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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2003 자전거 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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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강릉까지 자전거 여행을 떠난 기록입니다.
6월 27일에 출발해 30일에 도착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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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간 : 서울 -> 춘천 -> 강릉
### 사전준비물
- 자전거 후미등, 건전지, 버너/코펠(덩열군 것 빌림), 돗자리(역시 덩열군), 배낭(덩열군 고마워)
- 얇은 이불, 식수, 수건, 공구셋, 자전거 펌프, 기타 등등
## 6월 27일(금요일)
06:00
안암동 출발.
작년엔 짐에 대한 부담 때문에 파트너를 고집했는데, 한 대에도 이렇게 모든 걸 실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무척 뿌듯하고 근거없는 자신감이 충만하다. 출근길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버스 안에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무척 쪽팔린다. 늘 조깅하던 정릉길을 가로지르고 경희대 옆을 지나 계속해서 동쪽으로 달렸다.
06:50
경기도 구리시 진입하며 자전거 상태를 찍었다. 왼쪽 짐받이의 검은 비닐엔 담요가 들어있고 그옆에 카메라 삼각대가 보인다. 저 상태로 가다가 삼각대 다리가 사이로 쑥 빠지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가 생김. 오른쪽 짐받이에 왼쪽에 보이는 진한 남색 가방이 공구셋이고 오른쪽 검은 비닐에는 버너와 코펠이 들어있다.
소변이 무척 마려워서 길가에 그냥 실례할까 했다가, 아직은 그렇게 망가질 단계는 아니다 싶어 참았다.
짐받이에 식수가 보인다. 프레임에 노란 절연테이프로 묶여있는 건 자전거 펌프. (동네 자전거 포에서 6천원 밖에 안하더라.) 그리고 핸들에는 돗자리를 묶어 놓았다. 보다시피 접는 자전거인데, 백업차량을 가지고 있어서 차에 실어 나르지 않을 바에야 거의 필요가 없는 기능이다. 차라리 저 접는 시스템에 들어간 돈으로 앞뒤 쇽압쇼바 있는 자전거를 샀으면 훨씬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맴돈다.
07:40 금곡 도착.
08:10 호평 도착. 호평에서 아침식사를 하다. 김치찌개를 먹을라다가 아주머니께서 겨우 500원 차인데 더 나은걸 먹는게 낫지 않겠냐고 하셔서 뼈다귀 해장국을 시켜먹음. (4,500원) 아이리버에선 라디오가 짱짱하게 나오고, 날씨는 선선. 기분은 갈수록 좋아진다. 글을 적는 지금, 그때 기분이 다시 되살아나서 무척 행복하다.
08:35 다시 출발. 고기를 먹으니 속이 든든하다.
09:10 마석시내 입구.
휴가 나오면 언제나 이곳을 통해서 1330 버스를 탔었다. 마석초입에 쌍둥이 해장국집이 있는데, 지금 날짜 세고 있는 경섭이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는 곳이다. 이따금 휴가나오는 길에 여기서 공짜로 거하게 대접받기도 했었다. 이근방에서 꽤 유명한 집이다. 한 번씩 들러보시길....
마석시내에서 나와 올라가는 고갯길 왼쪽에 보이는 모란미술관 앞.
언제고 한번 가보고 싶은데..... 언제가 될지.
09:30 부대 도착.
출발한지 3시간 30분만에 예정된 1일차 거리를 모두 완주해 버렸다. -_-;;
이럴 줄 알았으면 청평쪽 '아침고요 수목원'에 들렀다 와도 될뻔했다. 무척 가보고 싶었는데 일정을 짜는 단계에서 타임테이블이 맞지 않아 포기했던 곳이다. 아무튼 예전에 찾아갔을때 마냥, 부대 식구들은 날 성대히(?) 맞아주었다. 마침 중대단결의 날 행사 중이어서 때를 잘 맞춘 셈.
올초 새로이 완공된 신막사. 이거 짓느라고 무척 고생했다 푸념들이다. ^-^;;
중대 앞 정원에 꾸민 인공개울과 연못. 군인은 뭐든지 만들어낸다. -_-)b
어디서 구해왔는지, 정원 옆에 심어놓은 포도넝쿨에 풋포도송이가 열렸다.
군인은 뭐든지 구해온다. -_-)bb
좋아하는 간부님들 중 한 분인 박 준위님.
마침 일직사관이셔서 빨간 줄 두 개짜리 완장을 차고 계시다. 별명이 박가이버라고 불릴 정도로 메커닉과 기계구조학에 해박하셔서, 일단 손대면 고치지 못하는 것이 없고, 모든 필요한 도구들을 자작해서 사용하시는 놀라운 분이다. 이분의 자작능력은 실로 놀라운 정도여서, 용접봉을 깎아 만든 '도장파기 공구셋트'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고 바로 그 공구셋트를 빌려 내 도장을 파기도 했다.
한편, 굉장히 멋진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시는 이유로 '장비게이트'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시기도 한데, 군생활 중 항상 나를 '허 검사'라 호칭하며 친절히 대해 주셨다. (나는 박 준위님을 '부장판사님'이라 불렀다.....)
음.... 믿을란가 모르겠는데,
이분..... 가수 이승환이랑 동갑이시다. -_-;;;
중대 단결의 날, 중대본부 회식.
1년에 두번, '중대 단결의 날'과 '중대 창설 기념일'에는 전역한 선임병들을 불러 함께 자리를 갖는다. 이번 날짜도 그래서 이맘때로 잡은 것. 반수가 모르는 얼굴들이었지만, 그래도 이녀석들 보고 있으면 무척 행복하다.
왼쪽이 일전에 소개한 바 있는 기현. 그리고 오른쪽이 태헌이다.
태헌이는 9월이면 군생활이 끝나는데, 항상 활기가 넘지고 유머가 온몸에 배어있는 아이다. 기현이는 그 차선임병인데 이번에 분대장 견장을 달았다. 언제나 나이답지 않게 차분하고 의젓한 녀석이어서 참 기억에 남는다.
최선임병으로서 8월에 전역을 하는 경섭.
1호차 운전병인데 이 녀석에 얽힌 사연을 책으로 엮자면 상중하 셋트로 꾸밀 수 있을 정도로 유별나면서도 재미있는 녀석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마석에 쌍둥이 해장국집이 이 녀석 부모님 꺼다. 사진을 보면 끼가 철철 넘치지?
