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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일이 1984년에 쓴 소설 ‘不忘’을 읽다가 ‘외밭’이라는 단어에서 시선이 멈췄다. 외밭이라니. 이것은 참외밭을 줄여 쓴 걸까. 아마 그럴 테지. 그러다 생각이 ‘외씨버선’에 미치고, 이어서 ‘외’는 오이를 줄여 말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시간은 8월 여름인데, 오이는 심은 지 얼마 만에 열매를 맺는 걸까, 1년에 몇 번이나 거둘 수 있는 걸까? 가만, 오이는 씨로 번식하는 식물인가? 그럼 오이 속의 투명하고 말랑한 씨는 언제쯤 딱딱해 지는 거지? 참외와 오이사이를 오가는 이 생각 덕에, 이 두 가지 열매가 결국 같은 종으로 묶일 수 있다는 데 까지 생각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플라스크 속처럼 부글거리며 올라갔다.
언어의 조탁과 이미지의 정밀한 배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즘의 젊은 작가들의 소설과는 달리 김 원일의 소설은 이야기와 일기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막무가내인 과거의 재생을 통해 리얼리티를 획득한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의 소설 가운데 하나가 MBC의 ‘느낌표’라는 방송 선정도서가 되기도 했다는데, 이런 식의 리얼리티가 어떻게 지금의 젊은 독자들에게 반응했을지 모르겠다.
평론의 천박함과 문학의 집요함을 오가며 찬탄과 빈정거림을 반복하기는 소모적이지만, ‘이야기 읽기’라는 애초의 소설의 기능은 물론이고 경상북도 어디쯤을 사는 이들이 쓰는 말 속에 심겨진 언어의 씨앗들을 일일이 들춰보는 즐거움 역시 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소설로서의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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