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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1 총선에 대한 뒤늦은 후기  
 리디  posted at 2012-12-03 08:53:17
1935 hits  0 comments
 http://reedyfox.com NeWin reedyfox is level 38  llllllllll 
 퍼머링크 : http://reedyfox.com/island.php/fox/1925  [복사]

2012년 4월 11일은 19대 국회의원 선거일이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날 선거 결과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나도 마찬가지다. 거의 일 주일 동안을 시쳇말로 ‘멘붕’ 상태로 지냈던 것 같다. 선거 전에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할 경우 1/3 토막까지 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선거일이 어서 다가오기를, 한나라당을 심판하는 쾌감을 맛볼 수 있게 되기를 고대했었다.

이런 분위기는 언론에서 일부 기자와 평론가들만 예측한 것이 아니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성토하며 4월 11일 투표를 통한 심판을 외쳤던가. 특히 ‘나는 꼼수다’를 중심으로 형성된 여론은 선거일 당일이 마치 통쾌한 심판의 광경이 펼쳐질 흥미진진한 쇼라도 되는 것처럼 그날을 기다려 마지 않았었다.

그런데 결론은 한나라당의 과반 의석 확보와 야권연대의 참패였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인터넷에서 내로라하며 정치적 견해를 표하는 사람들은 모두 야권에 대한 지지와 야권연대의 성공을 확신하였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야권에 대한 지지는 단순한 정치적 의견 중 하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자는 양 99 마리를 가지고 있고 가난한 자는 겨우 양 한 마리밖에 없는데, 한나라당은 가난한 자의 양 한 마리를 빼앗아 부자에게 100 마리의 양을 맞춰주는 정책과 이념을 가진 자들의 집합이다. 그런 자들이 이땅에서 권력을 잡고 영향력을 발휘하며 가난한 자를 착취하게 되는 것은 비극이며, 그 비극을 막는 것은 당위이고 정의다. 그 정의가 오늘날 이 땅 위에 실현될 줄 알았었다. 그런데 현실 세계에서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의 다수가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사람들은 정의가 아니라 불의와 비극을 선택한 것일까? 확신했던 이상과 현실 세계의 인지 부조화로 인한 정신적 좌절감은 매우 깊었다.

<후퇴하는 민주주의(이하 ‘이 책’)>는 여러 강연자의 발표 내용을 모아놓은 책이지만 모든 강연자가 한결같이 말하는 내용은 ‘대중이 속고 있다’는 것이다. 당위와 거리가 먼 민의가 표출되는 이유는 그 민의를 구성하는 대중이 권력자에게 속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당위로 좇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4.11 총선 결과는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강연자들이 말하는 대중에 대한 기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손석춘은 선량한 국민이 권력자에 속아 잘못된 당위를 추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손석춘을 제외한 나머지(특히 김규항, 박노자) 강연자들은 권력자가 국민을 기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결합시킨 것은 대중 그들 자신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후자에 동의한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속어로 ‘국개론’이라는 것이 있다. 단어 앞 글자를 따서 조어한 이 용어를 풀어보면 ‘국민이 개X끼다 론(論)’이다. 개념없는 막말로 보이지만 결국 맥락은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의 표현인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는 말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얘기다. 달동네 사는 서민들은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나라당에게 표를 주고, 등록금 인상 반대하는 대학생들은 대학등록금 자율화를 주장하는 한나라당에게 표를 주고, 전체 노동자들의 절반 이상인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친기업적이고 반노동자 입장인 한나라당에게 표를 준다. 안보 타령하는 가스통 든 해병대 어르신들은 군미필에 안보장사꾼 집단인 한나라당에 표를 주고, 노인들은 노인복지예산을 줄이는 정책을 입안하는 한나라당에 표를 주고, 재래시장 상인들은 이마트 홈플러스 팍팍 밀어주며 자영업자 밥그릇 훔쳐가는 한나라당에게 표를 준다. 사람이 미치지 않고서야 생각과 행동이 이렇게 괴리될 수가 있을까? 이것을 개X끼라고 표현하는 것조차도 너무 점잖다 싶을 정도다.

거기에 더하여 나의 이익을 그 가치판단에 추가하는 시점에 이르러서는 도저히 이 땅의 대중을 민주주의의 초석이자 토양으로 보는 것이 가당하기나 한지가 의문이 들게 된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바로 내 동생이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을 지지했던 이유가 바로 “18평짜리 내 집값을 올려줄 것 같아서” 였다. 내 수중에 돈 만 원이라도 더 쥐어준다면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내 알 바 아니라는 저열한 가치관이 이 땅을 살아가는 대중에게 잠재되어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때로 이벤트적 요소로 촉발된 어떠한 사건이 수십만 명의 촛불 시위 따위의 형태로 파급력을 갖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김규항이 표현했듯이 촛불 시위를 이끄는 그 위대한 대중들은 정작 FTA는 찬성하거나 FTA로 피눈물 흘리는 연대해야할 동지들이 있다는 사실은 외면하는 표리부동한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당위를 가지고 투쟁한 것이 아니라,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이기적 동기가 가장 큰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책에서 손석춘은 이러한 대중은 지적 각성과 계도, 학습을 통하여 민주주의 수준에 부응하는 소양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과연 그럴까? 대중의 (민주주의적 소양 견지를 위한) 지적 발전이라는 이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지적 발전의 방법론과 발전 수준이 아니다. 지적 발전의 필요성에 대한 대중의 관심 그 자체가 가장 큰 문제가 된다.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것에는 일체의 관심이 없는 다수 대중은 지적 발전을 위한 어떠한 학습에도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해결책은 없다고 본다. 이 책에도 언급되었듯이 민주주의 선진국은 유혈/무혈 혁명과 계급적 변혁기를 거치면서 대중 전체가 강제적으로 민주주의를 경험하였고, 그것이 지금의 민주주의 토양을 이루고 있다. 우리 나라는 근대 역사 자체가 너무나 짧고 형식적 민주주의를 자발적으로 성취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얻어버린 터라, 대중에게 민주주의적 소양을 기대하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지금 내가 나의 이익을 위하여 좇고 있는 이 행위가 결국엔 날카로운 창이 되어서 나와 내 가족을 찌르게 된다는 것을 대중 전체가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 체험의 끝에 각성과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몇 세대가 지나가면서 왜 지금 아쉬울 것 없는 내가 지금 당장 아쉬운 다른 누군가와 연대해야 하는지를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

(방송통신대학교 2012학년도 2학기 "철학의 이해" 과제물로 제출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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