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사의 내용 중에 예민한 부분이 들어 있어 논란을 촉발시켰다고 치자. 그런데 기자가 뒤늦게 그것이 자신이 잘못 안 내용임을 깨닫고 아무도 모르게 기사를 수정해버린다면, 그것은 떳떳한 행동인가?
위 두 기사는 똑같은 언론사의 똑같은 기자가 작성한 똑같은 제목의 기사다. 그런데 내용은 그렇지가 않다. 첫번째 기사는 어제(9월 8일) 밤에 올라왔는데 지금은 삭제되고 없다. 포털과 언론사 누리집에서 완전히 없어졌기 때문에 어떤 블로거가 불펌 해놓은 것을 링크한 것이다.
두번째 기사는 오늘(9월 9일) 오전 11시에 올라 온 것인데, 첫번째 기사와 거의 똑같고 내용만 일부 수정된 것이다. 두 기사의 성격을 완전히 달라지게 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원래 기사
경찰청은 8일 '치안상황실 영상시스템'을 개선했다며 시연회를 가졌다. NSC와 행정자치부 등 다른 기관의 위기관리시스템에 경찰의 자체 영상 정보를 결합시켜 재해나 재난, 테러 등 위기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시연회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광화문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 등 서울 시내 주요 지점이 위성사진으로 공개된 것이다. 위성 사진이라는 3차원 정보를 이용해 집회나 시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쉽게 말하면 시위대의 이동을 위성으로 포착해 상황에 맞게 경찰 병력을 배치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경찰이 제공 받겠다는 위성사진은 문제가 되고 있는 '구글 어스(google earth)' 프로그램이다.
갱신된 기사
(전략)..... 그런데 시연회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광화문과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 등 서울 시내 주요 지점이 위성사진으로 공개된 것. 위성사진이라는 3차원 정보를 이용해 집회나 시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경찰이 제공받겠다는 위성사진은 문제가 되고 있는 '구글 어스(google earth)' 프로그램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원래 기사는
'구글 어스'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문제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구글 어스'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시위대를 감시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취지로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구글 어스에는 실시간 위성 감시 기능이 없다. 유료 결제를 해도 그 퀄리티가 높아진다는 것만 다를 뿐, 기본적으로 '지형/지도 정보 서비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실시간 위성 감시'라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라니.... 이 기자가 가진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인지 심히 궁금해진다.
(기자의 말대로라면, 미 CIA나 국방부는 당장에라도 군사 첩보 위성을 폐기하고 구글 어스 유료 결제를 하여 예산을 절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 모든 게 어떤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떠도는 풍문이나 화제를 어설프게 주워담아 기사화한 결과다. 기자의 무지로 인해 인권까지도 거론되게 된 것이다. 정말 시위 진압시 지형 정보를 참고하겠다는 게 인권적 시각에서 문제가 된다면, 경찰청은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당장 모든 산하 단체와 시설에 비치된 지도를 모조리 폐기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인권단체들이 정말 비판을 했는지, 인터뷰를 한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
기자는 뒤늦게 오보임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이튿날 기사를 갱신한 것이다. 그러면 갱신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했을까? 이 기자는 자신이 착각한 부분을 쏙 빼버리고 맨 끝에 (기자의 착각 때문에 벌어진 논란에 대한) 경찰측의 해명을 한 줄 더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갱신된 기사로 바꿔치기 한 것이다.
이 얼마나 떳떳치 못한 일인가. 오보 내용에 대해서 사과문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러이러한 내용에 오류가 있어 수정하였습니다'하는 취지는 갱신된 기사 말미에 덧붙여야 하는 게 도리다. 뉴스 댓글에는 논쟁이 오고 가고, 네이버 뉴스에서는 이미 '인권 침해냐 아니냐'를 놓고 설문조사까지 시작했다. 그런 판에 링크는 그대로 해놓고 기사 내용만 몇 줄 바꿔버리는 건 너무 무책임하다.
언론매체의 보도 기사는 별 생각 없이 끄적이다가 맘 내키면 쓱쓱 지울 수 있는 낙서가 아니다. 언론의 공신력에 금가지 않도록 정확한 보도를 해야할 것이며, 또한 보도한 내용에 대해 성실한 자세로 책임을 져야 한다. 누리그물의 기사라고 하여 종이신문의 그것보다 가벼운 것으로 치부될 수 없다. 누리그물 기사가 손쉽게 수정과 편집이 가능한 것은, 보다 정확하고 바른 사실을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순기능을 위한 요소이지, 기자와 언론사의 실수를 감추는 편의를 봐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블로거들 중에는 자신이 잘 못 알고 쓴 글을 지워버리기 보다는 수정 내용과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려 노력하는 이들도 있는 걸로 안다. 어떻게 기자라는 자의 책임의식이 평범한 블로거들만도 못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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