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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이 글은 99년 여름 낮은울타리 문화전문교사 양성학교 커리큘럼 중에 제출했던 내용이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낮은울타리는 기독교인의 경각심으로 자신들의 컨텐츠를 팔아먹고 살아 가는데, 이 커리에서의 핵심주제 역시 '신세대 문화의 문제와 그에 대한 대책'이었다. 나는 그런 주제에 반박했고 그래서 이 글을 제출했었다.
앞으로 쓰게 될 '볼링 포 컬럼바인' 감상문의 주제와 맥을 같이 하고 있고, 끊임 없이 이슈와 개념을 재생산 해내는 지금의 사회의 모습이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으며, 초등학생들을 특별히 '초딩'이라 지칭해 문제 있는 요즘 아이들로 비하하는 모습들을 보며 느낀 답답함 역시 이글을 올리기에 충분히 쌓였다. 그리 재미없는 글은 아니니 즐겁게 읽으시길.....
개념 만들기와 의미붙이기
김영상 정권 중기에 따 아닌 신드롬이 일어났다. 바로 '세계화', '국제화', '지구화'라는 개념의 등장이었다. 한창 활발한 외교활동이 진행되고 있을 때였고 각종 라운드가 등장함에 따라 그런 개념들이 그리 어색하게 들리진 않았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이 이 세 가지 개념을 주창하고 나섰을 때 학계가 보여준 자세는 보는 이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세계화', '국제화', '지구화'에 대해 앞을 다투어 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올바로 된 비평이었다면 모를까 그들의 연구결과는 언제나 찬양 일색이었고 각 신문 주요 칼럼에서 이 세 가지 개념의 의미와 각각의 차이점 등을 자신있게 써내려갔다. 그러나 난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세계화', '국제화', '지구화'가 서로 어떻게 다른 건가? 결국 그전까지 있어온 '국제화'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은가? 왜 굳이 개념을 만들고 의미를 붙이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 고민을 해결해 주지 못했고, 이내 김대통령의 발언은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이건 개념 만들기와 의미 붙이기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네 삶의 각 곳에서 그런 행태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모른다. 무슨 표지라도 보이기만 하면 사람들은 사회적 흐름이다, 시대적 사조다 외치기 좋아한다.(할 짓거리 없는 학자연하는 전문가들이 자주 하는 짓이다.) 몇 년전 '무서워 시리즈'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아니 유행이 아니었다. 어떤 '썰렁한' 녀석이 말도 안되는 우스개 소리를 몇 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주요 일간지 사회면에서 이 '무서워 시리즈'를 집중 보도하며 몇몇 심리학자 사회학자들의 말을 인용했는데, 그들에 따르면, '시대말적 공포심리의 집단적 표출'이란다. 정말 한심한 소리다. 또 얼마전 영국에서 출간된 '제 3의 길'이라는 책과 관련된 우리 나라 정치인들의 발언을 보면 가관이다. 책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도 없이 우리 나라 정치의 유일한 대안이 제 3의 길이라며 여야 가릴 것없이 목청을 높이지 않았는가.
신세대는 괴물인가
나는 '신세대'라는 개념 자체에 회의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만약 그것이 청년 이하의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계층을 지칭하는 생활용어로 사용된다면 말이다. 그런데 보면, 신세대를 어떤 사회학적 용어로 격상시켜 지금 그들이 정말 대단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생각하는 게 주류인 것 같다. 대표적으로 X세대니 Y세대니 하고 개념을 만드는 것 말이다.
웃기는 얘기다. '신세대'라는 개념을 즐겨 쓰면서 그들을 잘 이해하는 척 나서는 기성세대일수록 그런 경향이 농후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신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스스로 반증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선 신세대라는 개념 속으로 모든 청소년을 싸잡아 몰아넣는 잘못을 지적하고 넘어가자. '평균인 이론'이란 게 있다. 모든 사회집단을 통틀어서 그 내부에는 일정 비율의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똑똑한 사람, 멍청한 사람, 적극적인 사람, 수동적인 사람이 분포하고 있다는 이론이다. 사회 구성원의 양상은 너무나 다양하기에 그들 모두를 하나의 카테고리에 끼우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 그럼에도 학자연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명쾌하고 명료한 논리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하나의 지표라도 발견했다치면 여지없이 그아래에 전체를 포괄하려 든다.신세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거 기성세대가 살아왔던 시대와는 달리 자본주의의 전형이 지배하고 민주주의의 막이 올라간 이 때에 태어나 거기에 맞추어 살아간다는 점만 다르지,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세대다. 9시 뉴스에 '요즘 신세대들.....'하며 어떤 보도가 나오더라도 그게 전체의 모습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모든 언론은 황색 저널리즘의 숙명을 안고 있기에 그렇게 해서라도 '흥미있는 기사'를 만들어 내려하지만 기성세대는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나마 기성세대가 신세대 모두의 모습인 줄 알고 있는 그 부분적 양태마저 그토론 대단하고 위험한 성격의 것인가? 신세대는 전형적인 청소년의 또다른 개념이지 사회의 한 조류가 아니다. 쉽게 말해 청소년 시기에 누릴 수 있는 삶의 개방성의 폭이 넓어졌을 뿐이지 그들도 곧 기성세대에 편입된다는 얘기다. 몇몇 청소년들과 인터뷰하고선 '오, 정말 충격적인 사고방식인데.....'하고 놀라지 말라.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는 거야 누가 못하겠는가. 그들도 자신들에게 허용된 시간과 물질이 소진될 때에 가서 '철든'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게 아니다.
단적이 예 하나. 정말 잘 노는 날라리였었던 친구 한 명이 이렇게 말하더라. "그거야 옛날 얘기지. 어리니까 그저 좋아서 한 것이지, 어디 나이들어서도 그럴 수 있나?" 소위 신세대의 삶이란 그때만의 것일 뿐임을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건 기성세대가 청소년이었을 때도 그랬고 그전에도 그랬다. 왜 알면서도 그러는지 모르겠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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