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데이팅
'크리스찬의 애인(1)-(4)'를 주보에 내보내고 한 달쯤인가 뒤에 죠슈아 해리스의 '노 데이팅(원제: I kissed dating goodbye)'이라는 책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사실 '크리스찬의 애인' 쓰면서 나만 별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냐, 하는 불안감을 갖기도 했는데, 미국에 사는 얼굴도 모르는 녀석이 나랑 비슷한 얘기를 하길래 아주 반가웠다. 여러분들도 돈 있으면 하나 사서 읽어보기 바란다.
내가 그 책 칭찬하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교제와 연애의 개념을 구분한다는 것. 둘째, 독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돋보인다는 점. 그런데 사실 첫 번째 이유는 말이 안되는 얘기다. 그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되겠지만, 죠슈아 해리스는 교제의 엄격함에 관한 한 나보다 더 독한 녀석이다. 그런데 혹시 독한 것이 아니라 논리의 모순이 아닌가 나는 의심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교제와 연애를 구분한다고는 하지만 실상 연애의 단계가 없다. 내가 무척이나 유심히 찾아보고 연구해 봤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그가 말하는 연애는 '약혼 이후의 만남'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그의 책을 읽어보고 나서 내 글을 다시 읽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죠슈아는 교제라는 개념영역에 너무 많은 것들을 포함시켜 버리는 바람에 연애 단계는 거의 뼈대밖에 남지 않는다. 마치 프랑스 요리를 먹을 때 전채요리에 배가 불러 본요리를 먹지 못하게 된 것처럼. 그런 이유로 실제로 죠슈아 해리스는 연애 단계를 설명해줄 예시를 들지 못하고 있다. 나중에 자신의 부모님이 서로 만나게 된 상황을 설명하긴 하는데, 그건 오히려 그의 책 전체의 통일성을 해치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데이팅'은 꼭 읽어볼만한 책이다! 무척 권장하고 싶다. 그의 '교제와 연애'와 내가 말하는 '교제와 연애'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듯.(이 책을 칭찬하는 것은 '두란노'가 펴냈다는 것도 이유가 된다. 왜냐면 나는 '새벽나라(도서출판 두란노)'에 Think라는 만화를 매달 연재하고 있기 때문. 그래서 두란노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히히!!!)
책 얘기는 그만하고, 이제 교제는 뭐고 연애는 뭔지 얘기를 시작해 보자.
어떤 자매의 프로포즈
여러분은 혹시나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 니가 뭔데 이성교제를 논하는가, 자기자신이 여자 친구 하나 없으니까 괜히 부러워서 그러는거 아니냐, 도대체 사랑을 해보고서 그런 얘기를 하느냐....... 등등.
물론 사랑은 해보았다. (그 개념이 애매하긴 하지만) 사랑을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이런 글들을 쓴단 말인가. 어쩌면 나이 좀 많으신 분들은 "니가 세상을 몇 년 살아봤다고!" 하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분명히 해두고 싶은 점은, 나이나 경험의 분량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성관계라는 분야가 특히나 그렇다. 경험의 많고 적음 보다는 깨닫는 것이 중요하고, 깨닫는 것 보다는 인정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사족이었고, 올해 들어서만 두 명의 자매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았는데, 그중 최근의 것이 지난 주(미리 써둔 글이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난 주'가 아니게 되었다. 정확히는 7월 5일이다. : 필자 주)의 일이었고 연상의 한 자매님으로부터였다. (혹시 그분께서 이 글을 읽게 될지도 모르는데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으셨음 좋겠다.) 아마 6개월 전이었다면 나는 OK 했을 것이다. 착하고 아름다운 분인데다가 신앙적으로도 성숙한 분(나를 가르치는 위치에 계셨으므로)이었고 거기다가 안정된 직장도 갖고 계셨으므로 더할 나위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분의 프로포즈를 듣는 순간에 생각의 여지도 없이 나는 '이건 아니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이런 마이스토리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은 '교제'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나는 참 안타까웠다. 그분이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셨다면 그런 식으로 고백을 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교제와 연애
그분 나름대로는 프로포즈에 내가 동의하면 신앙적인 교제를 시작하리라, 하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절대로 그렇게 될 수가 없는게, 고백은 곧 교제의 끝을 뜻하며 연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교제'와 '연애'를 전혀 구분하지 않는 이들로서는 백 번 죽었다 깨어나도 이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교제'와 '연애'의 차이를 먼저 이해해야만 한다.
'크리스찬의 애인 2'에서 그 차이를 설명했었는데, 잘 이해를 못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 여기서 다시 살펴보고 넘어가자. 흔히들 교제를 연애와 동일한 개념으로, 그러니까 전자를 그저 신실한 크리스찬의 연애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일단은 그것을 제쳐두고 '연애'라는 개념으로 통일하도록 하자. 이 '연애'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고백과 동의 이후의 만남을 뜻한다.
