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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잘 사는 법'에 대해서는 수 많은 논의가 진행되어왔다. 그 과정에서, 사회학, 심리학, 경제학, 정치학, 문화인류학, 사회복지학, 행정학, 의학, 약학 등 수 많은 학문이 파생되어 왔다. 그러나 '잘 죽는 법'에 대한 논의는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죽음에 대한 에세이 풍의 연구서가 약간의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뿐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고백을 위한 101가지 방법', '10분만에 사로 잡는 법', '연애 가이드', '실패하지 않는 사랑' 등 갖다붙이면 글이 되고 책이 되는 연애서적은 어지간한 도서관을 다 채우고도 넘치도록 많지만 이별에 관한 독본은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시작이 있는 곳에 끝이 있다'는 당연한 원리를 잊고 살거나, 잊으려고 애써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네오가 죽잖아..) 인간은 학습성이 뛰어난 동물로 이야기 되지만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지 않고, 배우고 싶지 않은 것은 배우지 않는 '외면의 동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별에 관한 이야기는 이별 후에나 한다고 생각한다. 막상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면 두려워할 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지를 못한다. 그러다가 상처주고 상처받기 일쑤다.
어쩌랴?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야지.
이별의 미학을 이해하기에 적당한 싯귀가 하나 있다. 이해인 수녀의 시 중 한 구절. 이별에 연습이 필요한 이유를 그녀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움도 너무 깊으면 병이 되듯이
너무 많은 눈물은 다른 이에게 방해가 됩니다
차고 맑은 호수처럼 미련 없이
잎을 버린 깨끗한 겨울나무처럼
그렇게 이별하는 연습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이별의 미학을 아포리즘에 담아내고 있다. 도대체 수녀가 어떻게 이런 소녀지향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아니 뭐 수녀라서 그럴지도 모르지.) 천재가 사라진 곳에 스타일이 남듯, 이성이 사라진 곳에는 소녀적 취향이 남는다. 그러나 중장하건데 시를 쓰는 사람에게 소녀적 취향이 없다면, 그것은 시를 써도 시를 쓰지 않는 것과 진배없다.
때문에 나의 지침은 이 시에서 시작한다. 상대방에게 가해지는 부담을 줄여주고, 후일 또 다시 시작하게 될 사랑을 위해서 세 가지의 기본 지침을 국태민안과 경세제민을 목적으로 펼치겠다.
1. 친구로 지내자는 말 절대 불가!
가장 난감한 말이 이거다. "아니 싫은 건 아닌데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자." 뭐하자는 플레이인지 도무지 감이 안잡힌다. 몇번 겪어도 마찬가지다. 특히 남자의 경우 친구로 지내자는 말은 자존심을 쿡쿡 쑤신다. 온갖 욕이 떠오르고, 속은 부글부글 타오른다. 43일에 그녀가 말했다. 친구로 지내자고. 우린 친구로 지내고 있다. 뭐 이 정도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 깊이 사랑한 사이, 혹은 한 쪽에서 깊이 사랑했다면 이것보다 더 잔인한 사형 선고는 없다. 또한 사랑한 후에 친구로 지낸다는 것이 꽤나 이상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이것만큼 인간관계에서 어정쩡한게 없다. 상당수의 곤충들이 교미 후에 상대를 잡아먹는 점을 상기해보라. 연인이었던 남녀는 모 아니면 도다. 잘 되면 평생 한쌍의 환상적인 바퀴벌레들처럼 붙어사는 거고, 못되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다.
게다가 사람은 본디 불확실하고 어정쩡한 생물이다. 때문에 확신이 있는 말을 좋아한다. 간결한 선동구호에 휩쓸리는 것이 그런 이유다. '친구로 지내자'는 말은 언뜻 확실하게 들리지만 사랑에 빠졌던 사람에게는 아주 당황스럽고 모호하고 아리송한 말에 불과하다. 상황이 그렇게 만든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 말을 들으면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한다. 내가 대신 간명하게 대답해주자면 '딴 애 생겼어', '너 지겨워', '그만 따라 붙어라' 정도다. 그런 뜻이 아니라고? 그러면 이런 말하면 안된다. 만약 '친구로 지내자'는 말을 먼저하게 된다면 상대방은 확실한 이별 선고를 선점하기위해 먼저 '헤어지자'라고 선방 놓고 승리(?)할지도 모른다. 이건 최악의 이별 방법이다.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이별 시에는 의사표현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괜히 바람 맞히고, 불친절하게 굴고, 생일 잊어버린 척 하는 등 얄팍한 꼼수 부리는 거 정말 밥맛이다. 메너 없다. 이별이 아름다워 질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애매모호한 관계 정리의 방식에 맛들이게 되면 모든 인간관계에서 '될대로 되라' 식으로 대할 수도 있다. 확실한 의사표현은 멋진 이별을 위한 1갑자도 안되는 기본 초식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말하지도 않고 알아주길 바란다는 거. 과한 욕심 아닐까?
