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헤프게 웃어대던 내 웃음이 잦아들고
아이를 제외한 우리들은
모두 다 시름에 겨워
그렇게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었다.
시어머니의 발병 4년차,
아들 녀석 네 살,
그리고 내 나이 서른.
남편의 갑작스런 발병도 그 즈음이었다.
수술을 막 끝낸 남편을 종합병원에 맡기고
어머니는 집에 눕혀둔 채,
아이는 친정에,
나는, 시내버스에 한 시간 반 넘게 흔들려가면서 출근 했다.
두 달 뒤, 뜻하지 않게 다시 재수술에 들어갔을 때,
남편의 병실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고
이튿날 허겁지겁 출근하는 막내 딸을 본 엄마는
아예, 집에서 주무시기를 포기하시고
차가운 교회바닥을 잠자리로 정하셔서
친정식구들의 깊은 근심거리가 되었다.
남편의 재수술이, 갑작스레 높아진 혈압으로
두번씩 연기되었다는 소식에
온 교회는 같이 진심으로 울어주었다.
1년 여에 걸친 투병 끝에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이미 많은 것을 놓쳐버린 상태였다.
그때 나는, 어릴 때 흑백텔레비젼으로 즐겨 보았던 프로레슬링의 한 장면을 종종 떠올렸다. 대머리 김일선수가 이마에 검은 피를 흘리면서 코너로 몰리면, 그리하여 몰리다가 몰리다가 견딜길이 없을때, 어디선가 같은 편 선수가 나타나서 터치를 하고..... 뒤이어 그 선수가 대신 싸워준다. 그러면 김일선수는 화면에서 사라지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기운을 회복한 그가 다시 나타나서 예전의 그 멋진 박치기를 보여주곤했다... 나는 코너에 몰린 김일선수처럼 검은 피를 흘리고 있으나, 아무도 내 손을 터치해주지 않아 뒤로 밀리다가 밀리다가 숨막혀 죽는 꿈을 꾸곤 했다.
나는 남편의 병실에서 잠을 청하면서 김성일님의 장편 소설들을 거의다 읽었다.
'홍수이후', '땅끝으로 가다' 등등. 기도는 잘 되지않았다.
찬송을 부르다가 목이 쉬면 눈을 감고 숨죽여 울었다.
재수술때는 아예 1등실을 잡아서, 주변 눈치보지않고 목놓아 찬송을 했었다.
오늘,
평안한 이 아침에 고요히 욥기서를 묵상하면서
옛날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기도시간에... 깊은 상념에 잠겼다.
그 당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성경이 '욥기'와 '룻기'였다.
그들의 고난과,
고난을 훌륭하게 극복한 이야기와,
그들이 누리는 미래의 엄청난 축복은
그만큼의 무게로
현실의 나를 압박하였다....
욥의 절친한 친구들...
불원천리 달려온 그들은 욥의 처절한 모습에 너무나 망연자실하여
7일간이나 욥의 곁에서 침묵하면서..... 같이 울어준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원론적인 진리의 말씀들이
도대체 욥에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결국, 그들은 욥을 정죄하기에 급급하다.
욥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육신의 질병도,
아내에게 버림받은 것도,
절친한 벗들의 정죄함도,
자식과 재산을 하루아침에 몽땅 잃어버림도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침묵'이었다....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참담한 심경을 의인 욥은 이렇게 피력하고있다.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우시고
나를 주의 대적으로 여기시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래시며
마른 검불을 따르시나이까.......'(욥 13:24~25)
남편의 퇴원 후, 가까운 교회로 새벽기도를 간 나는
아예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목놓아 울다가 지쳐 집에 오곤했다.
그때, 내가 가장 못 견뎌했던 것도 바로
'침묵하시는 하나님'이었던 것 같다.
하나님...왜 하필 접니까??
왜? 이토록 코너로 몰아가십니까?
나는 욥처럼 의롭지도 순전하지도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대답해주시길
강력히 요구했다.
..........
많은 세월이 지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내게 응답하셨고
막막했던 여러개의 터널을 빠져나온 지금,
초여름의 부드럽고 신선한 이 아침에....
조깅을 하면서
담담하게 그때를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남은 삶에서,
또 다른 터널이 나타날지라도
그 때와는 다른 심경인것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실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때문이다.
어리석은 내게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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