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고대앞 네거리의 신호체계는 위의 그림과 같았다. 당시 안암역 방향 교통은 지하철 공사 때문에 상당한 정체를 빚었는데 그 때문에 종암동→신설동 방향 교통도 늘상 극심한 정체 상태를 보였다. 이유는 이렇다.
신호체계도를 보자. ①번 신호는 전혀 문제가 없다. ②번 신호에서 안암역 방향으로 직진하는 차량들이 정체를 이루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교차로 안에 차량이 정체를 이루고 있음에도 일단 차머리를 밀어놓고 보는 운전자들의 심보 때문이다. ③번 신호로 바뀌어도 교차로 안에 꽉 차 있는 차량들 때문에 종암동→신설동 방향으로 전혀 이동할 수가 없게 된다. 안암역 방향으로 차들이 거의 빠져나가고 그제서야 직진차량들이 움직이려 하면, 다시 신호가 ①번으로 바뀌어버린다. 그러니 종암동→신설동 방향 도로는 늘 수백미터의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그 모습을 매일 수도 없이 목격하면서, 나는 운전자들의 양식만 탓했었다. 교차로에 차들이 빠져나가지 못했는데, 일단 밀어놓고 보는 못된 습관으로 교통흐름을 완전히 막아버리는 셈이니 말이다. 답답하지만 어쩔 도리가 있는가? 경찰이나 모범운전사들이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하든가, 안암역 방향 도로가 확장되든가 하지 않는다면 뾰족한 수가 없어보였다.
여러분이 행정책임자라면 어떤 대안을 내놓겠는가? (한 번 생각해 보고 다음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정체가 말끔히 사라져버렸다. 해법은 너무나 간단해서, 도리어 내가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바뀐 것은 단 하나,
①②③번으로 바뀌는 신호체계를 ②①③으로 바꾼 것이다. 왼쪽 그림에서 보듯이 ②번 신호를 받으면 운전자들은 늘 그래왔듯이 일단 차를 교차로 안에 밀어넣는다. 그리고 나서 ①번 신호가 떨어지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신설동 방향 차로가 막혀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나 좌회전 동시신호를 받은 차량들이 종암동 방향으로 이동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①번 신호가 끝날 때쯤이면 안암동 방향 정체는 이미 풀리고 ③번 신호를 받은 차량들은 아무 장애 없이 직진할 수 있게 된다.
교통경찰의 지도도 단속도 필요 없었고, 도로 확장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신호 순서를 바꿨을 뿐인데, 교차로 문제가 해결되고 말았다. 누가 이 교차로를 분석하고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이뤄낸 발상의 전환으로 해서 벌어들인 수많은 운전자들의 시간과 돈 그리고 행정청의 예산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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