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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사랑하기  
   posted at 2003-02-16 03:12:50
3846 hits  0 comments
lifewithyou is level 1  llllllllll 
 퍼머링크 : http://reedyfox.com/island.php/column_etc/4  [복사]

사실 이번엔 ∼하자는 식의 글이 아닌 내 개인적인, 그러면서도 편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글을 올리고 싶었는데, 하도 업뎃이 늦어지는 바람에 전에 쓰다 만 글을 완성해서 올리려한다. 원고마감에 쫓기는 만화가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듯... ^^;




** 푸념
    가끔은 '내가 왜 이렇게 엄청난 시간들을 투자하면서 글 같지도 않은 글을 쓰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한다. 영어, 전공, 독서, 사람들 만나기 등등에 시간을 써도 모자를 판에 잠도 안 자면서 이렇게 쬐금한 노트북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지. 괜히 욕심부려서 맡았다가 짐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고.. 궁시렁 궁시렁....

    하지만 나름대로의 나에게, 그리고 몇 독자(독자라고 하니까 무지 어색하네..)들에게 의미가 있는 일이니, 기회가 주어질 때 의미를 부여하며 열심히 해 보려한다. 아마 의지와 달리 답답한 내 머리에 대한 불만이 푸념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 어물쩡
    내가 여기서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 '바로 사랑하기'를 언급하기에 앞서 '사랑하다'라는 말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런데 솔직히 '사랑'이라는 단어를 대하면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백사장이 펼쳐진 새파란 해변, 깎아 내리는 절벽의 해안, 한없이 펼쳐진 바다 저편으로 떠오르는 아침해와 지는 해... 어느 한 마디로 바다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듯 사랑이라는 것도 너무나 다양한 면을 갖고 있기 때문에 뭐라고 해야 할 지 자신이 없다.

    절대적인 사랑은 알고 있지만 우리가 실질적으로 부딪히는 사랑에 대해서는 솔직히 그것에 대해 쓸 만한 자질이나 개념이 확실히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도 하나님과의, 사람들과의, 사물들과의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배워 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언제쯤 그것을 확실히 알 수 있을지도...) 나름대로의 논리를 펼 자신도 없기에 어물쩡 넘어갈까 한다. (용서를... ^^;)


** 진짜 본론
    거리에서 기나 도에 관심이 있느냐며 부지런히 쫓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그리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열심히 '파XX'라는 잡지를 돌리는 이단들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참 열심인데, 왜 진리 아닌 것을 위해 저렇게 수고하고 있는가....'

    어떤 영화 장면이 떠오른다. 한 여자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리고 그 여자를 다른 누구에게 빼앗기기 싫어 결국 그 여자를 죽이고 자기 속에만 담아 두려 한 남자의 얘기. 이 남자는 여자를 사랑했을까? 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보통 이상으로....

    혼자 사랑하기는 쉽다. 그냥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생각하고.... 하지만 바로 사랑하기는 어렵다. 만일 내가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된다면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희망, 주변 환경 등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고, 싫어하는 일들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결국 그녀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것은 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동시에 다들 아는 사실일 것이고....

    이제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로 초점을 바꿔 보자.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물론 대부분의 크리스챤들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그러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그 사랑은 어떠한가? 그 사랑은 정상적이라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이단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의 어떤 존재(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갖고 있는 그것보다 훨씬 클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그들의 방법이 그릇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그건 무의미한 것이다. 목적지가 동쪽에 있는데 남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아무리 열심히 달린다고 해도 목적지에 가까이 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아무리 더딘 걸음이라도 목적지를 향해 바로 갈 때 조금씩이라도 그곳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한다.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하는 사랑은 목적 없이 쏘는 화살과 같지 않을까 한다. 간혹 가다 과녁을 맞출 수 있을지 몰라도 내 옆 사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는 이 말을 제임스 패커의 'knowing God' 한글판 제목(IVP)에서 처음 봤다. (옆으로 벗어나는 얘기지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좀 어렵고 지루할지도 모르지만, 크리스챤이라면 한 번은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학을 이 한 권과 보내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텐데....)

    이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knowing of God) 이상으로 하나님을 알아야(knowing God) 한다.


    ' 어렵게 들릴지도 모를 것 같아 얘를 들자면 '그녀는 의사이고 키가 160이며 깊고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라는 말과 '그녀는 아침에 향긋한 헤이즐넛 원두커피를 즐기며, 피천득님의 수필을 좋아하고, 후에 통일이 되면 북한에 들어가서 자원봉사 하는 것을 비전으로 갖고 있다.'라는 말의 차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제 조금 감이 잡히지 않나?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한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자신의 취향대로 맞춰 가는 자기 만족의 행위이지 사랑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자기 만족의 행위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을 한다면 결코 바른 사랑을 할 수 없다. 때로는 내가 좋아하고, 쉬운 일을 내려놓고 싫어하는 일, 어려운 일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길가에 여기저기 붙어있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볼 때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200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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