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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은 리디의 교회친구입니다.

 목사가 별건가  
 리디  posted at 2003-04-08 11:05:31
3705 hits  5 comments
 http://www.reedyfox.com NeWin reedyfox is level 39  llllllllll 
 퍼머링크 : http://reedyfox.com/island.php/column_etc/8  [복사]

조약돌의 글을 리디가 올립니다.




** 거의 한달 만에...
    이번 업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다. inny도 교회 일로 바쁘고, 나는 게으름으로 딴 곳에 더 신경이 씌어 있었으니.. 종종은 아니더라도 가끔 찾았다가 실망하고 돌아갔을 독자들에게 죄송한 말씀을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이곳을 들르는 한 친구가 너무 딱딱한 얘기만 쓰지 말고 일상 생활에서 오는 생각들을 적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너무 무거운 주제들 말고... 그건 바로 내가 원하는 바이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주제를 잡는 것도 일상 생활에서 오는 것들이긴 한데, 이상하게 글을 쓰다 보면 자꾸 무거운 방향으로 끌고 가는 내 자신을 본다. 그것이 나에게는 계속적인 숙제였다.

    설 연휴에 폴 투르니에의 '여성, 그대의 사명은'을 완독하면서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여성은 인격적인 것에 익숙하지만, 남성은 물질적인 것에 더 익숙해 있다는 내용이 하나의 답이 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나도 노력하여 3인칭의 시점으로 써 나가는 것에서 탈피하여 1인칭의 시점, 다시 말해 개인적인 얘기를 꺼내 보겠다. 이번은 이미 늦었고, 언젠가...


** 성경 공부를 하다가...
    청년부 예배 후 2부 순서인 조모임을 하다가 사도행전 23장을 보게 되었다. 바울이 공회에서 지금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하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고 명하고 바울은 이에 열받아서 하나님이 너를 치시겠다. 넌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면서 자신은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는 모욕적인 말로 대꾸한다. 이에 곁에 선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라고 묻자 바울은 그가 대제사장인 줄 몰랐다고, 기록에 의하면 관원을 비방하지 말라고 했다며 그 순간을 모면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제 상황 이해가 됐을 테니 교재에 있던 문제로 들어가 보겠다. '만일 아나니아가 대제사장임을 알았다면 그의 거룩한 직분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를 욕하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오늘의 교역자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성직에 임명받은 자들이라 할 수 있다....사람의 잘못을 가지고 성직까지 비방하거나 모욕하기가 매우 쉽다. 바울의 논리대로 한다면 성직과 사람은 구별해야 한다....' 내가 성격이 못돼서 그런지 몰라도 누가 확실하다, 틀림없다 하면 꼭 되짚어 보는 사람이라 '틀림없다'라는 말에 의구심이 먼저 일었다. 과연 바울은 그가 대제사장인줄 몰랐을까? 아니면 성경 주석에 나와 있는 대로 '여러 해석이 있으나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대제사장이 아닌 줄 알았다는 조소적인 표현으로 보는 것이 무방하다.'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까? 그리고 성직이라는 것이 목회자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대학에 들어온 이후로 삐뚤게 보는 관점이 생긴 것인지 내 관점은 후자였다. 고로 아나니아가 성직자였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그는 같을 말을 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의 것이다. 이 결론은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가정이다.

    교재에는 위에 언급한 문제 후에 이와 같은 문제가 있었다. '만일 교역자가 크게 실수를 한다면 당신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 같은가?' 기가 막힌 단어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며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바꾸어 보았다. '만일 교역자가 크게 잘못을 한다면 당신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 같은가?' 실수라는 말은 자신의 의도와 달리 순간적으로 일으킨 것이지만 잘못이라는 것은 의도성이 짙은 행동이 아닐까 한다. 사람이야 누구든 실수를 하기 마련이니 물론 전자에 대한 답은 긍정적일 것이다. 하지만 후자는?? 전자에 쓰인 실수라는 말은 그 자신이 그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듯 하다. 대부분 자신이 실수를 범하면 후에는 그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인지할 테니.. 하지만 내가 제시한 후자는 자신이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그리고 꼭 '크게'라는 단어를 썼어야 했을까? 솔직히 이 문제를 대하고 내 머리 속엔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이 성경 공부 교재의 저자가 바로 유명한 목사님이시니까..


