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를 하나 들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급전이 필요해 친구를 찾았습니다. 그리 친한 이는 아니었지만 사정이 사정이다보니 아무에게나 일단 도움을 구해야했던 게지요. 친구를 앞에 두고 그는 2백만원만 꾸어주길 청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지갑을 꺼내더니 백만 원짜리 수표를 몇 장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백만 원, 이백만 원, 삼백만 원, 사백만 원. 어이구 사백만 원이나 있네."
친구는 사백만 원을 손에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 당장 쓸 돈은 아니지만..... 음..... 자네 꿔 주기도 좀 그러네. 그만 가보게나."
이 친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몹쓸 친구죠. 애시당초 꿔 줄 마음이 없었으면 돈 이야기를 꺼내지도 말았어야 합니다. 언젠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야심만만'을 보니, 돈과 관련한 꼴불견 다섯 가지 중에, 꿔 주지도 않을 거면서 사람을 앞에 놓고 이런 저런 훈계를 늘어 놓는 것이 들어 있더군요. 이렇듯 이런 예화는 우리 상식을 담고 있고, 평균적 일반인들은 예화에 등장하는 친구를 보며 손가락질 하며 쉽게 비난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상식이 지켜질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한 커뮤니티에서 어떤 회원이 어학용으로 MP3P가 필요한데 혹 구형이라 집에서 놀리고 있는 기기가 있으면 희사해주길 바란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저도 예전에 그 커뮤니티에서 집에서 놀던 64MB짜리 MP3P를 필요한 분께 거저 드린 적이 있는지라, 좋은 분이 나타나길 바랬습니다.
그런데 한 회원이 댓글을 달았는데, 자신은 MP3P도 있고 MP3CDP도 있지만 요즘은 PDA로 음악을 듣는지라 거의 사용을 안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까지 읽고 저는 '아, 이분이 거저 주시려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건 제 착각이었죠. 이어서 그분이 뭐라고 썼냐면, '하지만 처분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댓글을 달까, 쪽지를 보낼까 많이 생각했습니다. 줄 생각도 아니면서 나는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다고 굳이 댓글을 다는 이유가 뭔지 도무지 이해가 안돼서 말입니다. 비단 그분만이 아니라 여러 커뮤니티에서 대동소이하게 보는 패턴입니다. 예화를 놓고 생각하라면 상식이 무엇인지, 어떤게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인지 잘 분별하면서, 왜 실제에서는 저런 행동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예화와 실제의 사이의 간격인가 싶습니다.
저분께는 끝내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이라도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혹시 그분이 이글을 읽으시더라도 과히 마음 상해하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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