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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그를 정말 좋아하는가?  
 리디  posted at 2003-02-08 00:28:37
7541 hits  4 comments
reedyfox is level 38  llllllllll 
 퍼머링크 : http://reedyfox.com/island.php/fox/688  [복사]
좋아하는 감정
    질문을 하나 해 보자. '좋아할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좋아하는 감정'이 생길까? 대체로 '그렇다' 라고 대답을 한다. 청년을 포함한 이삼십대 연령층에 있는 이들은 모더니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므로 당연한 반응이다. 크리스찬일수록 감정 일변도의 세상 풍조와 뚜렷이 구분이 되어, 자신의 '좋아하는 감정'의 타당한 근거 즉 '좋아하는 이유'를 열거하는 데 열심인 것 같다.
    하지만 틀렸다. '이유'가 먼저인 게 아니라 '감정' 먼저다. 이것을 쉽게 이해하려면 '이유'라는 말을 '이성'으로 바꿔보면 된다. '감정'은 '이성'에 우선하기 마련이다. 누군가를 좋아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기 이전에 이미 나는 '그'를 좋아하고 있고 그 감정은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기도를 통해 가능한가 의문이 있지만 아직 드러난 사례가 없고 그럴 것 같지도 않다. 결국 누구든 이성 앞에서 만큼은 자기 감정을 완벽히 통제할 능력이 없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그런 감정을 있게 한 '이유', 그러니까 '이성적 판단'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할 때마다 나름대로 '이유'를 만들어낸다. 이래서 좋다, 저래서 좋다, 하고 말이다.


필요에 의한 자기 기만
    '이유'는, 처음에는 자신에게는 필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 좋아하는 대상도 포함해서 -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며 '이유'의 필요성을 느낀다. 우리는 그에 대한 우리의 사랑(내지는 좋아하는 감정)을 실현시키고 싶어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타인의 공감을 얻어내려 한다. 무의식적인 동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짝사랑을 하면 카운셀 받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카운셀이 아니라 공감, 동의인 것이다.)
    공감을 얻기 위해선 우리 자신의 감정에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그를 좋아할 만한 이유를 되짚어 보게 된다. 그러다 적당한 소재가 있으면 옳다구나 하고선 '그것 때문에 그를 좋아하게 됐어.' 하고 생각해 버린다.
    모 라디오 방송 사연에 오른 내용을 보자.

    "제가 다니는 영어 학원에 예쁜 여학생이 새로 들어왔죠. 너무나 예뻐서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을 정도였어요. 조그만 체구에 서글서글한 눈, 차분한 말투.... 멋을 안냈지만 은근히 스며나오는 매력.......
    영어회화 시간에는 영어로 뭐든 그녀에게 물어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런식으로 그녀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갔습니다. 그녀는 영어공부를 참 열심히 했고,모르는것은 저에게 잘 물어보곤 했어요.
    그녀는 예쁘기만 한게 아니라 마음씨까지 곱고, 성격도 활달 하더군요. 그리고 붙임성도 좋고, 게다가 똑똑하더라구요. (제가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 그녀다 싶었습니다. 그녀도 저를 좋게 생각하는것 같았어요.) 아이구 근데 전공도 제가 그리도 하고싶던 미술이었어요. 전에는 제가 다니던 학교를 다녔는데...서울로 편입을 해 갔더라구요. 방학이라서 집에 내려왔던 거지요. 근데 놀라운 것은 그녀는 보기같이 연약한 여자가 아니더군요. 무려 5개월동안 캐나다를 여자홀몸으로 여행했다니 믿어지지 않더군요. 그말을 듣고 더욱 그녀가 좋아졌습니다.(후략)"



    앞에 말한 것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 글을 쓴 사람이 얼마나 자기 감정의 구덩이에 깊이 빠져있는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당사자는 마음씨 곱고 성격 좋고 붙임성 좋고 똑똑하다는 절절한 이유를 들었다. 그가 그녀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어필이 역력하다.
    그러나 그는 솔직하지 못했다. "...영어 학원에 예쁜 여학생이 들어왔어요....." 하고 말할 시점에서 이미 게임은 끝난 상황이었다. 마음씨 좋고 어쩌구.......하는 그런 이유들이 있어서 그녀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요소들이 그의 감정을 지배하게 된 것 뿐이다. 그런 것을 가지고 어떤 필연성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는 것은 자기 기만이다.
    이렇게 필요에 의해 이유를 찾아내기 시작하면서부터 자기기만이 시작된다. '크리스찬의 애인(3)'에서 이것을 가리켜 '자기 합리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미지에 일단 빠져들게 되면 그 이미지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게 되고, 후에 이미지의 공허함이 드러나더라도 그것을 유지시키기 위해 또다시 자신을 속이고 합리화한다. 그런 그에게 주위에서 부정적인 발언이라도 하면 호전적인 태세로 돌변할 정도로 철저한 기만을 발견할 수 있다.


공허뿐인 감정
    정말 그런가? 한 번 생각해 보라. 한 때, 열병처럼 누군가를 좋아한 다음, 그 감정이 정리되었을 때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좋아했던 대상이 본질적으로 바뀌어서, 그래서 내가 좋아한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에 '감정'도 따라 없어진 것인가? 아니다.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고 다만 우리의 감정에만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련이 남은 '이미지'는 그 사람을 볼 때마다 막연한 추억을 남길 따름이다.
    이런 면에서 수련회나 부흥회와도 닮은 점이 있다. 집회에 참석해서 울부짖고 열심히 기도할 때는 뭔가 대단한 일신상의 변화라도 일어난 것 같아도, 그 감정의 도가니에서 벗어나면 며칠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며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게 수많은 중고등부, 청년부 수련회가 드러내는 단면이다. 공허한 감정의 기만이다.
    '감정'이란 게 이토록 막강하기에 '이성'이랑은 게임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 배우자 기도의 '치명적 한계'란 이 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무리 배우자 기도를 성실하게 진지하게 해왔다 하더라도 한 순간의 감정의 흐름에 정신을 잃고 그간의 기도제목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성을 맹목적으로 좋아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앙적으로 처리해 나간다면서 기껏 하는 행동이라곤 몇번 기도하고 결단(?)한 다음 그에게 찾아가 고백하는 정도다. 그 기도라는 것도, 아주 웃겨서, 하나님의 의사를 묻는 게 아니라 이미 자기는 결재 다 해놓고 하나님한테는 동의나 구하고 앉아 있다.(웃기는 짜장이다.) 자기를 합리화하려고 하나님까지 끌어들이는 꼴이다. 그러니 송명희 시인에게 불쑥 찾아와 "하나님이 나에게 당신과 결혼하라는 응답을 주셨소."하고 말하는 녀석이 생기는 거다.

    우리가 드라마틱하고도 아름다운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믿었던 그 많고 많은 사랑의 정체가 출처도 불분명한 한 순간의 충동적 감정일 뿐이었다는 사실만이라도 깨닫게 되면 세상 사는 것이 무척 쉬워진다. 너무나 빤히 보이고 그 후에 결과를 봐도 항상 예측한 대로다. 너무나 단순한데도 당사자는 자기 기만에 빠져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아니, 깨닫고 있지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왜 그런 걸까? (1999.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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