밤 10시면 '취침소등 하겠습니다.'라는 불침번의 목소리와 함께 병영은 어둠으로 빠져든다. 전입후 첫날, 이 어색한 어둠이 어찌나 견디기 힘들었던가..... 그 어색함을 2년 2개월여 시간에 함께 흘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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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8일 (토요일)
본부 녀석들과 함께 사병식당에서 식사를 하다. 메뉴는 소불고기..... 군인에게 있어 최고의 메뉴-_-)b라고 하는데 도저히 못먹겠더라.....;;; 식사후 씻고, 행정보급관님과 다른 간부님들께 인사를 드린 후 출발 준비를 함.
08:10
출발. 오늘은 양양이 기다리고 있는 춘천까지만 이동하면 된다.
밤새 비가 내린후 맑게 개었다. 하늘도 나를 돕는군. -_-)b
야미기 고개 바로 앞에 있는 샛터 삼거리 건널목. 경춘선 열차가 지나다니는 곳이다. 날씨는 더없이 푸르고 바람은 선선하며 기분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했다. 아침에 샤워하고 몸을 닦은 덜 마른 수건을 자전거 뒤에 널고 야미기 고새를 신나게 내려갔다. 아차 하는 생각에 돌아봤더니 어디로 날아갔는지 수건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바보같으니라고....
09:10
청평 통과
청평대교 위에서 찍은 청평댐...
왼쪽에 보이는 것이 호명산이다.
청평이교 위에 삼각대 세워두고 잔뜩 폼 잡은 리디;;;
사진은 그럴 듯해도 그걸 찍는 모습은 무척 우스꽝스러웠다.
아이리버 뽀대나지 않는가? 훔핫핫핫;;;
내리막길에서 한 손으론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카메라 들고....-ㅅ-;;;
자전거 여행의 묘미 중 하나가 내리막길에서 느낄 수 있는 속도감의 스릴이 아닐까 싶다. 자동차 안에선 맛볼 수 없는..... 뭐랄까..... "넘어지면 작살이지." 하는.....-_-
바람을 가르며 달리다가 갑자기 우드득~* 하길래 급히 자전거를 세우고 보니 왼쪽 짐받이에서 삐져나온 삼각대 다리가 뒷바퀴에 말려들면서 뭉텅- 잘려나갔다. 이런..... 누나껀데.... -_ㅠ
강원도가 가까워질수록 구배도 많고 다리 힘은 쭉쭉 빠진다. 아침 나절에는 마냥 싱그러웠던 햇살이 뒷덜미에 화살처럼 내리꽂힌다. 잠시 자전거를 세워둔채 국도변에 기어 올라가 물도 마시고 썬크림도 듬뿍 발랐다.
10:30
가평읍내 진입. 시간이 좀 남을 것 같아 남이섬이 어떻게 생겼는가 구경하기로 했다. 주변에서 남이섬 남이섬 하길래 이름은 익숙하다만 한 번도 가본적이 없거든. 그런데 막상 가보니..... -_-;; 그냥 '섬'이더라.... (당연한가?) 이름이 뭐더라.... 강 가운데 있는 섬이라 좀 특이한 것 말고는 별로 눈여겨 볼만한 건 없는듯 했다. (남이섬.... 하면 가수 '이남이'가 생각이 나는..... 나는야 쉰세대~~)
혹여, 대단한 장관이 있나 싶어 계속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 녹초가 됨. 그쪽 도로의 구배는 숫제 빨래판 수준이었다.
11:05
남이섬에서 돌아나오는 길에 동네 슈퍼에 들러 콜라 한 캔.
역시 간만큼 와야할때는 박탈감(상실감)이 막심하다. -_-
이런데는 아무래도 분위기를 위해 와야하는 듯.... 예컨대 애인이랑 같이 온다든가.............( '');;
11:20
남이섬에서 빠져나와 춘성대교를 건너자 강원도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나왔다.
도계 휴게소 앞, 다리를 건너며 찍은 북한강...
하늘이 합성같이 푸르다~~ (적절한 표현인가?)
역시 북한강... 이번 여행중 가장 맘에 드는 풍경이다.
춘천휴게소 근처에서 발견한 멋진 레스토랑~~!!!! 이름하여 '산타 마리아'.
그야말로 레스토랑 통째를 범선으로 꾸며놓았는데, 그걸 떠올린 건축주도 참 대단하고, 쥔장이 누군지도 참 궁금했다. 보통은 범선 안에서 식사와 간단한 주류를 먹고 마실 수 있고, 이렇게 날이 좋은 날에는 갑판에 테이블을 내어 펄럭 거리는 돛 아래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도록 해두었다. 마석에 있는 747 여객기를 개조한 카페는 대단히 어설픈 구석이 있는데, 이건 밧줄 하나 하나에 상당한 손길을 기울인 흔적이 보이는 멋진 건물이었다. 저런 데서 언제 한 번 밥 먹어볼 날이 올란가?
(이륙! 하고 외치면 둥실 떠올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ㅠ-;;)
12:10
강촌 도착.
2000년 5월에 햅번, 덩열군 그리고 춘천아가씨와 왔던 이후로 처음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ㅠ_ㅠ 산천은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누?
구곡폭포로 올라가는 아기자기한 자전거 도로에서.
강촌역. 바라만 봐도 가슴이 미어진다. -_-
12:35
다시 출발
이틀째 무난히 달리다가 요 터널 입구 전봇대에 크게 부딪히고 말았다.(사진에서 오른쪽으로부터 세 번째 전봇대) 짐받이를 양쪽에 매단 자전거 폭을 깜빡하고 무작정 달려가다 왼쪽 짐받이가 정통으로 전봇대에 충돌해 형편없이 찌그러져 버렸다. 덜렁거리는 짐받이를 어떻게 완력으로 펴긴 했는데 짐이 몹시 덜컹거리는 것이 맘에 걸린다.
춘천 초입에 찍은 철로 터널. 전에 갤러리에도 한 번 올렸듯이 난 기찻길을 무척 좋아한다. *-_-* 저거 보고 '살인의 추억' 떠오른 사람, 손~
13:40
춘천 시가지 진입. 날/이/ 무/척/ 덥/다....... -_-;;;
프린트 해둔 춘천 시가지도를 들고 설렁설렁 달리다. 아직 식사를 안했음을 깨닫다. 배낭에서 자유시간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가던길을 달렸다. 양양에게서 얼릉 도착하지 않으면 혼자 밥 먹겠다고 전화가 왔다. -_ㅜ '그래 먹어라 먹어....'
14:30
한림대 병원 앞 도착, 양양과 만났다.(일전에 결혼하기로 했다고 소개한 바 있는 그녀는 한림대 병원에서 간호사 실습 중이다.)
이로서 오늘의 주행은 끝.....
## 양양과의 데이트
"자, 나가 놀자. 놀아 줄거지?"
"으....응......"