A가 B에게 '난 니가 좋아' 하고 고백했는데, B가 '나도 좋아' 하고 말하면 이 둘은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연애'의 개념은 그게 전부다. 대단히 간단하다! 뭐 이렇게 싱거워..........하고 실망하실지도. 하지만 괜찮다. 내 '이성관계론'의 포인트는 연애가 아니라 '교제'이므로. 아무튼 연애는 그런 개념이니까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마셨으면 좋겠다.(^.^;;;)
이때 우리가 착각하는 것 하나.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하! 정말 연애를 통해 상대방의 중심을 알 수가 있을까? 약간은 알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교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백이 있은 다음부터는 '연출'된 모습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이 보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 교통법규를 어기는 운전자가 어디 있겠는가. 관객이 쳐다보고 있는 무대 위에서 코딱지를 팔 출연자가 어디있겠는가. 같은 이치다. 연애기간에는 고백을 한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서로에게 최대한 호감을 주기 위해 자신을 연출한다. 연애할 때는 조그만 트림에도 얼굴 빨개지더니 결혼하니까 방귀를 뀌고 나서도 '너는 안 뀌냐'는 얼굴로 째려보더라는 우스개, 그냥 넘길 얘기가 아니다. 연애를 하면서 그의 중심을 알아가겠다는 생각.........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앞서 등장했던 예 중에서 이혼사유로 가장 큰 퍼센티지를 차지 하는 것이 '성격차이'라고 말했었다.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걸 왜 몰랐겠는가. 그건 결혼전 그들이 접했던 모든 것들은 연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제'의 단계가 절실한 것이다. 이것은 너와 나, 일대일의 시선교환이 아니라 생활의 전면을 의미한다. 같은 소그룹, 또래, 부서, 직장, 학교라는 '생활의 접점' 속에서 상대방을 알아가는 것이다. 오해하지 말 것은 특정상대를 두고서 그에게 접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친구'를 생각해 보자.
여러분들은 정말 아끼는 친구 서넛 쯤(일반적으로 동성일 것이다)은 있을 것이다. 그 친구들을 어떻게 만났는가? 친구소개팅을 통해서? 길을 걸어가다 우연히? 아님 지하철에서 '저 여기서 내려요' 하고서 인연이 닿았나? 아님, 배(예를 들어, 타이타닉 같은 거)를 타고 가다 자살하려는 걸 구해줘서? 아니다. 모두 여러분 생활의 처소에서 만난 이들이다. 처음부터 이토록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만난지 며칠 또는 몇주 아니면 몇달을 보내며 그에 대해 한 가지씩 한 가지씩 알아가고 그러다 '이 친구 참 괜찮다' 하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이성친구 역시 친구를 알아가는 단계와 같은 형태의 '교제'가 있어야 하는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다만 친구는 동성이 보통이지만 그 대상이 이성으로 바뀌었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많은 이성들과 다양한 교제(친구로서!!!!)를 하며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연애의 기간에는 무엇을 하는가? 조슈아 해리스는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 그는 교제를 너무나 엄격하게 생각한 나머지 '고백'을 청혼 수준의 중대한 행위로 보고 그뒤의 관계를 약혼에 준한 연애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교제도 자유로워야 하고 연애도 그에 못지않은 개방성을 띠어야 한다고 본다. 연애를 하는 도중에도 지속적인 관찰 탐색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제의 연장선상에서 상대방을 알아가는 것이다.
교제의 단계를 거치고 연애를 시작할 때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교제 없이 고백한 다음 사랑을 쟁취(?)한 사람은 상대방에 대한 환상이 심하고 이를 일컬어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한다. 내가 경험한 바로나 나에게 프로포즈한 자매들의 경우를 보거나, 상대에 대한 진지한 판단을 하기는 커녕 '그저 좋은' 감정만 극대화되는 경향이 많았다. 처음의 환상이 시간이 흐를수록 강화되었으면 되었지 약해지는 경우는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사랑을 고백받은 쪽은 - 그가 싫지 않은 이상 - 고백한 이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과장적으로 포장하기 마련이므로 그런 현상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제 기간동안 꾸준히 상대방을 관찰한 경우, 그를 좋아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여러 차례 검증해 보았으므로 그것을 바탕으로 연애 중에도 그것을 확인해 간다. 당초 그를 타겟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열린 가능성 중에서 자신에게 합당한 대상을 찾은 것이기에, 그에 대한 집착이나 그가 아니면 안된다는 자기 기만, 합리화도 줄어든다. 즉, 다시 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감정에 치우쳐 경솔한 성적 결합이나 농도짙은 애정표현을 자제하게 된다.
