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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추억은 미래보다 새롭다.
미래는 고정화된 관념이기에.
시인 유 하가 한 말이었던가.
단순히 과거를 파 먹고 사는 일도
참으로 위험하지만
때로는
가치를, 이상을 지향한답시고
미래를 잔뜩 그려놓고
그 그림 하나에 갇혀사는 일도
만만치 않게
혹은 훨씬
위험해 보인다.
하는 생각을
재무관리연구 시간에 했다.
채권(Bond)의 수익율이 높으면
채권값은 오히려 하락한다는
내용으로
계산을 가지고도 마치 유도리가 있는 듯
제법 여유있게 웃어 보이는
흰머리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말이야.
# 2.
보고싶었던 친구와 함께
뜻하지 않았지만 단골 dvd방에서
<Big fish>를 보았는데
생각에 연장선을 긋게 하네.
"운명은 그렇게 곁에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우릴 놀라게 하지" 라는
에드워드 불룸(Edward Bloom)의 대사처럼.
그 영화를 보려고
그런 생각 따윌 했노라
억측.
꽃피는(Bloom) 에드워드의
창창한 입담 만큼이나
귀여운.
음하하.
# 3.
친구와 영화 얘길 하다가,
"천재는 싫어. 팀 버튼은 예측 가능한 상상력이어서 좋아.
그래서 공감이 가잖아."
아마 천재들은
자꾸 미래를 사나보다.
남들보다 빨리 생각해서.
과거를 생각할 수 있어서
남들보다 앞서지 않을 용기를 가져야
따뜻할 수 있나봐.
# 4.
며칠 전에,
내가 써야하는 짤막한 글의 주제로
"브랜드는 환상이다"라는 제목을 정하고
마치 사랑이 그러한 것 처럼
관계에는 반드시 환상이 존재하기 마련이어서
관계에 대한 치밀함(한계가 분명 존재하지만)이 있어야 한다며
고객관계관리(CRM) 어쩌구 했던 기억이 나는데.
환상과 현실의 간극은
그것을 간극이라 부르기도 어려울 만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야 맞지 않나 싶네.
어떤 이가 쓴 픽션에
자기 얘기가 얼만큼이고
허구의 영역이 얼만큼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울 텐데.
하물며 삶이야..
아들은 아버지의 삶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가 허구속에서 살며
자신에게 한 번도 진실을 말한 일이 없다고 믿으니까.
과거를 파먹고 사는 일이
비겁하다고 여겨지곤 하지만
어쩌면 인정받을 용기 대신
일정 수준의 허구라는 이름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배려와 여유를
그렇게나 선물한 아버지.
사실 자신을 배려한 거라고 얘기해도 좋아.
액면 다 거짓말은 아니야.
진심이라는 기반 위에서
그냥 샴 쌍둥이가 아니라 일란성 쌍동이 가수였고
마녀가 아니라 마녀를 닮아가는 여자였을 뿐이라는 정도의
경계선에서 봐줄만한 허구.
거인도, 서커스 단장도 현실일 수 있는 걸..이라고
고전스럽게도 팀 버튼은 말하는 걸까.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그렇게 상상으로 채워준다.
그의 과거를 송두리째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평생 아버지로부터 들었을
무용담의 판타지를
그렇게 그려내며.
과거를 꺼낸다는 것.
그것을 재구성해서
자신을 포함한 세상의 마음에
그림을 그려준다는 것.
(때로 말할 때마다 다른 그림이어서
듣는 사람 중 누구는 진실이 아니라 느끼더라도.)
과거가 열려있는 이유 중 하나야.
미래에 대해서는
그것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허구임을 눈치채거든.
# 5.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누군가를 헤아린다는 것.
아니 그보다는
누군가의 과거를 끌어안는다는 것..이라는 표현이
적절할까.
영화 <메멘토>가 말하듯
기억은 참으로 불완전한 것이기에.
얼마나 많은 재구성이
얼마나 많은 "그랬으면 좋았을 것"을 낳던가.
그 사람의,
"그랬으면 좋았을 것"까지
안아줄 수 있다면 모를까.
다시는 누군가를
헤아린다는 말 따윈 하지 말까봐.
비 내리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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