그런데 그 땡볕을 자전거 타고 와선 이제 샤워까지 하고 나니 다시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내가 몹시 고단하니 조금 쉬다 나가자고 설득을 시키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5시가 조금 못 된 시간이었다. 그새 양양은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어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결국 소양강댐을 보러가는 걸로 정한 상태였다.
"소양강댐? 댐에 뭐 볼게 있는데?"
"여기 친구들이 그거 밖에 볼게 없대."
"그거..... 꼭 봐야하나?"
"야, 야! 나 한 달 단기로 여기서 실습이야. 나도 외지인이라구. 관광을 해봐야 된단 말야."
".....에휴....."
주말에 놀아달라고 들볶이는 아빠 기분이 아마 이런 거 아닐까 싶었다. -_-;;; 그래, 일단 나왔다. 택시 타자 그랬더니 양양, 고 알뜰한 성격에 결사 반대다. 친구 말로 한림대 넘어서 춘천 명동으로 내려가면 소양강댐 가는 버스가 있단다.
한림대 넘어 내려가는 골목길에서 양양이 '저게 정말 구멍가게네...'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으음.... 정말 구멍가게로군....
아무튼 한림대 언덕을 다 내려왔는데, 그 '소양강댐 간다는 버스'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명동을 이리저리 방황하던 양양과 나, 극장을 하나 발견하고 '주온'을 보기로 의견을 모은다.
일단 주온이 지지리도 재미가 없었던 점은 둘째치고, 이 춘천의 영화 관람 문화란 것은 참 적응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영화가 상영중인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친구를 찾아 담소(?)를 나누는가 하면, 일행끼리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한 평론을 끊임없이 나누는가 하면, 유명 가수 콘서트홀에라도 온 것 마냥 '꺅~ 꺅~' 소리를 지르는 이상한 자들도 몇몇 있었다.(무서운 장면에서 지른 게 아니라 그냥 소리를 질렀단 얘기다.) 정말 적응하기 힘들었다. -_-;;;
영화가 끝나고 명동을 이리저리 쏘다니다, 그래도 춘천이라고 닭갈비집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그다음부턴 쏟아지는 잠에 겨워 어떻게 집까지 돌아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현관을 들어서자 마자 그냥 쓰러져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둘째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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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9일 (일요일) - 춘천에서 예배를 드림
새벽에 눈을 떴다. 내가 이불을 다 가져왔네. -_-;;; 미안해서 얼른 양양을 덮어주고 난 휑스렇게 누웠다. 말똥말똥... 잠자리가 바뀌면 새벽에 곧잘 잠이 깨는 편이다. 빗소리가 들린다. 으....... 날을 맞춰도 늘 이렇게 공교롭기도 힘들텐데 말이다. 새벽 네 시를 넘어서면서 빗줄기가 조금씩 잦아드는 듯 했다. 핸드폰으로 네이트에 접속해서 일기예보를 봐도 딱히 달라지는 건 없다. "곳에 따라 비" <- 뭐 어쩌란 말인지...... 이어폰을 귀에 꽂고 라디오를 듣는데, 전파가 잘 안잡혀서 MP3P를 들고 허공을 허우적댄다. 거의 한 시간동안 이런저런 난리를 피우니 옆에 누운 양양이 드디어 뒤척뒤척거리기 시작했다. 또 한 소심하는 성격이라 바로 라디오 끄고 쥐죽은듯 자는 척을 했다.
새벽에 잠을 설치니 아침에 못 일어나는 건 당연한 법. 내가 잠에서 허우적 대는 동안 양양은 씻고 옷을 다 차려 입은 다음, 예배 드릴 교회를 물색(?)하러 나갔다 돌아왔다. 자기도 춘천에 온지 얼마 안되서 첫 예배라나.... 어제 닭갈비 집에서 먹고 남아 싸온 복음밥으로 대충 아침을 해결하고(우리 둘다 양이 무척 작다.) 교회를 찾아갔다.
무척 작은 교회... 작은 교회 답게 제단 앞에 내걸린 펼침막은 역시나 '부흥!!'이었다. 하지만 대단히 신선하고 흥미로운 점이 있었는데, 헌금시간이 따로 없다는 점이었다. 마치 구약 예루살렘 성전 시대처럼 예배당 앞에 연보함이 있어서 예배 드리는 자들이 제 맘에 합한대로 스스로 연보를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거 정말 멋진걸~
## 다시 출발
예배시간에 누구랄 것도 없이 둘이서 신나게 졸았다. -o-;;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바로 골아떨어졌다.(잠도 많아.) 번쩍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정오가 조금 못된 시간이었다. 양양이랑 나는 편의점엘 들러 점심거리를 간단하게 준비했다. 토욜 오후같은 약간 나른한 몽롱함에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편의점에서 또 티격태격하고선 각자 먹고 싶은 걸로만 따로따로 계산해서 나오고, 내가 닫던 문에 양양에 낑겼던 일도 상당히 유쾌했고.. ^-^;;; 어쨌든 들였던 짐을 다시 다 끄집어 내어 자전거에 질끈질끈 동여매고 나니 1시 반이 넘었다.
"재워줘서 정말 고맙다. 칭구야~"
^-^ 작별인사를 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멋진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멋진 친구.... 여자와 남자 사이의 우정이라면 이정도는 되야 하잖겠어?
13:40 춘천 한림대병원 출발
지금까지는 46번 국도를 달렸는데 이제 56번국도를 달리게 되었다. 출발이 늦었으므로 애매한 지점, 그러니까 강원도 산중에서 밤을 맞이할것 같았다. 춘천 장학저수지 옆을 지나면서부터 비가 오락가락했다. 그덕에 MP3P를 비닐봉지에 담았다 꺼냈다 반복했다. 젖으면 안되니까.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골짜기 아래로 촌락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고 라디오 전파는 거의 안잡힌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춘천을 나서며 줄곧 지그재그 도로인데, 이건 곧 경사로임을 뜻한다. 낑낑거리며 올라가다보면 저 위에 코너가 보인다. 저 코너만 돌면 정상이겠지... 하고 또 낑낑거리며 코너를 돌면 다음 코너가 보이고, 저 코너만 돌면 진짜 정상일거야....하고 또 낑낑거리며 올라가보면 또 다른 코너가 보이고..... 정말 눈물난다.
15:20 5km 줄곧 오르막이었다. -_ㅜ 구봉산 정상에 도착했다. 느랏재 터널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산 중턱에 터널을 내는 경우는 드물므로 터널이 나오면 일단 안심이다. 올라온 높이만큼 이제 내려갈 수 있다는 뜻이다.
비는 이미 부슬부슬 내리는 정도여서 바닥에 빗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가지 좋았던 점은 56번국도가 차가 적은 도로란 점이었다. 올라가는 차로 2개 중에서 가장자리 1개를 넉넉히 차지하고 편안한 맘으로(몸은 죽어났지만...) 산을 올라갈 수 있었다.