2. msn, 타키, 버디, icq, 문자메세지, 음성사서함을 통한 이별은 No!
군바리가 탈영하는 첫번째 이유가 실연이다. 당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이거 정말 사람 피말리는 것임에 틀림없다. 민간인 여자친구가 군바리 남자친구에게 일방적으로 '넌 아웃이야' 이러고 가면 확 돌아버릴 것이다. 달리 뭐라 할 수 없지 않은가? 전화를 하면 연락이 되나, msn등 인터넷 메신져를 켜두면 다 '차단' 상태고, 이메일은 열어보지도 않고, 문자도 씹는다. 이건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다.
거꾸로 말해서 얼굴보고 헤어지는 것은 메너있는 이별의 기본 사항이며 필수 요소다. 엽기합성 사진에 인가 '락커' 문모군이 빠지면 앙꼬없는 찐빵이듯, 이별에서 직접 대면이 없다면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 셈이 된다. 멋진 이별은 일종의 투자이기도 하다. 언제 어디서 새로운 사랑이 생길지 모른다. 만약 그 사람이 웬수로 헤어진 전 연인의 절친한 친구나 친인척이라면? 이런 가능성 배제할 수 없다. 세상은 의외로 좁기 마련. 특히 그런 일방적인 경우를 당한 사람의 경우 상대방을 직접 만나 그 이유라도 듣기를 원하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는 원거리 연애가 될 경우 주로 발생하는 데, 이때는 정말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나중에 우연히 만날 경우 피차 얼굴 붉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심하자.
3. 어지간하면 '악랄한 핑계'대지 마시라!
꼭 이별할 때 이런 사람들 있다.
"넌 목소리가 너무 얄궂어서 못참겠어"
"왜 이렇게 떼만 쓰냐? 앞으로는 딴 애 만나도 떼 좀 쓰지마!"
"야, 넌 스스로가 되게 잘난 줄 아는데.. 그거 밥맛이야. 앞으로 그러지 마라.."
"왜 자꾸 싸다녀? 이제 뭐하고 다니든 상관없으니 맘대로 해!"
즉, 상대방의 단점을 들추어내면서 이별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꼼수를 부리는 것이다. 이별의 당위성을 강조하게 되면 자신의 이별선고가 좀 더 도덕적으로 옳다는 명분을 가지게 된다. 강조해서 제안한다. 그런 싸구려 명분은 버려라. 왜? 생각해봐라. 위에 열거된 것들은 분명 단점일 수 있지만 '사랑'할 때는 그것들이 단점일 수 없다. 그것이 단점이 된다는 것은 상대방이 정말 단점투성이라서라기보다는 '사랑'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싸구려 공격으로 상대의 기분을 악화시켜 이별에 이른다면, 재수없는 이별일 뿐더러 상대방에게 이성에 대한 편견을 더욱 조장하게 된다. '남자/여자란 다 똑같아 젠장..' 뭐 이런 식으로.
질기게 따라붙기 때문에 이 방식을 써야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대응은 악감정만 부추긴다. 사랑하는 가운데 악감정이 생기면 스토커를 만들기 마련이다. 공격받은 사람은 그 나름대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고, 공격한 사람은 상대방의 복수로 인해 스토킹이나 그에 준하는 피해를 입게 마련이다. 스토킹은 먼 나라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스토킹이라도 당해봤으면 좋겠다는 사람. 한 번 당해봐라. 무간도가 바로 당신이 존재하는 그곳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했을 때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던 부분들을 새삼스럽게 파헤쳐서 상대를 넉다운 시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헤어짐에는 일종의 냉정이 필요하다는 강박관념인데, 여기서 벗어나야 된다. 내 마음 속에서는 잘라 내었으니 상대의 마음 속에서도 나를 잘라내겠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마라. 당신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 이별을 당한 사람에게 이별이란 비보인 동시에 급보다. 예상치 못했던 일일 수도 있고, 예상했더라도 막상 닥치면 '눈 앞이 캄캄해지는 듯'하다. 이별은 오후 9시에 닫히는 구멍가게 셔터처럼 금새 정리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별 후에는 이별의 원인이나, 이별을 행한 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감상성이 최대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별 후에 가장 많은 잔상을 남기는 것은 이별 당시의 분위기와 그때의 감정이다. 상대에게 모질게 굴지 않는 것이 이별 후에 다가올 허탈함과 우수에서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는 혜안이다.
/vanDal.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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