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추워.”
레스펜 트롭이 울먹였습니다. 우리는 황금 피리관으로 들어가 우울한 기분으로 테이블 위에 쭈그려 앉았습니다. 옷이 흠뻑 젖고 구두와 양말도 엉망이었습니다. 창문에 부딪치는 빗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아직도 이따금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울렸습니다. 그러나 비는 아까보다 적게 내렸습니다. 나는 허리띠로 불을 켠 손전등 두 개를 천장에 매달았습니다. 조금 환해졌습니다.
마리안느가 젖은 머리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모두들 감기 들겠어.”
뚱보 파울이 대답했습니다.
“따뜻한 난로가 있으면 멋질 텐데.”
“미안하지만 여기는 중앙난방이야.”
내가 말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오래 된 난로가 내 눈에 띄었습니다. 그것은 긴 벽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내가 흥분해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저것 봐. 난로가 있어!”
아이들이 입을 모아 외쳤습니다.
“불을 피워 옷을 말리자.”
“그래! 그러자! 그러자!”
아이들은 난로 옆으로 달려갔습니다. 나는 손전등으로 난로 안을 비춰 보았습니다. 나는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괜찮을 것 같은데.”
키가 크고 말라깽이인 로벨트 풍크트가 굴뚝을 살피기 위해서 난로에 기어들어 위로 올라갔습니다. 잠시 뒤 굴뚝 안에서 로벨트 풍크트가 기어 나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로벨트의 얼굴이 그을음으로 시커매졌기 때문입니다. 로벨트도 싱긋 웃었습니다.
“깜둥이! 깜둥이!”
여자 아이들은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로벨트는 손거울을 꺼내 자기 얼굴을 비춰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우리에게 난로가 생겼어. 하지만 땔감이 있어야 해.”
토마스가 떠들썩함을 가라앉혔습니다. 우리는 헛간으로 가기 위해 손전등을 들고 긴 복도를 거쳐 부엌을 지나 뒤뜰로 갔습니다. 우리가 물이 괸 곳을 뛰어 건너고 있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습니다. 보니 빗물 통에서 얼굴을 씻고 있던 로벨트 풍크트였습니다. 그는 너무도 놀라서 하마터면 빗물 통에 빠져 버릴 뻔했습니다.
헛간에는 땔감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져갈 수 있을 만큼 땔감을 한 아름씩 안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헌 신문을 너덧 장 찾았습니다. 그 신문지를 밑에 넣고 그 위에 땔감을 쌓아 올렸습니다. 그런데 불을 붙이려고 하자 성냥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손전등을 비추며 샅샅이 찾았으나 성냥은 한 개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토마스는 나를 보고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교수! 불을 피울 수 있을 만한 것을 발명해 줘!”
다른 아이들도 모두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안경을 벗어 안경알에 묻은 물방울을 닦으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알았다!”
나는 갑자기 소리치고 번개처럼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하제 자전거 가게에 라이터가 있으리라고 여겨졌던 것입니다. 비를 맞으며 자전거 가게로 달려가 라이터 하나를 들고 재빨리 황금 피리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뛰어갔습니다. 거기에 벤젠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나는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만세!”
어떤 상자 속에서 벤젠이 반쯤 들어 있는 병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부엌으로 달려왔습니다. 내가 벤젠을 라이터에 넣고 있는 것을 보고 몹시 기뻐하며 춤추며 내 둘레를 돌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저마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멋지다! 라이터야!”
나는 우쭐해졌습니다. 마치 내가 라이터를 발명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난로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난로 앞에 무릎을 꿇고 찰칵 라이터를 켰습니다. 불이 붙었습니다. 나는 그 불을 종이에 옮겼습니다. 종이는 밝고 힘차게 타올랐습니다.
이윽고 땔감에 불이 붙었습니다. 모두 탄성을 질렀습니다. 우리는 구두와 양말을 벗어 난로 앞에 늘어놓았습니다. 의자와 테이블을 난로가로 밀고 가 거기에 앉아 옷을 말렸습니다.
마침내 옷에서 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들의 빨래터 같은 광경이었습니다. 이따금 우리는 굵은 땔감을 난로에 집어넣었습니다. 차츰 몸이 말라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기분이 좋아져 편한 자세로 불꽃을 바라보았습니다. 갑자기 뚱보 파울이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배가 굉장히 고파!”
다른 아이들도 저마다 배가 고프다고 떠들어 댔습니다. 로벨트 풍크트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어른들은 우리를 굶겨 죽일 생각인가 봐!”
그러자 하인츠 힘멜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어쩌면 여기에 먹을 것이 있을지도 몰라!”
모두들 펄쩍펄쩍 뛰며 소리 질러댔습니다.
“그렇고 말고! 틀림없이 먹을 것이 있을 거야. 여기는 음식점이니까!”
토마스는 이마에 내려온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습니다.
“자, 조용히 해! 나도 먹는 것은 찬성이야.”
아이들은 좋아서 소리쳤습니다.
“만세!”
토마스는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우리는 꼭 먹고 싶은 것만 먹어야 해. 그리고 먹은 것과 우리 이름을 모두 적어 두자. 내일 부모님들에게 그 값을 치러 달라고 하면 될 거야. 아무튼 우리는 구둣바닥을 갉아 먹을 수는 없으니까.”