15:30 느랏재 터널 통과
춘천까지는 내리막길 다운 내리막길이 없었으나 느랏재 터널을 통과하면서부턴 내리막의 진수를 느낄 수 있었다. 아.... 이맛에 자전거를 탄다 싶었다. 꼬불꼬불 비에 젖은 산악도로를 시속 30~40킬로미터로 달려 내려가자면 초긴장 상태가 되지만, 그만큼의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안개는 이미 자욱해 저 앞에는 도로가 어디로 나있는지도 보이지 않고 사이드 미러로 보는 뒷쪽 모습도 마찬가지다. 모자를 써도 안경알에 쏟아지는 빗방울들은 가릴 수도 없고 귓사이로 스쳐지나가는 바람 소리 때문에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상황....... 그야말로 그 자체를 즐겼다. 정말 행복했다!
절반쯤 내려갔을까..... 젖은 몸으로 바람을 다 받아내자니 너무 추워져 끌러놓은 단추를 모두 여미고 걷어올린 소매를 풀어내렸다. 그리고 후미에 달린 경광등을 켜서 안개등처럼 깜빡거리게 했다. 그나마 조치해둘 수 있는 안전조치는 해야하니까.
이렇게 초당말까지의 내리막길은 눈깜짝할 새에 달려내려갔다.
15:57 초당말 근처의 주유소 앞에서.
약 2시간 걸려 올라간 거리를 단 27분만에 내려온 셈이다.
산악도로는 크게 두가지로 분류된다.
'오르막차로'와 '내리막차로'....-_-;;; 초당말 지나자마자 바로 또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사진은 야생동물 조심하라는 표지인것 같은데...... 정말 노루가 사나?
살인적인 오르막길을 보여주는 사진.... -ㅠ-;; 한적하고 호젓하고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멋진 도로였다. (오르막만 아니었다면!)
16:39 드디어 오르막차로 끝!! 여행중 가장 반가울 때가 '터널 마주칠 때'랑 저 표지판 만날때다.
가락재 터널 직전 골짜기 모습.... 내가 강원도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16:45 가락재 터널 통과
자전거 사이드 미러로 비친 터널 입구를 찍었다. 저거 찍으려고 터널안에 10여분 서있었는데 지나가는 차들이 빵빵 거리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_-^
17:10 저녁식사~
풍천과 신내 사이의 구성포 기와집말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위 지도에서 오른쪽 맨 아래에 나온 곳이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 도로변에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시골의 버스정류장이란 도시처럼 달랑 표지판만 서 있는 게 아니라 작은 움막처럼 사람이 들어가서 비도 피하며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릴 수 있게 되어있다. 안이 좁아 자전거는 빗속에 그냥 세워두고 취사도구만 꺼내서 물을 끓였다.
멀리서 달려오던 트럭이 정류장 맞은 편에 멈춰섰다. 마흔 전후의 아저씨 한 분이랑 꼬마 녀석 둘이 내려 짐칸의 망태기랑 이것저것 들고 도로 옆의 개울로 내려간다. 비 맞으며 물고기라도 잡으러 온 모양이다. (아시는가? 비오는 날 물고기가 잘 잡힌다.) 처음으로 노상에서 내게 먹힐 수 있는 영광은 농심 짜장 큰사발에게 주어졌다. 버너란 걸 첨 사용해봤는데, 생각보다 화력이 정말 좋았다. 밤에 추우면 켜놓고 불을 쬐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오는 날 한데서 짜장면이라...... 썩 근사한 만찬은 아니었지만 낭만적(?)이긴 했다. ^-^
17:50 다시 출발
주석 : 고난의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_-
18:20 느티나무 휴게소 통과
화천면내를 지났다. 땅거미가 완연했다. 막연한 불안감이 업습하는 가운데 1야수교에서 세운 표지판이 하나 눈에 띄어 카메라에 담았다. '아... 1야수교가 이 근처구나....' 야수교 이꼬르 야전수송교육단인데, 3야수교가 가평쪽에 있고 3군병력 가운데 운전병들의 교육을 담당한다. 이러면 뭔소린지 모를 사람들이 있겠지?
으음.... 우리나라 육군은 가장 크게 1군 2군 3군 셋으로 분류한다. 강원도를 중심으로한 보병부대가 1군, 중부이남 후방부대를 2군, 그리고 경기도 일대에 포진한 기갑사단(탱크 위주의....) 중심의 부대를 3군으로 통칭한다. 이중에서 306보충대(의정부)를 통해 입대한 이들은 각 사단에 흩어져 기본 6주 훈련을 받고 3군지역의 부대들에 보내지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운전병 주특기를 받은 사람들은 3야수교로 가서 4주에서 6주의 운전교육을 별도로 받는다.
마찬가지로 1군은 102보충대(춘천;;)를 통해 공급받은 병력으로 충원되는데 그들 역시 운전병이 필요하므로 1야수교란 곳에 운전주특기를 받은 신병을 보내 운전교육을 하는 것. (물론 논산에서 1군, 3군으로 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 이렇다는 거지. 그래서 102보충대를 기피하는 거다. 흔히 1군으로 떨어지니까.) 어쨌든 이렇게 장황하게 쓴 이유는? 1야수교에 배치된걸로 아는 '파워포스'님 생각이 나서리... -.ㅡ;;;
20:00 매봉휴게소 통과
심한 오르막이 아닌, 그렇다고 내리막도 아닌, 과히 나쁘지 않은 산길을 계속 달려 매봉휴게소를 지나쳤다. 그나마 통행하는 차도 얼마 없어 그런지 무척 한산한 휴게소였다. 잠시 멈추어 굽은 허리 한 번 쭈욱 펴고 쉬었다. 그리곤 다시 출발했는데 한 번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금방 어두워졌다. 후미 경광등을 Full로 켜고 여행후 처음으로 헤드라이트를 켰다. AA 건전지 4개 들어가는 요 조그만 라이트의 위력은 꽤 컸다. 사진은 매봉휴게소 지나 윗솔치쯤 이르렀을때 저 앞에 나타난 SK 주유소를 찍은 것이다. 어둠 속을 달리다 발견한 밝은 불빛은 무척 반가웠다. 그냥 주유소였을 뿐인데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았던지!! 그 느낌은 설명이 안되더라.
20:35 솔치재 터널 통과
앞서 말했듯이 솔치재 터널 역시 고개 끄트머리에 있어 거기까지 올라가는 것이 만만치 않았지만, 밤이라는 시간적인 압박 때문에 몸이 긴장되어 그리 힘들게 느껴지진 않았다. 솔치재 터널은 마치 깎아내린 절벽에 뚫어놓은 구멍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널앞에 무척 밝은 가로등이 있어 잠시 쉬며 지도를 확인했다.
