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본 MMORPG 게임을 꼽아 보면 디아블로, 다크에덴, 리니지, 리니지2, 길드워, 아크로드 정도. 이 게임들은 며칠 하다 만 정도지만 정말 재미를 느끼고 애착을 가졌던 게임이 있으니 바로 마비노기다.
마비노기는 절대적으로 재미있는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 성향과 취향에는 꼭 들어맞았다. 아..... 다시금 회상해 보지만, 정말 흠뻑 빠졌던 게임이었다. 대략 두 달 정도 하다가 캐릭터를 삭제하고 그만 두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좋아하던 게임을 그만 둔 이유는,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빠져드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훗날 내 딸아이 이름으로 정해둔 '허하닌'이라는 이름을 붙인 여자아이 캐릭터를 생성했다. 이 꼬마 캐릭터는 어디서 주워입은 보라색 망토를 입고 있었는데, 달리는 모양이 아장아장 귀엽기 그지 없었다. 그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것은 나였지만, 나는 마치 꼬마 허하닌이 이 세상이 아닌 어느 차원 속에서 실제로 살아 숨쉬고 있다고 느꼈고, 정말 나는 그 아이를 진심으로 아꼈다.
그랬던 내가 캐릭터를 삭제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 얼마나 슬펐겠는가. 티르코네일 마을 광장에는 은행이 있는데, 은행 뒤편에 한적한 나무 그늘이 있다. 거기에 아이를 앉혀 놓고 캐릭터 삭제 전,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은 것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제 자신이 영원히 사라진다는 사실도 모른채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아이를 향해 "잘 있어, 미안해" 몇 번이나 중얼거리면서 캐릭터를 삭제했고, 세 시간 동안이나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다(그때
에스키스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지금 너무 슬프다' 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 <13층>에서처럼, 그 아이는 단지 전선 다발과 반도체 속에서만 존재하는 한낱 전기적 신호의 더미에 불과했지만, '관계'와 '의미'란 것이 그렇다. 아무리 확실하고 명백하게 현실 세계에 실존해 있어도 그것과 내가 관계가 없다면 게임 캐릭터 만큼의 의미도 없는 것이며, 그것이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가 이미 그것과의 관계 속에 있다면 그때 느끼는 의미는 결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마비노기 이야기를 들으면 항상 그 아이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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