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가까운 비오는 날 밤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Volkswagen New Beetle 한 대가 미끄러지듯 내 옆을 지나치는 것을 보았다. 동글동글한 뒷 모습이 마치 비행접시같은 인상이다. 리어범퍼 양 끝에 두개의 램프가 뽀얀 빛을 내고 있었는데, 내리는 비에 불빛이 부서지며 번지는 탓에 바퀴가 보이지 않아서인지 정말로 바닥에서 15인치 쯤 떠 있는 것 같았다. 차체가 하늘색일거라 짐작해보지만 어두웠기 때문에 확인할 길은 없다.
"아, 예쁘구나." 저도 모르게 생각이 소리가 되어 나왔다. 소음도 없이 조용히, 그리고 우아하게 멀어져가는 차의 뒷모습을 얼마간이나 바라보고 있으려니 몇년전에 했던 약속이 생각났다. 지금 타고 있는 차를 10년간 알뜰히 타고 다니면 내가 빨간색 뉴 비틀을 선물해 줄께. 학부생 주제에 터무니없이 허무맹랑한 소리였지만 그이는 진심으로 기뻐해주고는 꼭 그래줘요, 하고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가난하고 약속은 지킬 수 없는 거짓말장이이다. "거짓말장이이다." 다시 생각이 소리가 되어 나온다. 그러자 끔찍하게 비참하고 괴로운 마음이 순식간에 나를 에워싸고는 그대로 집어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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