터널을 지나 내려가는 길에 자전거에 탄채 찍은 사진.... 그야말로 칠흙같은 어둠속이었다. 왼쪽아래의 하얀 물체는 핸들에 묶어놓은 돗자리다.
21:00 서석면 도착
간만에 사람 사는 곳 같은 마을에 도착했다. 시골 장터같은 서석면 풍경이 보이자 왠지 맘이 놓였다. 그 산골에서도 인라인 타는 꼬맹이 녀석들이 꽤 있어서 차도 거의 없는 56번국도(서석면을 관통하므로) 위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슈퍼에서 빵 하나와 콜라를 샀다. 옆에 있는 약국앞에 긴 나무의자가 있길래 거기 앉아서 빵을 먹었다. 간식인 셈. 셀프로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너무 처량하게 나와서 가슴이 아파 그 자리에서 삭제했다. -_-;; 한 20여분 쉬다가 다시 출발.
22:00 또 한참을 달리다 외진곳의 버스정류장에서 멈춰섰다. 잠을 자야했다. 3면이 투명 플라스틱으로 된 꽤 현대식 정류장이었는데 판넬식으로 바닥에서 10센티 띄워놓은 구조여서 바람을 막아주진 못했다. 아쉬운대로 돗자리를 깔고 담요를 꺼냈다. 잠시 망설이다 담요를 덮고 누웠는데 그 느낌이 굉장히 묘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 혼자 누워있노라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허참.... 이런 곳에서 잘 때도 있구나....... 그리고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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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30일 (월요일)
00:35
덜덜 떨면서 잠이 깼다. 지독하게 추웠다. 담요로 온몸을 둘둘 말아 보았지만, 이미 몸속까지 파고든 한기 때문에 조금도 따뜻하지 않았다.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도로쪽으로 돌아누웠다. 풀벌레 소리가 사방에 가득했다. 10분쯤 꼼짝않고 누워있었을까? 적막한 무거운 공기를 가르며 희미한 엔진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구불구불 거리며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산길을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내가 누운 버스 정류장을 집어삼킬듯한 진동을 일으키며 쌩하니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또 다시 침묵.... 잠시 조용했던 풀벌레들은 다시 울어대기 시작했다. 하늘엔 별도 없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 것도...
정말 외로웠다. 세상에서 나혼자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핸드폰을 집어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명희누나였다. 짤막하게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낸 사실만으로도 누군가 지금 내 기분을 이해해주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는데, 문자를 받은 명희누나는 곧 내게 전화를 걸었다.
"(나직하게).... 어디야?"
"음...... 시골 어딘데, 정확히는 몰라요."
"......... 무섭지는 않고?"
"아무도 없어요. 차도 없고 사람도 없고 인기척이라곤 없어요."
별 대단치도 않은 일상적인 몇 단어의 조합으로 듣는이를 압도하게 하는 사람을 여러분은 알고 있는지? 명희누나가 바로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짧은 통화였지만 잠시나마 외로움에 허우적 거렸던 날 구원해주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출발 준비를 했다.
01:00 라면을 하나 끓여먹고 다시 출발하다. 너무 추워서 이대로는 얼어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자전거를 달리면 온기가 돌테니까 나중에 날이 밝으면 낮잠을 좀 자는게 나을듯 싶었다.
01:20 생곡휴게소 통과. 규모가 그리 작은 건 아닐텐데 폐가처럼 쥐죽은듯 고요하다. 나만 남겨두고 세상 사람들이 전부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생곡휴게소 이후 율전삼거리까지 올라가는 길은 정말 정말 정말 힘들었다. 확연한 오르막도 아닌 길이 끝이 안보이도록 계속되는데, 옆에 있던 개울물을 보면 분명 이쪽으로 흘러오는 것이, 은근한 오르막임에 틀림없었다. 작년에 자전거여행을 떠났을때 3일차 였던가.... 탈진상태가 되자 평지에서도 페달을 미는 것 자체가 심히 고단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이 그랬다. 조금 타고 가다 조금 걷고 조금 타고 가다 조금 걷고........ 시래기 줄기처럼 자전거에 축 늘어져 있었다.
이윽고 '진짜' 오르막이 나왔다. 끝이 어딘지 짐작할 수 조차 없는 지그재그 오르막길............................... -_ㅜ 30분가량 적막만이 나와 함께 했는데, 멀리서 아련하게 자동차 한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포터. 경광등을 켜놓은 내 자전거를 발견하고 멀찍이 떨어져서 지나쳐 갔다. 100여미터 앞의 코너에서 왼쪽으로 꺽어 계속 달렸다. 깜깜한 어둠의 숲 속에서 환한 헤드라이트 빛이 꾸물거리며 그 산길을 올라가는 게 보였다.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가야되나 가늠이나 할 요량으로 자전거를 세우고 포터의 궤적을 좇았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댓번 오락가락 하더니 크게 한 번 꺽었는지 불빛은 보이지 않고 엔진소리만 조그맣게 들렸다. 고개를 넘어갔나 싶어, 가만히 귀기울여 보니, 고개 저쪽으로 넘어가 뚝 끊기는 게 아니라 들릴락 말락 조금씩 멀어지는 소리였다. 아..... 아직 많이 남았구나....
02:10 율전삼거리 도착
31번국도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사진을 찍을 기운도 나지 않았다. 너무 힘들었다. (이후론 사진이 거의 없다...... 몸이 지치니 맘에 여유도 없더라...) 왼쪽으로 가면 인제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평창(진부면)으로 가게 된다. 이 56번 국도와 31번국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무척 묘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 지겨웠던 오르막길과는 너무나 이질적인 구릉지였기 때문이다. 원뿔의 윗쪽 1/3을 잘드는 칼로 싹둑 잘라낸 다음 31번 국도를 깔아놓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거다. 아무튼 나는 오른쪽으로 향했다.
한 10여분 지극히 평탄한 길을 달렸는데 덜컥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고개를 넘으면 내려가야 할텐데 20분 넘게 달려도 계속 평지가 나오는 거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으로 이 이해못할 고산 구릉지를 설렁설렁 달리고 있노라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으므로 조금 몽롱한 기분이랑 겹쳐서 제대로 된 내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따금 인적도 있어서, 집앞을 지나칠 때면 그 시골틱한 '컹컹'하는 개소리도 들리고 그 깊은 산속에 교회 십자가도 몇 개 볼 수 있었다. 도로 옆 개울을 줄곧 눈여겨 보았는데 내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뭔가 불길한 징조가 틀림이 없구나 싶었다.....
