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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우리가 속고 있는 것들  
 리디  posted at 2003-02-09 18:16:50
7265 hits  0 comments
reedyfox is level 38  llllllllll 
 퍼머링크 : http://reedyfox.com/island.php/fox/689  [복사]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안 뒤 그때까지 그가 절대시 했던 세상의 고상한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다고 고백했다. 그 정도까지는 안되더라도, 나는 애정관에 대한 정립된 생각을 갖게 된후 드라마, 영화, 대중가요를 보고 들었을 때 그것들이 얼마나 허무하고 허황되며 거짓된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조급함
    '조급함'에 대하여는 '크리스찬의 애인(1)'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적었다. 그래서 여기서 그 내용을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요점은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있다''있을지도 모른다'의 차이를 아는지. 내가 바늘이 필요한데, 복잡하고 어질러진 방 안에서 그것을 찾아내야만 한다. 이때, 방안에 바늘이 확실히 '있다'고 할 경우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큰 차이가 있다. 도대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을 찾는 심정만큼 답답하고 막연할 데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적어도 '있다'라는 확답만 전제된다면 어떤 수고를 들여서라도 찾아낼 자신이 있다. 더욱이 찾고자 하는 대상이 그만한 수고의 가치가 있을 땐 더욱 그렇다. 시기의 문제지 결국 우리에게 이루어진다.
    이것이 신뢰의 의미이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순적히 이루어질 것을 믿는 마음 - 그게 신뢰다. 거기에는 우리의 조급함이나 강박관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신뢰만이 있을 뿐이다. 남들과 비교해서 내가 어디쯤에 서있는지 돌아다볼 필요도 없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베드로가 요한을 보고 예수님께 "쟤는 앞으로 어떻게 되나요?" 묻는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신다. "니가 무슨 상관이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의 주인공은 나라는 사실을 되새기자. 남이 어떤 이성교제를 하든 얼마나 일찍 하든 나에게 집중하자. 우리는 신 앞에 선 단독자 아니었던가.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나
    조급함이나 강박관념의 원인이 타인과의 비교에 따른 자괴감, 자격지심이라는 사실은 위에서 약간 언급했다. 이 비교의식은 우리 크리스찬이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인가? 개인차라는 생각을 해 본다. 성격의 예민함 정도에 따라 타인의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극심한 가난이나 지위의 비천함에도 비굴해지지 않고 당당한 사람이나 아니면 아예 그런 것 자체에 무감각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일단은 민감한 부류를 기준으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할 것 같다.
    왜 비교하면서 자격지심을 갖게 되냐 하면, '안정적 해석심리'를 그 원인으로 들 수가 있겠다. 이게 뭐냐면, 주관적 현상을 접했을 때 그것이 해석되어질 수 있는 최대한의 영역까지 인정을 해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마음 편해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 길을 걸어가는데 맞은 편에서 젊은 남녀가 매우 다정하게 웃으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당신은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연인일수도 있고 남매일수도 있다. 어쩌면 그냥 친구인데 어쩌다 재미있는 얘기를 하는 중이어서 다정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심지어는 친하지 않는 사이지만 서로 감정을 숨기고 다정한 척하는 것일수도 있다. 이때 당신이 안정적 해석심리를 가진 유형이라면 그들이 연인일 거라고 생각해버린다. 그리곤 맘껏 부러워하는 것이다. 실제로 연인이 아니더라도 당신이 감정적으로 손해볼 것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비교의식이 팽배한 사람은 이 '안정적 해석심리'가 머리에 각인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이성관계에 있어서 환상적으로 진행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우리 청년부만해도 '신앙적 교제의 모범'이라고까지 칭송을 받던 커플들 대다수가 일이 년 사이에 다 깨졌다. 대학교 4학년까지 평균 교제경험 숫자가 3명이 넘는다. 일단 결혼했더라도 다 끝난 게 아니다. 우리나라 이혼율도 구미국가들처럼 50%에 육박할 날 멀지 않았다. 당장 남들 잘 되어간다고 나까지 자극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모두들 잘 되어 가네'하고 생각하고 있는 중에도 수많은 커플이 깨지고 다른 짝을 찾고 다시 깨진다. 결국 원점이다.
    거리에 나가보면 모두가 짝이 있고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도 실상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당신의 길을 걸어가라.


