박고 홱 돌아서서 읍사무소 문을 잡아 흔들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문이 확 열려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기분 나쁘게도 나는 엉덩이를 한 대 주먹으로 얻어맞았지만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문을 닫고 등으로 힘껏 버티었습니다. 토마스가 재빨리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우리는 크게 숨을 내쉬며 어둡고 추운 넓은 방에 서 있었습니다.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밖에서는 오스칼이 문을 쾅쾅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나는 좁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큰 렌즈 같은 가운데 둥근 유리를 통해 염소 광장은 샛노란 색으로 괴상하게 일그러져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만세!”하고 외치며 오스칼의 뒤를 쫓았습니다. 오스칼은 빈 자루를 깃발처럼 머리 위로 흔들며 가게들이 늘어선 큰길로 이어지는 모퉁이를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아이들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하인츠가 말했습니다.
“잘 됐어! 모두 우리를 잊어버렸나 봐!”
하인츠는 입술이 좀 떨리기는 했지만 침착해 보였습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나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토마스는 억지로 꾸민 듯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 문이 열려 있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호되게 당했을 거야.”
내가 물었습니다.
“지금부터 어떻게 하지?”
토마스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저 바보 같은 녀석들이 무엇을 하려 하는지 알고 싶어.”
하인츠가 깜짝 놀라며 외쳤습니다.
“저 녀석들을 쫓아갈 생각은 아니겠지!”
그 때 멀리서 아이들의 함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아니, 저 녀석들 집을 통해 가게 안으로 들어갔나 봐!”
꼬마 하인츠는 또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쳤습니다.
“무서운 일이야!”
“피에 물든 오스칼이 아이들의 정신을 이상하게 만든 거야.”
토마스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나는 걱정스러워 물었습니다.
“만일 부모님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토마스는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그런 말 하지 마, 교수! 나는 어른들이 기차로 콜레루스 하임에 갔거나 그렇지 않으면 영웅의 숲에 갔다가 저녁때는 돌아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들이 돌아오면 우리가 모두 잘못을 빌 거라고 여기고 있을 거야. 다만 우리를 겁먹게 하기 위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글을 남겨 두고 간 거지.
그 글이 문제야. 아이들은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고 나중에는 그 글을 핑계 대겠지. 부모님들은 어리석은 작전을 세워 오히려 아이들에게 당하고 말 거야.”
하인츠가 멈칫거리며 물었습니다.
“어른들이 거짓말하는 건 아니겠지?”
토마스는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꼬마, 잘 생각해 봐. 어른들은 모든 것을 고스란히 놔두고 갔어!”
나는 느릿느릿 물었습니다.
“그런다면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니?”
토마스는 깜짝 놀라며 외쳤습니다.
“물이 안 나오니?”
나는 조금 웃어 보이며 대답했습니다.
“그래, 한 방울도 안 나와!”
토마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그는 전등 스위치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스위치를 올렸으나 둘레는 밝아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놀라서 얼굴을 마주 보았습니다. 하인츠가 소리 질렀습니다.
“전기도 안 켜지는구나!”
내가 말했습니다.
“설마...... 읍사무소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거겠지!”
토마스가 명령했습니다.
“조사해 봐, 교수. 너는 이름 있는 기계 기술자가 될 거잖니!”
우리는 지하실로 내려가 본디 스위치를 찾았습니다. 지하실은 무척 캄캄했습니다. 문에 손을 갖다 대도 그 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늘 가지고 다니는 손전등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는 손전등으로 벽을 비춰 나가다가 마침내 모든 스위치가 들어 있는 상자를 찾아냈습니다. 많은 스위치 위에 저마다 작은 종이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나는 ‘지하실’이라고 씌어진 스위치를 넣고 하인츠에게 전등 스위치를 켜 보라고 했습니다. 불은 켜지지 않았습니다. 퓨즈를 떼어내 살펴보았습니다. 퓨즈는 아무 이상 없었습니다. 내가 소리 질렀습니다.
“발전소가 멈춘 거야!”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그런 것 같아. 오늘 밤은 캄캄한 속에서 지내야겠는걸.”
하인츠가 말했습니다.
“해적 녀석들, 참 고소하다!”
토마스가 다시 목소리를 높여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리석었어. 어른들이 모두 없어지면 전기도 물도 있을 수 없는 거야. 하지만 내일이면 모든 것이 전처럼 될 테지.”
내가 투덜거렸습니다.
“이게 무슨 꼴이람!”
토마스는 나를 타이르듯 말했습니다.
“괜찮아. 이 기회에 우리도 약하지 않다는 것을 어른들에게 보여줘야 해. 부모님이 없어지자마자 ‘엄마!’하고 외칠 만큼 갓난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
하인츠가 맞장구 쳤습니다.
“그래!”
토마스는 계속 자기 생각을 말했습니다.
“먼저 우리는 바보 같은 아이들이 무얼 하나 살펴보고 나서 모든 것이 엉망ㅇ진창 되지 않도록 해야 돼.”
우리는 읍사무소의 넓은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인츠가 그 방의 문을 열려고 하자 토마스가 말렸습니다.
“잠깐! 혹시 감시하는 녀석이 서 있을지도 몰라. 뒷문으로 나가자!”
우리는 넓은 방을 가로질러 안쪽으로 달려가 이리저리 좁은 길을 지난 끝에 문을 하나 찾아냈습니다. 토마스가 빗장을 벗긴 다음 조심스럽게 목을 내밀었습니다.
토마스가 속삭였습니다.
“됐어.”
우리는 거리로 나갔습니다. 햇볕이 뜨거워 잠시 그늘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은 교회 거리였습니다. 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큰 길 쪽에서는 아이들의 외침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저 녀석들, 아직 큰길에 있구나!”
하인츠가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몰래 탑으로 올라가자. 거기서 라면 볼 수 있어!”
탑이란 것은 교회 거리 끝에 있는 오래 된 읍의 문입니다. 거기서 다시 작은 층계로 올라가면 지붕 밑에 있는 감시소로 갈 수 있습니다. 그 감시소에서는 염소 광장과 거기에 이어지는 거리며 골목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토마스가 말했습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잠깐만 기다려 줘! 망원경을 가져올게.”
나는 우리 집 뒷문으로 들어가 얼른 망원경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탑으로 가려고 교회 거리로 달려갔습니다. 가던 길에 우리는 마리안느를 만났습니다.
<계속>
명 오늘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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