가로등이 환하게 켜져 있고 그 아래에 버스정류장이 하나 서 있어 쉬어갈 요량으로 자전거를 세웠다. 긴의자가 있었지만, 맨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골이라 모기와 나방은 왜 그리 많은지..... 뜨거운 가로등에 필사적으로 달려들며 수백마리 날벌레들이 군무를 이루고 있었다. 꽤 큼직한 - 내 손바닥만한 - 나방 하나가 가로등에 스치더니 아스팔트 한 가운데로 툭 떨어져 꿈쩍도 않았다. 이 녀석... 꽤 아팠겠구나 싶었다.
02:30 드디어 눈치를 챘다.
기다리던 내리막길이 나온게 아니라 그...... 공포의 지그재그 오르막이 다시 나타났던 것이다. 나중에 알았던 거지만,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율전삼거리는 계방산의 언저리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절반 올라가고선 힘들어죽겠다고 헥헥 거린 셈이다. 아직 본편은 시작되 안됐는데.....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20~30번도 더 왔다갔다 한 것 같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달도 뜨지 않은 밤, 캄캄한 숲속에 다시 홀로 남겨지자, 귀신이란 녀석의 존재성에 대해서도 이따금 생각하게 되어 덜컥 덜컥 겁이 났다. 평소 늘 귀신과 대면해 보길 소망(?)해 왔었지만, 이 상황에 그 녀석이 나타난다면 무척 낭패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극도의 스트레스가 마음을 짓눌렀다. 답답함을 참을 수 없어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 드라마 같은데서 주인공들이 이렇게 소리지르고 나면 맘이 풀린다던데, 별루 그런거도 없네.... -_-;;; 뭐, 어찌됐든 내가 언제 이렇게 소리를 질러보나 싶어 계속해서 괴성을 질러댔다.
추위 때문에 잠이 깼을 정도로 기온이 낮았음에도 그 오르막을 올라가느라 온몸엔 땀이 비오듯 흘렀다. 입에서 김이 퍽퍽 뿜어져 나와 안경이 뿌옇게 변했다. 희미한 차선을 따라 한참을 기계적으로 걸어올라가는데... 숲속에서 무언가 희번덕거리는 게 보였다. 저게 뭐지?
반딧불!!!!
반딧불이었다. 밤하늘에 빨간 불을 깜빡거리며 유유히 날아가는 여객기처럼, 숲속 나무 사이사이를 그녀석들, 소리도 없이 깜빡깜빡 불을 밝히며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반딧불이를 본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가드레일에 걸터앉아 조용히 둘러보니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검은 빌로도 커튼에 큐빅을 수십개 박아넣은 것처럼 온통 꼬마전구가 켜졌다 꺼졌다 했다. 차가 한대 요란하게 지나가자 겁이 많은 이 녀석들은 5분 넘게 쥐죽은 듯이 있다가 다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귀여워~~~~ 이 장관을 카메라에 담아야 하는데..... 노출을 최대로 해서 열댓장을 찍었지만 나온게 하나도 없다. -_ㅠ
05:00 해뜨기 전 2시간 동안의 기억은 잊어버리고 싶다.
내가 걸어 올라간게 아니라 저혼자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신발위에 내몸이 얹혀 있던듯 싶다. 200여미터 올라가서 왼쪽으로 꺽고, 200여미터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꺽고, 날이 희미하게 밝아오도록 그것만 반복했다. 어느새 반딧불이도 잠자러 다 가버렸다. 언제 정상이 나올지 이젠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으므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조림사업용으로 내놓은 비포장 임시도로로 빠지는 길목에서 돗자리를 깔고 물을 끓였다. 잠을 못자서 그런지 입맛이 없다....
06:00 운두령 정상 도착. 엉엉엉엉엉엉........ㅠ_ㅠ
정상에 올라 가장 먼저 튀어나온 한 마디가 욕이었다. 그만큼 힘들었다. 이건 정말이다. 그마만큼 힘들었다. 휴우....... 안개가 자욱한 운두령 정상에서 또다시 철푸덕 주저앉아 울먹울먹 하고 있었다. 산이 높은게 누구 탓할 건 아니지만 때문에 아무에게도 화풀이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더욱 날 서럽게 만들었다. 잠시후 정신을 수습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화물트럭 한대가 멈춰서있고 기사 양반이 날 불쌍하단 눈으로 쳐다보고 있길래 아무렇지 않은척 바지를 털고 일어났다.
이젠 내리막길이었다. 밤새도록 올라온 만큼 내리막길이 펼쳐질 것이다. 언뜻 봐도 고개 너머가 탁트여 있어 이제 오대산까지는 문제없어 보였다. 더워서 걷어올린 소매를 다시 내리고 단추를 잠궜다. 안개 때문에 시계가 불량했으므로 완연한 아침이었음에도 후미 경광등을 켰다. 그리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었던가? 산을 오르니라 고생에 고생을 거듭하여 소모한 운동에너지는 1089미터, 순도 100%의 위치에너지로 저장이 되었으니 말이다.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는 왕복 3차로 국도를 신나게 내려갔다. 그 기분 이루 말할 수 있으랴....
30분쯤 계속 내려가자, 차가운 아침바람 때문에 온몸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얼어버렸다. 햇살이 눈부시게 비쳤지만, 싸늘한 지면을 데우기엔 아직 부족했다. 내려가는 길 옆으로 꽤 넓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으므로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세수를 했다. 씻는 김에 머리까지 감았는데.... 으..... 해골이 빠개지듯이 아팠다. 차가워서....
6시부터 8시까지의 아침이란게 참 애매한 시간이다. 뭔가 새롭고 활발한 것 같으면서도 실지로는 정말 하루의 시작이라 느끼기엔 지나치게 설익은 듯한 느낌....
06:50 속사삼거리 도착
내가 선 이곳이 해발 700 미터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가파른 길을 바람때문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달려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300미터를 내려왔다는 말이 되네. 가속력이 무섭긴 무섭군.... 그리고 올라가는 것도.
영동고속도로를 만났다. 강릉엘 갈때 타게 되는 고속도로.... 자동차로 저길 달리면 4시간 안에 도착하는 곳이 강릉인데,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나 싶었다. 속사삼거리부턴 6번 국도인데 또 오르막이다. 내리막길을 달리는 동안 힘이 좀 축적되었나 싶었는데, 웬걸, 만만해 보이는 오르막도 50여 미터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지금 내가 지치긴 많이 지쳤나 보다.
07:45 진부면내 도착
Flame 님의 자전거여행기에서 등장했던 그 '진부'다.