우리는 그 말에 찬성하고 맨발로 부엌으로 달려갔습니다. 마침내 손전등을 비춰 식료품 창고 문을 찾아냈습니다. 창고 안에는 큰 소시지와 햄, 그리고 선반에는 통조림, 달걀, 버터, 치즈, 기름, 잼과 벌꿀, 갖가지 빵과 소금을 친 팔뚝만큼 긴 빵, 그 밖에도 먹을 것이 잔뜩 있었습니다.
뚱보 파울은 얼른 모든 것을 먹고 싶어 했습니다. 토마스는 빵과 기름만 들고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그것은 너무 적다고 말했습니다.
마리안느가 말했습니다.
“따끈한 수프를 끓이자. 감기에도 좋을 테니까.”
모두들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수프를 만드는가에 대해 서로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레스펜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누들 수프가 좋겠어!”
베르너가 말했습니다.
“밀크 수프가 좋아.”
뚱보 파울이 흥분해서 말했습니다.
“나는 베이컨과 소시지를 넣은 감자 수프가 좋아. 거기다 달걀을 넣어도 좋지. 그리고 마카로니나 햄도. 연기에 그을린 고기도 좋아. 그리고 생크림을 바른 푸딩을 먹어도 좋지. 그리고 또........”
토마스가 화내며 가로막았습니다.
“그만 둬! 그런 건 안 돼. 우리는 감자와 양파로 수프를 만들어 마가린을 조금 넣기로 하자. 그리고 빵도 한 조각씩 주겠어. 이것으로 충분해!”
우리는 감자와 양파와 덩어리 수프, 마가린, 빵 한 덩어리를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담을 때 숫자가 틀리지 않게 자세히 세어 보았습니다. 로벨트 풍크트가 자기 노트를 한 장 찢었고 나는 내 만년필을 꺼냈습니다.
나는 아주 좋은 만년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틀리플랙스’라는 미국제인데 최신 특허품으로 크리스마스 때 아버지가 내게 선물한 것입니다. 우리 문방구에는 만년필이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내 것이 가장 비쌉니다.
우리는 황금 피리관의 식료품 창고에서 꺼낸 물건을 모두 적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자기 이름을 써서 침을 발라 식료품 창고 문에 붙여 놓았습니다.
여자 아이들에게 감자와 양파 껍질을 벗기게 하고 그 동안 우리는 아궁이에 불을 지폈습니다. 우리는 곧 실망했습니다. 아궁이는 모두 전기 렌지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도저히 어떻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카를이 약이 올라 한 마디 했습니다.
“따끈한 수프여 안녕이구나.”
그러자 뚱보 파울이 소리쳤습니다.
“통조림을 먹지, 뭐! 정어리도, 연어도, 소시지도, 게도 있어. 그리고 식초에 절인 청어도 있잖아! .....”
로벨트 풍크트가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너야말로 식초에 절인 정어리다!”
뚱보 파울도 지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소금에 절인 대구포다.”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말라깽이 로벨트는 정말 대구 같았습니다.
우리는 닭싸움을 하듯 서로 노려보고 있는 둘을 갈라놓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의논했습니다. 나는 갑자기 소리 질렀습니다.
“이런 바보같이! 구리냄비가 걸려 있잖아!”
우리는 모두 난로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정말 난롯불 위에 구리냄비가 사슬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냄비 속은 깨끗했습니다.
우리는 냄비를 내려 물을 넣으려고 부엌으로 달려갔습니다. 우리는 또 실망했습니다.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던 겁니다. 프리츠 슈리터는 흥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습니다.
“어른들이 우리를 이렇듯 골탕 먹이다니.”
토마스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습니다.
“비가 오고 있잖아, 멍청이들 같으니!”
우리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토마스의 머리가 이상해진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여느 때는 그리 말하지 않는 루트피 켈러가 말했습니다.
“비가 온다는 것쯤은 장님이라도 알 수 있어.”
토마스가 우리를 놀려 댔습니다.
“너희들 정말 멍청이로구나. 냄비에 빗물을 받아 넣으면 되잖아.”
“옳아!”
그제야 우리는 토마스의 말을 알아들었습니다.
오토가 외쳤습니다.
“빗물 통에 물이 있어.”
우리는 모두 복도로 뛰어나가 뒤뜰로 달려갔습니다. 갑자기 로벨트 풍크트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잠깐!”
우리는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습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왜 그러니?”
로벨트 풍크트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빗물 통에서 내가 얼굴을 씻었단 말이야.”
아까 ‘깜둥이’라고 놀린 것에 대한 앙갚음이었습니다. 토마스는 맨발로 뜰 한가운데로 달려가 땅바닥에 냄비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때까지 비는 내리고 있었으나 그리 많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냄비에 반쯤 물이 차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이따금 한 사람씩 뛰어가 냄비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마침내 냄비에 물이 찼습니다.
우리는 냄비를 들고 부엌으로 갔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벌써 감자와 양파 껍질을 다 벗기고 초조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들어가자 여자 아이들은 부지런히 냄비를 난롯불 위에 매달았습니다.
마리안느와 레스펜이 감자와 양파와 덩어리 수프를 냄비에 집어넣었습니다. 이어서 트루디가 마가린을 넣고 베르너가 소금을 한 움큼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큰 나무 주걱을 들고 수프를 휘저었습니다.
뚱보 파울이 중얼거렸습니다.
“요리사가 많으면 요리가 잘 되지 않는 법이야.”
마리안느가 맛을 보더니 코에 주름을 잡고 눈을 굴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빗물 냄새가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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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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