** 판사, 변호사, 의사, 목사???
    엄청난 상상일지 모르지만 약간의 과장을 더해서 얘기하자면 지금 이대로 교계가 흘러간다면 얼마 안 가 '의사, 판사, 목사'라는 새로운 '사'자 돌림이 나올 듯 하다.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고, 그것으로 교인들을 선동하고(솔직히 이 말은 과장된 말이다. 좋게 말하면, 아니 정상적으로 얘기하면 양육하고) 교회 재정을 잘 굴려 뻥튀기 해서 새 성전 건축하고 하면 이곳 저곳 '그 목사 괜찮다더라'는 소문이 날 것이고 그러다가 보면(어쩌면 이미) 서울 강남에 번듯한 교회 당회장이 될 수 있을 것이며, 한 번 그렇게 자리를 잡으면 아들, 손자 줄줄이 탄탄한 그 교회의 당회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니 어이 다른 '사'만 못하겠는가? 아마 그때면 '이 사람'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버젓이 그의 일대기가 방영될지도 모르겠다.


** 목사님이 틀렸단 말이니?
    약 일년 전에 어머니와 교회 문제로 약간(내가 금방 그만두었기에) 다툰 적이 있었다. 논쟁이라고 할 것도 안되지만 당시의 화두는 '새 성전 건축'이었다. 나도 울 교회에 새 성전이 필요하다는 건 어느 정도 인정한다. 교인에 비해 예배당이 작은(한꺼번에 그 교인을 꾹꾹 눌러 넣으려면) 것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가니까. 그래, 새 성전 짓자. 나도 새 건물에서 예배도 드려 보고 찬양도 하고 기도도 해보자.. 하지만 문제는 왜 세계 제일인가였다. 목사님이 그렇게 침 튀겨 가며 말하는 세계 제일의 큰 교회. 하나님의 기쁨의 정도는 크기에 비례하는 것일까? 하나님도 당신처럼 큰걸 좋아하신다고 생각하고 계시는건가?

    그래서 나는 우직하게 어머니께 내 생각을 그대로 말씀 드렸다. 그렇게까지 크게 예배당을 건축하려는 것은 목사님의 욕심이 아니냐고... 그러자 어머니는 대뜸 '그럼, 넌 목사님이 틀렸단 말이니?' 하셨다. 나는 뜨끔했다. '이크, 어머니도 어쩔 수 없는 평범한 중년의 교인이시구나..' 그래도 끝내 '목사님은 사람 아닌가?'라는 토를 달았지만....


** 오직 기도만이....
    다시 처음에 건드렸던 성경 공부 교재에 있던 문제로 돌아가자. 자꾸 성경 공부 교재를 언급하는 이유는 그 내용이 어느 정도 현 교인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두 개의 문제에서 저자는 바울이 아나니아가 대제사장인줄 알았다면 그 거룩한 직분을 존중했을 것이기에 그를 욕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고, 그 다음 문제에서는 실수를(나는 '잘못을'이라고 문제를 바꾸고 싶다.)해도 비난을 하지는 않는 것이 좋다는 답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면서 성직과 사람은 구별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이 문장을 보고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아, 목회자는 거룩한 직분이구나. 따라서 그가 잘못을 해도 그를 비난해서는 안되는구나. 그는 거룩한 직분에 있는 사람이기에 잠시 실수를 한 것이니까 곧 깨닫겠지. 그가 깨닫는 것을 돕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직 묵묵히 기도만을 하는 것이겠구나. 그 때가 언제가 되었든지....'

    여기까지 내가 이끌어 낸 결론이 특이한 사고 과정을 걸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결론이 저자가 의도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와는 다른 장면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다윗이 밧세바를 간음했을 때 나단 선지자가 와서 다윗의 잘못을 고하자 비로소 다윗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를 시작했던 장면은 어쩌면 위의 결론에 모순되는 것이 아닐까? 위의 결론에 의하면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그렇게 말해서는 안된다. 거룩한 직분에 있는, 그것도 하나님이 친히 선택한 왕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골방에서 하나님께 그가 그의 잘못, 아니 실수를(거룩한 직분에 있는 분들은 잘못이 아니라 실수만을 저지르는 것일 테니까..) 깨닫고 회개하도록 기도만을 했어야 옳지 않았을까?


** 직업과 직분
    직업이라는 단어와 직분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정확한 이해를 가능케 할 것 같아 잠시 설명을 덧붙인다. 직업이라는 것은 '생계를 위하여 일상적으로 하는 일'을, 직분은 '직무상의 본분,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을 의미한다고 동아출판사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대단하지 않나? 사전까지 뒤적이는 열심을 보이다니... ^^;) 그러니까 장로, 집사, 권사와 같은 명칭은 직업이 아니라 교회에서 부여하는 직분이고 목사, 전도사와 같은 명칭은 직분과 동시에 직업을 의미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대부분 그들의 생계는 목회니까.. 그런데 여기까지 오다 보니 그간 사용해 왔던 '직분', '직업'이라는 개념이 무척이나 모호하게 쓰였던 것 같다. 고로 이제부터 적어도 이 글에서만큼은 직업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그대로의 의미로 두고, 직분이라는 단어는 '마땅해 해야 할 본분' 보다는 '교회에서 부여하는 목사, 전도사, 집사, 권사와 같은 위치'라는 의미로 고쳐서 내 맘대로 사용하겠다.