::: 참고 : http://www.lemoned.co.kr/vt/22.htm [새창에서 열기]
진부면내로 들어오면서부터 본격적인 수면부족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밤새워 공부한 다음날, 이유없이 나른하고 무기력해지며 만사가 귀찮아졌던 것처럼, 진부면 풍경이 모조리 뿌연 세피아톤으로 보이면서 아련한 꿈 속을 헤매는 듯했다. 한 마디로 딱 누워자고 싶었다. 풀숲이 무성한 강변으로 긴의자가 많이 있었지만, 쓰레기 나부랭이가 너무 많아 지저분해서 도저히 눕고 싶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도 깔끔을 떠는..... -_-;;;) 그때 날 한창 맥 빠지게 했던 건 카메라 때문이었다. 그동안 비가 오거나 우중충 한 날들이어서 카메라를 눈여겨 볼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모처럼 아침햇살을 받아며 카메라를 살펴보니 기절초풍할 만큼 많은 기스가 나있는 것이었다. 전자제품 아끼기를 황금과 같이 하는(?) 나로선 피눈물이 흐를 일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벌어진 일이고 누구 하나 탓할 건덕지도 없는데...... 그저 근거없는 피해의식만 가중되며 수면부족 증상은 그 수위를 더해갔다.
생각에 잠겼다. 인제 오대산을 넘어야 되는구나...... 오대산.....
갑자기 왈칵 짜증이 났다. 계방산을 넘었는데 왜 쓸데없이 여기까지 내려왔다가 또 고개를 넘어야 된단 말인가. 난 내려오고 싶지 않았다구! 어젯밤에 고생을 너무 징하게 한 터라 같은 걸 다시 한 번 해야 한다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한 번 했던걸 도로 물르고 다시 하는 기분...... 쒯이다. (여러분은 안그런가?) 말마따나 내가 자주 쓰는 표현대로, 에이미가 태운 원고를 다시 써야하는 조우의 기분은 그야말로 쒯 오브 쒯 인것이다. 오대산... 오대산........
내가 넘어야할 고개는 오대산의 진부령이었는데, 거기에는 이미 일면식이 있었다. 작년 10월 말 이었던가. 덩열군이 별안간 함께 1박2일 오대산 산행을 제안했다. 내 사랑 덩열군과 함께라면 어딘들 못가리오. 아침일찍 강릉쪽 깃점(소금강)에서 출발해 산꼭대기인 진부령 즈음에서 진부령산장에 들어 하룻밤 자고 다음날은 반대편으로 내려올 계획이었다. 문제는 오대산 노인봉을 지나 우리가 묵을 진부령 산장을 찾아 발걸음을 재촉하던 저녁 무렵에 터졌다. 이정표를 따라 걷다보니 국도가 나온 거였다. 그리고 휴게소가 하나 있었다. 이름하여 '진부령 휴게소'.
산행 중에 별안간 국도가 나오면 정말 어이가 없다. 덩열군과 나는 잠시 혼란스러워 하다가 휴게소에 들어가 직원에게 물었다.
"진부령 산장이 어느쪽이죠?"
"여긴데요.... 몇년전에 없어졌어요."
있지도 않은 산장을 찾아 오대산을 올랐던......추억(?)인데..... 아무튼 그때 보았던 진부령 휴게소가 진부령 정상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맨몸으로 하루 꼬박 걸려 올라갔던 거기를 지금 자전거를 타고 올라야 하다 생각하니 어찌 아니 막막하랴....
08:10
숙제를 다 했든 못했든 학교는 가야하듯이 (적절한 비유인지...-_-;;;) 일단은 오대산을 향해 출발했다. 내 안에는 오직 한 단어만이 메아리 치고 있었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젠장............
도암면에 도착했다. 여기서 왼쪽으로 꺾으면 6번국도의 연장이자 오대산으로 진입하는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착잡한 마음에 거의 울상이 되어가지고 왼쪽을 바라보니 안개인지 구름인지 희뿌연 연막 속에 엄청난 높이의 오대산이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ㅠ_ㅠ 아..... 우째 해야한단 말인가.....
그러던 중에 고개를 들었더니 도로표지판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6번국도 [오대산] ↑445번 지방도 [강릉]
어랏...... 강릉? 이건 또 뭐야, 하고 지도를 보니 변변하게 길도 제대로 그려져 있지 않은 445번 지방도였다. (지도상으론 도로명도 확인이 안됐다.--;;;) 이쪽으로 가도 강릉이란 말인가? 잠시 지도를 들고 고민을 했는데....... 보시는 바와 같이,
느낌상으로 오대산 코스보다 훨씬 강릉에서 가깝고 또 오대산 국립공원 보다야 덜 험할 것 같아 보였다. 그냥 느낌상으로 말이다. -_-
그래. 이걸로 하자.....
그리하여 이 여행 최악의 선택인 445번 지방도로의 진입이 시작된 것이었다.
08:40
사실은 단박에 알아차렸어야 했다. 일단 갓길이 없었다. 국도에는 최소한 1미터 정도의 갓길 여유가 있어서 안전에는 그리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었는데 이건 도대체가 갓길도 없고 심지어 차로 바깥쪽을 표시하는 흰선마저 거의 지워져 있었다. 그뿐인가. 이 일대에 화물운송조합 총연합회 센터라도 있는 모양으로 온갖 종류의 대형트럭들이 질주를 해대는데, 내가 목숨이 한 다스였다 하더라도 그 도로를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게다가 안개는 걷히고 하늘은 구름 한 점없이 맑지.... 태양은 작열하기 시작하고 아스팔트는 후끈 달아오를 기세였다.
09:00
이젠 모르겠다.
나 자신을 어떻게 제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뭐 이젠 어떻게 하겠다도 아니고 그냥 꼼짝도 하기 싫었다. 만약 누군가 한 발짝이라도 날 떼밀었다면 그녀석의 주탱이를 날렸으리라 생각할 정도로 심신이 피폐해져 있었다. 버스정류장이 눈에 띄자 마자 주저없이 그리로 들어가서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11:20
이 넘의 도로가 무슨 산업도로라도 된단 말인가? 트럭들이 하도 시끄럽게 지나다니길래 그만 잠에서 깨고 말았다. 버스정류장이 좁다보니 내 다리는 바깥으로 삐져나가 있어서 뜨거운 태양 아래 사정없이 익고 있었다. 한 20여분간 멍~한 상태로 앉아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정신없는 채로 한 20여분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 길로는 도저히 못가겠다는 판단이 굳어갔다. 그러면 역시 오대산을 넘어야 한단 결론인가. 그건 정말 죽어도 못할 것 같은데...... 계방산의 악몽이 채 가시지 않았으니..... 그냥 트럭 한 대 히치해서 진부령 정상까지만 태워달라고 할까 골백번도 더 생각했다. 하지만, 차를 타고 갈거라면 결국 이 강원도 산골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고생 자체가 무의미 해진다는 게 문제였다. 힘들어서 차를 탄다면 애초에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을 자전거로 온 이유가 뭐란 말이냐.......
