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시뮬라시옹/대예배실의 대형스크린==
이전에 부평성전 대예배실에서 느끼는 공간감이 의미하는 것을 나름대로 두리번거리며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냥 크다, 깔끔하다, 쾌적하다, 세련되다 이런 것 말고 교회의 예배당이 품고 있는 그 거대한 공간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를 궁리해 본 것인데…….
그래놓고 끝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일단 정해진 시선으로 다시 예배당 구석구석을 바라보니 제가 엉성히나마 생각한 것과 충돌을 일으키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솔직히 적어보는 게 좋겠군요. 이 글은 이전의 공간해석에 대한 補論이 아니라 제가 개인적으로 애를 먹고 있는 부분에 대한 나름대로의 처방이 될 테니까요.
무엇으로 애를 먹고 있는가. 이것은 일종의 문화지체라고 보아도 좋을지 모를 사소한 일인데, 저는 대예배실에서 드려지는 찬양예배에 적응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이 기묘한 증상은 부평성전이 처음으로 문을 열기 시작한 때부터 있어왔는데요. 최근까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군요.
확 트인 무대(이 말이 벌써 부적절한 어휘사용인지 모르겠습니다)에서 은혜로운 찬양이 좋은 음향환경을 거쳐 귀에 들어온다. 앉아있는 청년들은 기쁜 맘으로 함께 찬양한다, 이런 정상적인 과정을 저는 왜 그런지 거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공연단이나 복음성가가수가 오실 때도, 주일 젊은이예배때도 그런 증상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마음이 하도 불편해서 찬양 때문에 불편해서 못 견딘다니 무슨 귀신이라도 들렸나 하면서 고민한 적도 있었는데, 청년2부예배의 글로리아홀에서의 찬양에서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도 않고, 다른 예배처럼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드릴 수 있으니 그런 가설도 맞는 것 같지가 않아 다른 곳에 원인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찾다가 이런 글로 정리해보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괜히 어려운 말만 주렁주렁 엮어 쓰는데다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 될 수 있으니 혹여 부평성전 대예배실서 찬양예배 드리시는데 아무 문제가 없으신 분들은 무시해주셨음 합니다(다른 충고라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대예배실의 공간, 조명, 공기의 흐름, 시선이 일정하게 모더니즘적으로 형성되어있다면 제가 지금 겪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답부터 말씀드리면, 제가 찾은 원인은 그 틈새를 왜곡시키는 이질적 요소, 즉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존재들로 인한 충돌과 그로인한 혼란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공간 속에서 어떻게 자리잡을 수 있을까요. 우선 시간 속에서 그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보았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자리하는 포스트모던 사회(Postmodern Society)는 기술의 형이상학에 대한 우위에 의해서 도래한 사회를 말합니다. ‘기술’이 ‘형이상학’보다 우위에 있다 - 생각해보면 이 말은 정말 굉장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데 저는 이 말에서 문제해결의 힌트를 다 얻었습니다(어찌나 기쁘던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존재하는 시간의 개념은 과거, 현재, 미래로 정연하게 절대적으로 분류되던 모더니즘 사회에서와는 달리 ‘오직’ 현재. 즉 지금 여기만이 남겨지는 즉자적인 시대를 의미합니다. 절대적 의미의 지표나 이상이 부재하며, 따라서 전통이 있을 수 없고, 미래를 향한 이상도 없습니다. 상징적으로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배하는 시간을 희망이 사라진 시대, 神이 죽어버린 시대라고 합니다.
기술의 우위로 인한 형이상학의 쇠퇴는 연쇄적으로 철학적 이원론의 붕괴를 가져옵니다. 즉 천상의 것과 지상의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등의 대립개념이 사라져버리는 것이죠. 모든 철학과 과학 예술 종교가 이러한 이원적 (그리고 플라톤적인) 인식론에 기초하고 있었는데, 이를 지탱하는 두개의 대립축 가운데 하나가 사라져버리자 소멸해 버리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거리(distance)'입니다.
양자를 언제나 물리적, 시각적으로 분명히 구분지어주던 거리가 사라져버리면, 그 거리가 품고 있던 긴장과 의미가 사라지게 되고, 결국 의미적 실재를 향해 열려있던 재현의 공간과 그 재현의 공간 속에 담기게 된 의미의 공간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부평성전 대예배실에서 위에서 말한 그런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오는 포스트 모던한 ‘기술’은 대체 무엇일까요. (여기서 벌써 알아버린 분이 있으시다면 당신은 천재!?)
대예배실에서 예배를 드릴 때, 다른 분들은 보통 어디에 시선이 가장 많이 머무시는지요? (제가 생각하는) 정답은 거기에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저는 십자가 양 편에 위치한 거대한 두개의 스크린에 가장 오래 시선이 머뭅니다. 성가대 찬양이나 목사님이 가운데에 서실 때 잠깐 그 쪽으로 돌아갈 때도 있지만, 여전히 압도적으로 제 시선을 붙잡는 것은 다름 아닌 앞면의 대형 스크린 두개 이지요.