** 직분은 직분이고...
    얼마 전에 교회를 옮긴 내 친구로부터 멋진 교회 얘기를 들었다. 그 교회에서는 장로님들이 예배 후에 식당에서 봉사도 하시고 교회 앞을 쓰신 단다. 목사님의 방침이 직분은 계급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당연한 말인데, 나에겐 왜 그리 멋지게 들릴까? 그렇다. 직분은 어디까지나 직분이다. 울 아빠가 국회의원 되는 것보다 힘들다는 서울에 있는 유명한 교회의 장로라며 뻐길 수준의 것이 아닌 마땅한 책임이 따르는 그가 맡은 직분인 것이다.


** 목사는 성직인가?
    과연 목사직은 다른 직업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일까? 그렇게 홀로 거룩하기만 한 것일까? 에베소서 4장 11, 12절을 보면(솔직히 나는 성경 어디에 무슨 말이 나와 있는지 거의 모른다. 하지만 분명 이 글을 읽다가 어는 분은 전혀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개인의 생각을 괴팍한 논리로 풀어가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것 같아서 이렇게 한 번쯤은 성경 한 구절을 붙여 본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라는 내용이 있다. 이 문장에서 굳이 전임 선교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느 직업에 종사하던 크리스찬은 그의 제자요, 복음 전하는 자이니 이 말은 목사도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여러 직업들과 동일한 직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결론을 끌어내면 괴변이라할껀가?

    목사와 같은 전임 사역자만이 성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장담컨데 세상 크리스챤중에 제대로된 신앙을 가진 자라면 모두가 전임 사역자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 나라처럼 교육열이 과잉된 곳에서는 신학대 들어가기가 서울대 들어가기만큼 어려웠을 것이고.. 누가 하나님이 정하신 거룩하고 성스러운 직업, 다시 말해 성직에 몸담는 자가 되려고 하지 않겠는가? 나부터도 목회한다고 난리였을 거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의 시대로 거슬러 가 보아도 12제자와 사도 바울이 계속 자신들의 직업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이 자신의 전도 여행 중에도 직접 생계를 유지했음은 사도행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목사도 똑같다.
    지난번 inny의 글에 잠깐 나왔던 얘기를 다시 써먹을까 한다. 몇 년전 우리 교회에서는 청년부 임원을 제비뽑기로 바꾸자는 청년부 목사님의 발언이 청년부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음을 이곳의 꾸준한 독자분들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목사님의 발언 하나로 인해 청년부 회칙에는 없는 방법으로 그 의견이 관철되었던 당시의 상황 외에도, 한 자매가 제비뽑기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하자 한 독실한(?) 청년부 회원이 목사님의 말씀은 무조건 옳은 것인데 어떻게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느냐는 말을 했다는 얘기가 아직도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도 울 교회에서 순탄한 생활을 하기는 약간 힘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여하튼 이 얘기를 전해 듣고 솔직히 일종의 위기의식을 느꼈다. 의도되었건 그렇지 않았건 일부 청년들에게조차 자칫 목사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이 되어 버리는 요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과장된 걱정.

    얼마전 불거졌던 '목회세습'에 대한 한목협에서 발표한 성명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교회 내에서 성도들이 동의하는 입장을 취한다면 목회세습은 가능한 것이라는... 나는 이 얘기를 듣고 현 대한 민국에 있는 교회는 과연 동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취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 봤다. 먼저 당회장을 비롯한 우파 진영에서는 당회장의 아들이 뒤를 이어야 한다는 지지 성명을 낼 것이다. 그러면 지금처럼 교회 내 투표권을 얻게 될 대부분의 중장년 성도들은 목사님의 말씀이니 거의가 우루루 따를 것이고. 뻔한 얘기 아닌가? 말로만 성도들의 동의를 얻는다는 것이지 지금처럼 '목사의 의견=하나님의 뜻'이라는 이상한 공식이 머리 속에 박혀 있는 보수적인 성도들로부터 나올 결과는 뻔한 것이다. 모두가 목사라는 위치를 너무나 대단하게만 보고 있기에 벌어지는 해프닝이 아닐까 한다.

