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 파괴주의/합리주의/이원론==
성상 파괴주의(iconoclasm)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성상(icon)을 부서뜨리는(clash) 행위를 일컫는 이념으로 이해되어 무언가 우상타파와 관련한 종교개혁적인 뉘앙스가 담긴 것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물론 성상 파괴주의가 실천적으로는 우상타파라는 신앙고백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개인적으로는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이 신앙고백으로 드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 국한하는 성상 파괴주의는 서유럽의 합리주의를 이끌어내는 데 이념적 토대가 된 인식론적 경향에 국한시켜 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성상 파괴주의와 합리주의가 대체 무슨 상관이람? 하며 또 시작될 지루한 말을 기대(?)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상(聖像)은 우리가 유럽의 예술작품에서 마주치는 하얀 대리석으로 깎아 만든 조각상이나 우리 동네 성당 마당 한 뜰에 자리한 성모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의 관점에 따라 현존하거나 현존하지 않는 물질적 대상과 관념적 대상을 구체적 또는 감각적으로 재현해 낸 것’ 즉 온갖 종류의 이미지를 말하는 것입니다(제가 정의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의 뷔넨뷔르저(Wunenburger)라는 철학자가 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이미지 파괴주의가 더 실감나는 말이 되겠지요.
이 성상파괴주의를 좀 더 구체적인 시공간적 배경아래 놓아서 중세와 근대 서유럽에 국한시켜 넣으면 지금 이야기 하려는 합리주의와 연관이 있는 개념인 ‘이미지와 상상력을 억압하고 경시하는 인식론의 한 경향’이라는 실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성상파괴주의라는 말이 주는 선입견을 버리고 나면 다음으로 합리주의라는 말에 대한 선입견에 도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 합리주의?......좋은 거지! - 이런 식의 생각 말입니다.
무슨무슨 주의나 무슨무슨제도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뿌리내리는 시간이나 공간에 따라 천차만별로 쓰일 수 있으니 이번에도 합리주의를 ‘서구의’ 그것으로 한정하여 말하겠습니다. 합리주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대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따라서 필연적인 것을 중시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합리주의는 이성과 논리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그러한 이성과 논리에 입각해 이 세상과 우주의 존재법칙을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따라서 합리주의는 이러한 목표달성에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하는, 직관 주관적 감정 등을 무가치한 것으로 배격하게 되지요. 여기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게 되는 게 뭘까요? 예, ‘상상력’입니다.
이미지와 상상력을 사실상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 이해함을 허락하신다면, 합리주의적 인식하에서는 이는 배격과 타도의 제1대상이 됩니다. 절대 진리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이미지와 상상력은 이와 비슷한 표현이나 사이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를 방치하는 것은 절대 진리에 대한 훼손으로 간주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서구의 합리주의는 성상 파괴주의라는 서구의 전통적인 인식형태가 변형되어 나타난 한 변주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합리주의는 절대불변의 진리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 기초하기 때문에 세상을 진리/거짓, 선/악, 순수/불순의 이원론적 구조로 바라보는데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여기서부터는 상식적으로 바로바로 이해가 가능하겠죠. 이원론으로 바라보는 세상. 간명합니다. 이러한 이원론이 강화되면 선에 대립하는 악은 그 존재자체가 강하게 부정되고 타기(唾棄)의 대상이 됩니다. 요걸 쪼끔 더 어렵게 이야기를 진전시켜보면, 이원론은 단순히 대립하고 있는 두 요소가 공존하고 있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둘 사이가 분리하여 대립하고 있으며, 그러한 대결구조가 영원할 것’에 이원론의 진짜 속성이 들어있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이번에 드리고 싶은 ‘어려운’ 말은 이게 다입니다. 흔히들 서구의 합리주의가 이원론에 바탕하고 이것이 교회의 권위를 극대화하여 교회를 통해서만 초월자를 만날 수 있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교권주의를 낳았다고 하여 합리주의의 단호한 이원론을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편협한 세계관이라고 비난하는 일이 많습니다. 맞습니다. 물론 교권주의는 성경적으로 보이지도 않으며 수많은 주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 안을 어지럽히는 해악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교권주의가 기독교의 본질을 대변할 수 없듯이 이원론이 무엇인지를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고민해보았다면 성경은 결코 이원론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기독교를, 영혼 구원과 절대 진리를 이원론적인 인식 틀에 묶어서 편리하게 이용하려는 것은 이용할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이 저지르는 잘못일 뿐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편견에 둘러싸여 세상을 바라봅니다. 가끔은 그 편견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기도 하고, 오류를 지적해주는 고마운 이들에게 도리어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한 편견들 - 그리고 상상력과 이미지를 제압하여 절대 진리를 사유화 하고 싶어 하는 이들 - 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자유케 하는 진리를 가질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될 것이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요한복음 8장 31절, 32절 표준 새번역(대한성서공회 1993)-
참고 서지 : 질베르 뒤랑의 신화분석방법에 비추어 본 예술인류학(박 정진, 1989)
성상 파괴주의와 성상 옹호주의(진 형준, 2003)
BYZANTIUM IN THE EIGHTH AND NINTH CENTURIES(Michael Gaddis,
http://faculty.maxwell.syr.edu/gad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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