다른 길은 없었다. 6번국도로 돌아가는 방법외엔......
12:00
08:40분으로 돌아갔다.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내가 너무 침울해 있었기 때문에 도암면 삼거리에 있는 슈퍼에서 여행 출발이후 처음으로 콜라를 사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거 마시고 힘내...-_-' 그리고 그 맛있는 천하장사도 두 개나 사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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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12:20
둘쨋날 전봇대에 부딪혀 찌그러졌던 왼쪽 짐받이가 거의 떨어져 나갈 지경이었으므로 아예 분리해 버리기로 했다. 나머지 짐은 배낭에 꾸역꾸역 집어넣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오대산 진부령을 향해 출발했다. 콜라를 먹은 덕인지, 원기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까 그 지방도와는 달리 일단 도로폭이 넓어 심리적으로 안정되니 주변을 여유있게 둘러볼 정도로 마음이 안정되었다. 산에서 밤을 하루더 지샐 각오를 하고 너무 느리다 싶을 정도로 설렁설렁 페달을 저었다.
국립공원 관리사무소까지는 여느 평원에 난 길을 달린 것처럼 수월했다. 사무소에 도착하자 오른쪽 산골짜리로 숨어드는 짙은 아스팔트 길이 눈에 들어왔다. 전혀 국도 같지 않은 길이었다. 마치 으리으리한 대저택의 잘 꾸며진 정원에 산책이라도 하라고 만들어 놓은 길 같이 느껴졌다. 어쨌든 올라가긴 마찬가지지만......
지도에 나와있듯이 오대산을 넘어가는 6번국도는 지그재그가 거의 없었다. 높은 산을 충분히 여유를 두고 천천히 올라가는 구배였기에 쉽사리 지치지 않고 올라갈 수 있었다.
중간중간에 계곡물이 흐르던 터라, 힘이 들면 자전거를 멈추고 그 안에 풍덩 뛰어들어 노닥거리기도 여러번. 한 농원 근처를 지나는데 앙칼지게 생긴 뱀 한 마디가 옆 풀숲에서 고개를 내밀어 깜짝놀랐다. 그녀석은 20cm 정도 고개를 들고 날 한참이나 노려보고 있었는데, 저 녀석을 찍어야겠다!! 생각하고 카메라를 집어들자 마자 쏙 사라져 버렸다. -_-;;; 짐승을 찍으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드만.....
14:14
어쨌든 그렇게 2시간여를 토닥토닥 올라가니 어느새 저 아래로 구름이 굽어 보이는 높이가 되었다. 주문진이 35km 남았음을 알리는 이정표..... 이제 정상이 얼마 안남았다 보다. 국도변 텃밭에는 아낙들이 파종에 한창이다. 그리고 고개를 다시 돌리니 저 건너편에..... 난데없이 휴게소가 보였다. 어흑;; 진부령 휴게소....... 믿어지지가 않았다. 벌써 다 올라왔단 말야? 단 2시간여만에?
14:27
전날 운두령을 9시간만에 올랐었는데, 그래서 완전히 가슴졸이며 올라가고 있었는데, 이렇게 진부령 정상에 도착하니 눈물이라도 펑펑 흘릴 지경이었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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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3시간은 이 여행에서 최고의 절정이었다. 그토록 멋진 스릴이란!!!!! 도로는 넓었고 경사는 심했고 굽이는 충분히 위험했다!!! 내려가는 승용차보다 내가 더 빨리 달렸으니 뭐 더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일가족이 탄 승용차 한대를 추월하자 조수석에 탄 아주머니 그리고 뒷좌석의 세 아이들이 차창을 열고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러댔다. -_-)v
내려가는 길은 온통 공사중이었다. 제방 어느 하나 성한 곳이 없었고 중장비들이 즐비했다. 아마 작년 홍수의 흔적이었던 듯..... 강가에서 파낸 집채만한 바위를 나르느라 덤프트럭들도 쉴새없이 오고 갔다. 오후 4시쯤 6번국도가 끝나고 7번국도에 합류했다. 왼쪽으로 가면 주문진/속초 방향이고 오른쪽이 강릉이었다. 그 근방의 7번국도는 고속도로 이상으로 시끄러워서 정신이 지치는 건 금방이었다. 연신 물을 들이키며 속을 진정시켰다. 춘천에서 채워온 물을 이제 거의 다 마셨다.
17:45
강릉에 도착한건 오후 5시가 넘어서였다. 작년 태진이랑 들뜬 마음으로 강릉->부산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이곳에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감회가.......ㅜ_ㅜ
마침내 우리나라의 동쪽에 이어 북쪽을 훑은 셈이었다.
버스 타기 직전 강릉 버스터미널 앞에서 찍은 자전거.
너도 많이 지쳐보이는구나.
수 고 했 어.....
## 무엇을 남겼나?
대합실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흐물거리며 앉아있었다. 새까맣게 그을리고 먼지가 뽀얗게 앉은 나는 대합실 안에서 구경거리였지만, 전혀 신경쓸 기분이 아니었다. 정말 힘들다는 생각밖엔....
낑낑 거리며 산꼭대기를 올라가서 신나게 내려온 것 말고 무얼 남겼었나?
숲과 숲, 계곡과 계곡, 그리고 강과 강..... 눈부신 태양.....
그것들 말고 무얼 남겼었나?
작년엔 그나마 2명이서 함께 했으니 막연한 두려움 같은 건 없었는데, 아, 그래.... 두려움...... 아니 정확하게는 '외로움'을 너무 많이 느꼈던 여행이었다. 홀로 되었다는 생각이 시종 떠나질 않은 것 같다. 운두령을 올라가는 그 밤...... 세상에 정말 아무도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뼈에 사무치고 사무치고 사무쳤었지.
외로움......
홀로됨......
고독......
한밤에 어둠을 향해 소리를 질렀었지. 으아아아아아~~~
아마 그게 내 고독함의 비명소리가 아니었을까?
그러다 언젠가 지하철에서 읽은 이진우 목사님의 글이 떠올랐다.
프랑스의 작가 라브니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의 언어 가운데 최후로 두 가지 단어만 남긴다면 사랑과 여행일 것이다.'
여행에는 고독이 있고, 기쁨이 있으며, 감탄이 있습니다.
그 모든 과정들이 우리를 성숙하게 합니다.
아-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고독.... 그걸 몸부림치며 느껴봤다는 것 말이다.
잘 있었니, 서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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