사랑은 드라마틱하게
    안정적 해석심리가 광범위하게 유포된 것은 대중매체의 탓이다. 드라마, 영화, 대중가요 따위 말이다. 이들 대중매체들의 가장 일반적인 메뉴가 '사랑'이라는 건 상식이 되어있다. 거기다 나는 유익한 것(그렇다고 특별난 건 아니지만........) 하나를 더 알려 드리고 싶다. 대중매체가 가장 일반적으로 내리는 사랑에 대한 해석은? 정답은 '드라마틱하다'이다.
    나, 드라마틱한 거 무지 좋아한다. 내가 다니는 교회 청년들에게 나에 대해 물어보면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해체됐지만 코람데오 기자들한테도 입버릇처럼 '드라마틱하게 살아라'고 강조했다. 그럼 내가 잘못한 건가? 아니다. 내가 '드라마틱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건 삶에 대한 자세다. 내가 주인공임을 잊지 말고 하나님의 아들된 자, 딸 된 자임을 잊지 말라는 얘기다.
    하지만 대중매체는 사랑 자체를 드라마틱하다 정의하고 또 그래야 한다고 당위론을 편다. 이건 예를 들 필요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남산에서 대충 돌 던지면 김가 이가 박가 중에 한 명 맞는 것처럼, 대중매체 프로그램들은 '드라마틱' 사상이 도배되다시피 했다. 영화를 가지고 얘기를 해보자. 아마 여러분 모두가 봤음직한 타이타닉은 어떤가. 일단 사랑을 이루려면 도박도 잘해야 된다. 배표를 따야 하니깐. 또 1등실 갑판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윈슬렛을 놓치면 안되니깐. 게다가 그림도 잘 그려야 하고 춤도 잘춰야 하고 부잣집 아들처럼 속물근성도 없어야 한다. 윈슬렛이 왜 디카프리오를 좋아했는가? 그의 인격이? 세계관이? 여러분 가운데 혹자는 "맞잖아요. 디카프리오, 인격 좋고 세계관 멋있었잖아요."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비디오 빌려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란다.(나, 그 비디오 사 두었으니 연락주시면 빌려드리겠다.) 그녀가 그의 인격, 세계관에 빠져들었는지 다시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디카프리오가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그럴려니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당신이 정말 윈슬렛이 되어 잭 도슨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청년이 나타났다면 그가 말발 좋고 성격 좋다고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겠는가 말이다. 영화에서는 그렇게 해야 이야기가 진행되니까 그럴듯하게 플롯 구성해서 넘어가는 거지 그게 결코 현실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치열한 삶의 현실 속에서 상대방의 내면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부대껴 보기 보다는 일단의 드라마틱한 감정에 자신의 몸을 내맡기곤 한다. 부인할 수 있는가? 말발 좋고 성격 좋아도 실체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아닌 일개 한량일 수도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덧붙여, '그렇다면 대중매체를 어떻게 하라는 거냐?'라는 질문에 대해 몇 마디 하자면......... 보고 싶으면 보고 듣고 싶으면 들으라. 여기서는 그 정도로밖에 대답할 수가 없다. 나도 '낮은울타리'에서 문화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긴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게 최선의 대답이다. 다만 알고 보라는 것이다. 모르고 보면 잠재의식의 측면에서 폐해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있다. "대안은 '자세'다.")


나의 반쪽을 찾아서
    '크리스찬의 애인(2)'에서 분명히 말했다. 정해진 배우자는 없다고. 하지만 바득바득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가진 사랑에 대한 개념정리가 곧 '사랑은 드라마틱하다'인 걸로 보면 되겠다. 정해진 배우자가 있기에 하나님의 섭리하에 언젠가는 그와 드라마틱한 상봉을 하게 된다.....는 사고방식. 그들은 우리 크리스찬의 이성교제와 결혼이 무슨 '인간과 천사의 만남(마니또의 일종)'처럼 딱딱 들어맞는 걸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특히 자매들이 없지않아 이런 생각을 가지고서 미래의 백마탄 왕자를 꿈꾸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걸 종종 보게 되는데, 어쨌건 결과로만 보면 나쁠 건 없지만 바람직한 건 아니란 사실만은 알아 두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쉽게 고쳐먹지 못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예비된 배우자만 만나면 만사가 오케이라고 하는 생각은 결혼을 한참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혼은 우리의 절제와 순결에 대한 축복인 것'만'이 아니라, 결혼은 우리 신앙의 또다른 훈련장소이다. 권고하건대, 행복만을 바란다면 연애만 하는 것이 좋다.
    내가 고등부였을 때 직장을 다니다 목회자로서 소명을 가지고 신학을 시작한 한 젊은 선생님이 있었는데, 성격 좋으시고 한 인물 하셔서 학생들에게서 인기가 많았다. 청년부로 올라온 후로 몇 년간 뵙지 못했는데 결혼하셨다는 소식만 듣고 있었다. 어느 날 교회에서 그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아들을 안고서 무척 행복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사모님과 결혼하실 때 어떤 확신이 있었나요? 바로 이 사람이다......하는."



    그러자 그 분은 정색을 하고서 대답했다.

    "그런 게 어디 있겠니?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라도 있다는 거니? 있더라도 극소수겠지. 아무튼 나는 그런거 없었어. 하지만 나는 아내를 사랑해. 결혼은 신앙과도 같은 거야. 결혼할 땐 몰라. 살아가면서 '이 사람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참 감사하다.'하고 고백하고 또 고백하게 되는 거지. 신앙생활이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발견하는 것이듯 결혼 역시 지속적인 사랑과 감사의 발견이야."



    나의 반쪽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반쪽에 합당한 이를 찾아가는 것, 발견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 (1999.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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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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