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내려와 영화 4편보니, 하루가 뚝딱
이 영화는 극장에서 보고 두번 째 관람
게으름 발동으로
일하는 거 잠시 포기하고
뜬금없이 떠오르는 것들 끄적끄적
정확히는,
영화의 text에 충실한 입장에서
오늘 발견한 에리카와 해리의
<사랑 전야에 가슴 먹먹하게 하는 것들>
1. 뜬금없이 울컥하다.
다이안 키튼과 잭 니콜슨의 잊을 수 없는, 생뚱맞게 천진한 눈물.
충분히 매력있지만, 노년의 눈빛들이 만나
살아 온 내력들이 이해받은 것만 같은
익숙치 않은 따뜻함에 대한 고마움.
쎈척하며 사느라 참았거나 미쳐 헤아리지 못한 자신의 내면.
아이처럼 울다니.
2. One night stand style의 만남을 버려야 할까 하는 불안함.
관계에 대한 낮은 commitment와 intimacy로
결코 책임을 지지 않으나 적당히 즐거운,
'그냥 Sex, 이름은 친구'로 점철된
자기편의주의적 만남에 익숙한 해리(잭 니콜슨).
"Sex와 함께 잠을 잔다는 것은 다르다"며
어김없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던 그,
다시 그녀 옆에서 잠들어
평소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던 두 사람, 8시간을 내리 자다니.
절정이 있는 듯한 '열정'이 다하지 못하는 사랑의 완성.
아침에 부시시한 모습의 얼굴을
환한 침실에서 들여다 보는 일.
그러고도 그냥 실망하고 집에 갈 수 없는 일.
그런 일상의 종합선물세트가 결혼일까 싶은.
<Better than sex>를 보고도 느낀 바 있는 얘기.
3. 핑계를 대 보다.
심장 이상일 것이라 생각해 봤지만,
나이 예순 셋에 처음 가져보는 사랑 때문에
숨가쁘고 가슴 답답했던 걸, 해리.
안정을 위해 야자수와 호화 여행에 기대본들, 어찌하리.
4. 상대가 내 무언가를 가져간 기분, 괜한 상실감.
어찌 안경이 뒤바뀌어서 이겠는가.
그냥, 사랑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이
둘의 눈동자가 바뀌어버린 걸.
5. 오바해서 화내기.
자기도 줄리안(키아누 리브스)과 키스하면서.
해리가 젊은 여자들과 다시 만나는 모습에
왜 그리 절망하냐구, 에리카(다이안 키튼).
찾아갔으면 인정을 할 일이지,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고 있음에
그냥 잘 살고 있음에
왜 그리 화를 내냔 말이지, 해리.
상대방에게
태어날 때부터 사랑을,
내 맘에 드는 반응을 맡겨둔 거 아닌데
괜히 화도 나고 서운한.. 사랑의 징조.
6. 어디서나 50점.
옆에 젊고 잘생긴 의사가 꽉채워 사랑해준대도
마음이 허전한 에리카.
잔뜩 신나는 음악에, 자신을 위해 마련된 파티가 이어져도
혼자 문밖에 나와 즐겁지 않은 해리.
100으로 설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도
마음은 50.
단지 그 또는 그녀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7. 밀려오는 두려움, 망설임.
누군가가 일으킨 마음의 파장이 주는 불안감이라니.
이 마음이 얼마나 갈까 하는 내 자신에 대한 확신없음.
다른 사람이 담배를 못 피우게 하고,
약을 챙겨주고
사랑의 순간에도 맥박을 측정하며 염려하고.
얼마나 짠하지만 어색해.
혼자 편하게 침대 하나 다 차지하고
아무렇게나 벗고 잘 수 있는 자유.
언제나 새로운 선택을 해도
거칠 것 없는 홀가분함..
그걸 버려야 할 때.
버린다는 생각이 들면
아직은 제정신.
살아온 날이 많을 수록
제정신이기가 쉬우니.
사랑을 인정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묘하게 또라이같은 심술 얼굴 뚱보 아저씨 잭 니콜슨.
온 얼굴이 주름 투성이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줄리안 키튼.
그대들의 연기 만큼이나,
억지로 교훈 주려 안하는 설정 만큼이나
감동 또한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럽소.
사랑은,
paasion, intimacy, commitment가
조금씩 조금씩 정삼각형을 이루어 갈 때
가장 온전해 가더라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 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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