    목사도 사람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울 엄니도 목사님이 실수하실 수 있다고 말하면 수긍하실 것이다. 하지만 목사님이 잘못하고 계신 거라는 말에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는 미지수다. 죄송하지만 평범한 한 중장년의 교인이기에 자꾸 울 엄니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목사의 말이, 생각이 하나님의 그것과 일치하기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 그리 우매한 성도가 아니라면 이 정도의 사실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열심이 있으되 진리가 없으면 그것은 극단적인 길로 빠지기 쉽다. 열심있던 한 선교 단체의 간사가 지금은 이단에서 열심을 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바른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기에, 아니 그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잘못된 지도자의 생각으로 인해 제대로 분별해내지 못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솔직히 이 땅에 있는 모든 목사들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이 글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교인들은 목사님들이 하자는대로 전적으로 따라가기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데 있다. 목사도 사람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 중에는 인간의 욕심이라는 불순물이 없기가 쉽지 않기에 말이다. 여성 성도와 바람 피는 목사,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재물을 늘리는 데 급급한 목사, 탄탄한 자신의 위치를 아들에게 넘기려는 목사 등등의 경우가 이에 해당하는 좋은 예가 아닐까 한다.


** 어떻게 하자구?
    목사는 생계가 목회인 사람이다.'라고 정의를 내린다면 너무 야박할까? 목사도 하나의 직업 아닌가. 그러면 한발 양보해서 '목사는 교인들을 양육하는, 하나님의 일에만 전력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만족할 텐가? 하지만 어느 직업에 있는 크리스챤이건 하나님에 열심을 갖기는 마찬가지인데 과연 목회자와 비목회자와의 구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생계 수단의 차이?

    이 글의 계기가 된 것은 처음에 나왔던 성경 공부 교재의 질문에 대한 반발감 때문이었다고 봐도 무난하다. 하지만 비단 중장년의 교인 뿐 아니라 많은 젊은 교인들도 목사라는 위치에 너무 큰 의미와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계속 있었기에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목사의 생각=하나님의 뜻'이라는 이상한 공식이 더 이상 번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이렇게 목사도 똑같으니까 언론에서 이상한 비디오를 찍은 연예인을 대하듯 맘대로 까대자고하면 난 교계에서 패륜아가 될 테니, 이제 슬슬 얼버무릴 때가 된 것 같다. 나도 교회는 다녀야 할 것 아닌가?

    과거 직접적인 기름 부음이 있었던 구약 시대에도 바른 말을 사사나 선지자들이 존재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다윗같은 왕들은 곁길로 잠시 갔어도 되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수많은 왕들은 결국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고... 쉽게 생각하면 간단하다. 잘못된 일이 있으면 지적하고, 목회자는 그것을 수용할 수 있으면 된다. 하지만 과연 누가 진리에 더 가까운가가 문제다. 누가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운가? 모두 자기가 옳다고 떠들어대면 얼마나 시끄러울까?


** 목사는 별거다.
    이제 길었던 내 글의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사실 내가 이렇게 긴 글(이 정도면 나에겐 무지무지 긴 거다.)을 쓰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내 결론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었으니까.

    제발 성도들이 언제나 목사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할 것이라는 우매한 생각에서 벗어나 그것의 진리 여부를 철저히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주는대로 받아먹다가는 죽음에 이를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걸까? 목사도 사람이기에 가끔 빗나간 생각과 말을 할 수 있다. 이걸 인식했으면 좋겠다. 게으르게 앉아서 이게 믿음입네 아멘아멘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그것을 해결하고 실천했으면한다.

    바보처럼 '기도만 하고 있으면 되겠지'라든지, '그래도 목사님의 생각이니까 맞겠지'라는 생각에 한없이 침묵하지 말라.(아니면 목사 한 사람뿐 아니라 그가 책임지고 있는 수많은 성도들이 넝쿨째 잘못될 수도 있다.) 기도뿐 아니라 옆에서 그것을 지적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제발 그것들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으면 한다. 제발. 자기 생각만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그런 옹졸한 독단과 독선은 이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하나님이 옆에 있는 성도들을 통해 말씀하실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 아닌가?)

    목사는 타 직업과 같은 동일선 상에 있지만 교인의 양육을 책임지고 있는 구별되는 위치이기에 그것에 대한 인정이 있어야 한다. 동시에 목사 자신도 그러한 사실에 무거운 책임 의식으로 자신의 삶 전체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며 주위에서 하는 말들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도리는 하지 않으면서 인정만을 바란다면 그건 도둑놈 아닌가?

한마디로 목사는 별거다.

마지막으로 본회퍼의 말을 인용하며 끝내려한다.

목회자는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고, 성도는 세상으로 부름받은 자들이다...


(20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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