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시간에 집착할 때가 있어요.
괜히
지하철에서도 걸으면서도
자꾸 책을 펴고, 할 일들을 생각하죠.
게으른 주제에.
요즘이 그래요.
마이크로 소프트는
21세기를
"속도가 결정하는 사회"라고 규정했다면서요?
겁없는 사람들 같으니.
모르겠어요.
해야 할 일들과
하고싶은 일들 사이의 간극은
"바쁘다"는 말의 의미와 폭을 만들어요.
# 2.
낮에 보니까 머리가 갈색이 되어가지 뭐에요?
그래서 지금요?
머리에 까만색 염색약을 잔뜩 바르고는
비닐을 뒤집어 쓰고 있답니다.
눈이 따끔거려서
방금 왼쪽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렀어요.
늦은 시각에 염색약을 파는 곳이 어디일까
골목과 골목 사이를 다 뒤졌는데
의외로 동네 자그마한 가게에서 팔더라구요.
지갑을 열면서 헤죽- 웃었더니
가게 주인 아줌마가
아가씨 뭐 좋은 일 있어? 하시네요.
아 표정관리 안돼.
# 2.5
언젠가 그는
유독 색상에 이름붙이는 일
따위에 집착하는 나를
슬쩍 비웃은 적이 있어요.
"**씨. 색상에 대한 명명은
물감 만드는 놈들 장난질이에요.
하늘색이 어딨어요? 인디언 핑크는 어딨죠?
차라리 빨강색 1호, 2호가 더 설득력있네요.
빛의 조합일 뿐인데."
그의 말에
지금도 동의하긴 어렵지만
난 그 이후로
까만색 염색을 할 때마다
그 생각이 나요.
모든 색의 조합일테니까요, 검은색은.
그는 또 그렇게 말할까요?
엷은 턱선에 하얀 웃음을 지으면서.
"**씨. 검은색에도 집착하는거에요?
검은 색은 사실..무채색의.."
# 3.
스크래치 아시죠?
예쁜 색상으로 촘촘하게 그림을 그리고는
검은 색으로 완전히 덮어요.
그리고는 가느다란 것으로
-저는 주로 심을 집어 넣은 샤프를 이용하곤 했어요-
그림을 그려요.
그러면 검은색이 긁혀진 사이로
먼저 그린 색상들이 얼굴을 내밀죠.
검은색 머리 염색을 할 때면
그 생각도 종종 나곤 한답니다.
요즘 제 맘이 그래요.
향후 가야 할 어떤 길들에 대해
하늘 아래
검은 크레파스로 색칠을 해요.
되도록 촘촘하게 칠하려고 애도 써봐요.
근간에 어떤 제안들을 받았거든요.
제가 살면서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 가치이기도
과분한 것들이기도 해요.
그래서 그동안 어떤 것으로 칠했었는지
잠깐 잊어보려구
검은색을 찾았어요.
긁는 재미가 솔솔찮은
그런 나날이 되면 좋겠는데.
어?
30분 넘어가면 모발이 상한댔는데!
아 젠장.
후다다다닥=3=3=3
몸살 걸린 노트북 치료하다보니
염색하다가, 끄적대다가 밤샜네요
악! 4시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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