어쨌든 연애에 무슨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내가 관심있는 건 교제다. 단지 교제가 있었던 연애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그만큼 교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연애에도 어떤 기본적인 수칙이 있기는 하다. 아까 말했듯이, 연애를 하면서도 새로이 알게 된 상대방의 면모에 따라 헤어질 가능성을 전제하므로 경솔한 언행을 주의해야 하는 것, 그 정도가 될 것이다. 함부로 '너의 마지막 사람이 되고 싶어', '너 말고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거야' 따위의 웃기는 말은 상호간에 하지 않길 바란다. 결혼에 대한 구체적 확신이 서지 않는 한.)
상대방을 앎
참된 교제라는 것은 결국 '나는 정말 그를 좋아하는가'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나는 정말 그를 아는가'의 문제로 귀착된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를 좋아한다는 것은 감정의 기만에 속아 넘어갔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나에게 프로포즈한 그 연상의 자매는 나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을까? 나와 같은 조도 아니었고 같은 또래도 같은 부서도 아니었다. 생활의 접점이 없이 나를 안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 자매가 좋아한 건 '리디'라는 실체가 아니라 '리디'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내가 세 번이나 또래장을 했고 코람데오라는 부서를 만들어 1년반동안 이례적인 주보를 만들어냈으며 두드러진 활동을 한다는 것 따위의 외형적인 것이 아닌, 진정으로 나의 본질을 이해했을까? 결코 아니다. 그런 사실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 내 감정은 '괜찮으니 사귀라'고 용인했건만 - 그 프로포즈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교제의 단계를 충실하게 지킨 사례도 있다. 김민기(가명) 형제와 박소현(가명) 자매는 같은 선교단에서 일했다. 처음에는 관심 밖이었지만 각각 선교단 내에서 직분을 맡아 섬기게 되면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다. 두 사람은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었으나 교회에서는 서로를 알 기회가 없었으므로, 선교단 안에서 각기 몰랐던 모습들을 보아가며 기질이나 신앙, 인생관 등을 탐색했다. 그 기간이 2년여나 되었다. 김민기 형제는 상대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이해없이 사랑이 이야기되어진다면 그 사랑은 그리 진실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과 '아주' 비교되는 라디오 사연을 한 번 보도록 하자.
"그녀와의 처음 만남은 조인트 엠티에서 였습니다. 조인트엠티에서 제겐 그녀가 한눈에 띠었죠. 그러나 말 한 마디 못 해보다가.......다음날 아침 전 용기를 내어서 자전거를 같이 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죠. 우리의 만남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엠티후에도 우린 서로 전화해가면서 만남을 가졌고, 그러면서 서로 좋아하게 되었고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그녀가 서로 잊기로 하자고 하더군요. 그러나 전 그 약속을 지킬수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오늘 7월11일이 그녀의 생일인데......"
무엇이 문제인가 한 번 생각해 보라. 이 친구가 '조인트엠티에서 그녀가 한눈에 띠었죠........'했을 때 이미 게임은 끝났다. 그 다음부터 자전거 타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전화해 가며 만남을 가졌다고 했지만, 그가 좋아하는 대상은 이미 '특정'되어 버린 상태였다. 설령 헤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만남은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그녀의 중심을 얼마만큼이나 이해했을까? 대답은 '전혀'다. 나중에 다루게 되겠지만, 맛배기로 짚고 넘어가자. 그가 조인트엠티에서 유독 그녀를 첫눈에 좋아하게 된 이유는? 당근, 예뻤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미모를 좋아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이유로 해서, '고백'이란 걸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결론이자 나의 바램이다. 교제 없는 고백, 감정의 지배를 받는 고백은 여러분에게 절대 좋은 것을 가져다 줄 수 없다.(설령 고백이 성공적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생각있는 크리스찬이라면 리디오 FM 프로그램에 '그 애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는 어리석은 사연은 보내지 말아야 한다.
너무 유치하다. 나이 스물 넘어서 그리 생각이 어리면 어떡하잔 말인가? 형제는 자매에게 자매는 형제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하지 말고 삶의 접점 안에서 마음을 열어놓고 지체들을 바라보자. 남들 애인 있는데 나만 없다고 박탈감 느끼지 말고 거한 처소(조, 또래, 부서, 직장, 학교, 이웃 등)에서 모든 이성을 객관적인 눈으로 관찰하자. 사랑은 어느날 문득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젖어드는 것이고, 사랑은 쟁취하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경악을 금치 못한 TV 프로그램
얼마전에 토요일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브를 찾아서' 라던가? 암튼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데, 도대체가 말이 되는가! 그 한두 시간 동안 여자들에게 보여주는 남자들의 '쇼'도 터무니 없거니와 여자들에게 그걸 보고서 사귈지 말지를 결정하라는 주문도 실소를 자아낸다. 그 상황에서 그 시간동안 서로 무엇을 알 수 있단 말인가. 말이 다 안 나온다. 더 웃긴 건 참가하는 남자들의 자세가 너무나 진지하다는 것. 참 측은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도 그들과 오십보 백보는 아닌지......... 끌끌.........(1999.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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