당연한 말이겠지만 모더니즘적 공간을 가장 충실히 재현한 건축물인 유럽의 대성당들-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나 프랑스의 노트르담 대성당-에는 예배를 드리는 이들의 편의를 위한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옛날에 그런 영상시설이 있을 리 없으니 그걸 지적하는 건 정말 바보스런 짓이겠지만,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건축된 우리교회 부평성전의 대예배실에 두개의 대형 스크린과 기둥 뒤에 빈틈없이 설치된 모니터들은 의도하건 그렇지 않았건 저 같은 한가한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져올만한 공간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니 이것들은 적어도 이 글에서는 충분히 비교해 생각할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예배를 좀 더 편히 드릴 수 있게 설치한 스크린 가지고 별 생각을 다한다고 웃으실 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눈앞에 바로 말씀 전하시는 목사님이 있으신데 정작 나는 그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본다는 이 사실이 어색하고 불편했습니다. 지금도 매주 주안 성전에서 드려지는 화상예배라는 것에도 정말 이렇게 예배를 드려도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구요. 인터넷 방송국이 문을 열었다고 하는데, 그럼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마우스 클릭으로 컴퓨터 앞에서 예배를 올리는 것도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거겠죠? 이것도 괜찮은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대예배실에서 드리는 찬양예배때 느끼는 당혹감을 똑같이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고민을 좀 더 정밀하게 끌고가려면 미디어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미리 말씀 올리지만 이 말은 교회가 미디어선교나 문화사역을 하는 걸 비난하는 게 절대절대 아닙니다. 그런 매체를 통해 구체적인 신앙 활동이 이루어지는데 제가 현기증을 느끼기 때문에 왜 그런지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다. 우리 청년지체님들 중에도 이 쪽에 비전과 사역하고 계신 분들이 많으실 텐데 행여 오해 없으셨음 합니다.
길게 미디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알지도 못하면서 한도 끝도 없이 갈 수 있으니 대예배실의 스크린과 모니터와 같은 부류인 TV매체에 대한 생각만 정리해보겠습니다.
미디어와 그것이 투사하는 현실과의 관계에 있어서, 텔레비전은 현실을 시뮬라크르(simulacres)로 만드는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시뮬라크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인공물을 가리키는데, 시뮬라크르를 하는 것을 동명사화 한 것이 시뮬라시옹(simulation)입니다.
(시뮬라시옹의 구체적 발현형태에 대한 얘기 역시 그것만으로 하루 종일하고도 모자랄 것이기에 제가 아닌 범위에서 겨우겨우 말씀 올리겠습니다) 위의 문단의 말이 대체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오시는 분들은, 지금도 매주 방영되고 있는 휴먼 다큐멘터리라는 프로그램을 보시면 단번에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와 비슷하거나 좀 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통해서? 카메라를 짊어지고 그들의 삶 속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눈을 통해서입니다. 여기서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시지 않으셨는지요? 다큐멘터리 속에서의 우리의 이웃은 연기자들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들의 일상에서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카메라맨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평상시라면 다른 이들에게는 절대 드러낼 수 없는 가족간의 불화, 개인적이고도 은밀한 고민, 마음속의 고백 등등의 일상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담겨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그곳에 있었으면서도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현실을 시뮬라크르로 만든다는 뜻은 간단히 말해 그것과 같습니다.
텔레비전이 가지고 있는 의미의 전달과정에서 벌어지는 일 가운데 다른 것은 그것이 사건들의 의미와 에너지를 차갑게 하고 중화시킨다는 것입니다. 현장을 생생히 전달한다는 텔레비전은 그 말과는 많이 다른 미디어로 기능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실시간으로 예배가 투영되는 대예배실 앞의 커다란 스크린도 여기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구체적으로 대예배실의 대형스크린의 무엇이? 라고 질문이 주어진다면, 앞에서 말씀드린 ‘기술’이 의미를 담을 공간을 없애버린다는 말씀을 상기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정밀하게 제어되는 대예배실의 음향과 영상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극대화 되는 찬양예배에서는 모더니즘적인 공간에서 의미를 갖던 대예배실의 모습이 사라져버립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서 계신 목사님 대신 스크린의 영상에 집중하게 되고, 스크린을 통해 제공되는 시각적 정보는 전체를 하나로 만들어버려 모더니즘적 공관에서는 뚜렷이 구분되던 양자의 차이를 제거하고 거리를 제거함으로 하여 역설적으로 의미를 제거합니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찬양예배가 ‘찬양 콘서트’로서 여겨지는 것입니다. 갈수록 전문화되고 많은 인력이 원활한 찬양예배가 ‘무대’에서 진행되도록 움직여야 하며 이것은 첨단 기술을 거쳐 우리의 눈과 귀로 들어옵니다. 무대에서 찬양이 이전 주안성전예배실과는 비할 바 없이 생생하고 자세해졌지만, 이러한 정보가 제공되면 될 수록 그 속에 원래 담겨진 의미는 한없이 미분화된 의미덩어리 속에 함몰되어 사라져버립니다. 이 길고 긴 추론과정을 거쳐서 느껴지는 것이 찬양‘예배’가 마치 대중가수의 ‘콘서트’처럼 여겨지는 현상에 대한 설명입니다.(시뮬라시옹에 관한 경우는 화상예배나 인터넷방송을 통한 예배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을 설명할 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연히도 저는 지난주일에 서울 종암동에 있는 성복중앙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설교는 사랑의 교회에서 오랫동안 청소년사역을 하셨다는 김만형 목사님께서 해 주셨는데요. 설교시간에도 포스트모더니즘 말씀을 하시더군요. 續근대주의 또는 脫근대주의라고 번역하시면서 모더니즘과의 가장 큰 차이점을 상대주의라고 설명을 하셨습니다. 간명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대예배실에서 특히 찬양예배시간에 느끼는 혼란의 원인도 결국 그러한 요소들에서 비롯한 것이겠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정리하려니 결국 또 기나긴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길어질수록 혼잣말이 돼 버릴 경우가 클 텐데... 같은 고민이나 조언 얻을 수 있으면 그게 보람이 아닐까 명분삼아 적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참고서지 : Simulacres et Simulation, Jean Baudrillard(1981)
The Medium is the Massage, Marshall McLuhan(1967)
인터넷 뉴스앤조이 www.newsnjoy.co.kr 신철민님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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