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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쌀 뜨물을 먹고 자란 놈들은, 선인장 답지않게 부드럽고 포동포동하며 말랑말랑하기까지하다. 알로에 잎을 뜯어 깨끗하게 씻어 가위로 자르려니 은아가 동동거리며 뛰어와 가위를 뺏는다. 도마와 칼을 가지고 오니 이번엔 장한이가 냉큼 가로챈다. 덕분에.... 옆에서 구경만해도 알로에는 썽둥 썽둥 썰어져 나온다.
썰어진 알로에를 단지에다 담고 차곡차곡 설탕을 잰다. 조금만 지나면 알로에젤성분이 그대로 설탕에 녹아날것이다. 흐읍...쩝.
우리집 뒷베란다에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둔 알로에, 매실, 그리고 지난해 친정아버지 산소앞에서 따온 오디로 담은 핏빛 오디주도 있다. (설탕이 발효하면 어차피 술이되지만 내손으로 알콜을 넣지않기 땜에 난 즙이라고 주장하고싶다.)
이렇게 담근 것들은 시어머니에게 귀중한 약이된다.
몸이 결리고 아플땐 알로에를, 속이 시리고 배가 아플땐 매실을, 입이 텁텁하고 쓸땐 오디를 드신다. 특히 알로에는 꼼짝못하는 어머니에게 변비약으로 특효이다.
우리집엔 알로에가 엄청나게 많다. 화분마다 알로에로 가득하다. 어머니는 키우기 선수다. 휠체어를 타고 베란다에 나오시는 아주 가끔의 외출에도 순식간에 알로에를 번식시키신다. 대충 하나를 뜯어서 꽂아두어도 어머니 손길이 닿은 것들은 용케도 잘 살아난다. 언젠가 어머니 흉내를 내서 나도 슬쩍 꽂아보았는데... 얼마되지않아 죽고 말았다.
난 , 말못하는 알로에를 몹시 미워했던 적이있다. 베란다 가득 삐죽삐죽 가시가 난 알로에가 숨막히도록 들어찬 것을 보면, 그 가시가 마치 날 찌르는 듯이 느껴졌다.... 바라보고 즐길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던 탓이다. 더구나.... 시어머니가 아끼는 놈들이 아닌가....
그래서 드디어, 저 놈들이... 하나씩 죽어가길 바래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날, 방안에 들여놓아야하는 알로에를 그대로 베란다에 내버려둔 것이다. 내 바램에 맞춰 그해 겨울 몇 놈이 얼어죽었다. 난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죽은 놈을 골라 얼른 화분째 내다버렸고, 몇 놈쯤 없어져도 워낙 갯수가 많아서 표시도 나지않았지만... 난 은근히 즐거웠다.
아시는지 모르시는지....내가 죽이고 없애는 만큼이나 시어머니는 부지런히 알로에를 번식시키셨고, 집요하게 가꾸셨다.
내 살기어린 푸대접으로, 베란다에서 더이상 방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알로에는 겨울에는 빨갛게 죽은 듯했으나, 봄이 되면, 내 바램과는 달리 어김없이 연두빛으로 부활하는 기가막힌 적응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빨래 널러 나간 내 다리에 부딪혀 알로에 잎이 잘라지면서...알로에 속살이 드러났다. 아... 그것은 유리처럼 맑고 투명한 젤이었다. 삐죽삐죽한 못생긴 잎속에 숨겨진 부드럽고 투명한 속살을 보면서...... 무턱대고 알로에를 미워한 내모습이, 마치 가시달린 알로에 껍질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혀에 대보니 그 부드러운 것이 지독하게 쓴맛이 난다. 참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 후... 알로에는 조금씩 다른 얼굴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때는, 내가 거실의 장식장을 치운 때와 거의 같은 시기이다. (그때까지 나는, 시어머니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싫어서... 부엌과 거실사이에 큰 장식장으로 막아두었다.)
난, 드디어 아침마다 쌀 씻은 물을 알로에에게 주기시작했다. 놈들은 몰라보게 잘 자라고 부드러워졌다. 선인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고와지고 있었다. 삐죽하던 가시들도 잎이 통통해지면서 점점 부드러운 연두색으로 변했다...그리고 투명한 속은 더욱더 투명해지고 맑아졌다.
내게 사랑받기 시작한 이후부터...
....알로에는 더 이상 나의 적이 아니다.....
이 하잘것 없는 깨달음을 얻기까지 난 귀중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했다.
오늘, 알로에를 설탕에 담으면서, 은아와 한이의 깔깔거림을 들으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볼 수있는 마음의 여유를 되찾음에...
건배를 하고싶다....하나님이랑.
마라나타........
2000년 4월 28일 ------------------------------------------------------------
오늘, 집에서 키운 알로에 몇을 잘라 설탕에 절이면서, 옛날에 써두었던 글을 찾았습니다. 병든 시어머니의 오랜 수발로 몹시 지친 상황에, 시어머니와 관련된 모든 것을 무턱대고 미워했던 제 모습을, 처음으로 바라보면서 쓴 글 같아서 남겨두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알로에를 씻고 닦고 자르면서 감회가 남다르군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담고 싶어서 담그는 알로에 맛.... 감칠 맛입니다. 시어머니만 돌아가시면 저 놈들은 모두다 갖다 버려야지...했었는데.... 지금은 저 알로에가 너무 사랑스럽군요. 알로에가 무슨 죄가 있다고....ㅎ
맛나게 담그어지면 드시러 놀러오세요~~피부미용에 특히 최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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