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
생각하는섬'이 DAUM 칼럼에 있었을 때 올렸던 미완성 글의 일부분입니다. 3부작을 생각하고 1부를 올렸다가, 사이트 성격에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 지웠습니다. 지금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라면 완성을 봤을지도 모르겠네요. 여기 가족분들 중에선 유일하게 moon 쌤이 알고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
모 사이트에서 좋아하는 이성의 마음을 떠볼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냐는 질문이 나와서 저의 오래된 연애담을 다시 꺼내봅니다.
5년전, 그러니까 2000년 1월경에 한 이성 -
춘천아가씨
라 불렀습니다 - 과 상당히 가까워진 상태였습니다. 친했고 말도 잘 통했으며 서로 마음이 있는 것 같았는데, 결정적인 뭔가가 없었어요. 그것을 확인하려다가 자칫 좋은 오빠 동생 사이가 깨질까 걱정도 되었구요.
그래서 문자를 보냈습니다. 정말 뜬금없는 내용.....
"오천 송이의 장미, 그리고 한 송이의 장미"
5분후 답장이 왔습니다.
"금빛 밀밭, 그리고 황금빛 머리카락"
그날부터 사귀었습니다. ^^
저희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문 : "수많은 존재 가운데, 이제 당신이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답 : "수많은 존재 가운데, 이미 당신은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적어도 저는 저런 뜻으로 보냈고,
그녀도 그런 뜻으로 알아듣고 답을 보낸 거라고 나중에 말하더군요.
'어린왕자'를 읽으신 분은 대략 의미가 통하실 겁니다.
이렇게 다의적이고 모호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이성의 마음을 떠보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의 장점이라면,
1) 상대가 나에게 기울이는 주의력과 집중력의 정도를 알 수 있다.
2) 상대의 공감대와 나의 공감대가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알 수 있다.
3)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할 경우, 유야무야 넘어가면서 편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시간이 지나 관계가 발전되면 또다른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여러분에게 별반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뭐지?' 하고 갸우뚱 거리다 나중에 만났을 때 그 의미를 물어볼 것입니다. 조금 더 호기심 있는 사람이라면 전화를 걸거나 문자로 '무슨 뜻이야?' 하고 묻겠죠. 그럴 땐 가볍게 웃으며 대답해줍시다. "아니, 그냥 책 읽다가 좋은 구절이 있길래...^^"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1) 특정 내용을 담은 문자메시지가 상대방의 주의력과 집중력을 변별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2) 공감대가 같을지언정, 그 대상에 대한 이해력의 정도는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3) 답장 내용은 컨닝(부정행위)이 가능하다. 더더욱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에서는...
4) 답장이 오긴 왔는데, 그 답장 내용을 해석하질 못하면 이 또한 낭패...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 식의 격언들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 저같은 소심인들이 평생에 한 번쯤은 사용해볼 만한 방법이긴 하지만, 이런 기교로 붙잡을 수 없는 소중한 인연들이 세상엔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영화 제목처럼, 사랑은 사실 어느 곳에나 있고 그 모습과 색깔 또한 셀 수 없이 다양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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