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남에 대한 글을 여러 번 올렸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응원해왔고 그의 기쁨에 함께 웃고 그의 슬픔에 함께 아파했었습니다. 저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알콩달콩 좋은 인연이 이루어져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 계속 지켜본 사람입니다. 그런데 2주 전에 미련없이 기숙남을 제 관심사에서 지워버렸습니다.
시발은 10월 21일자 '그녀에게 맞았어요' 라는 제목의 글이었습니다. 그녀 앞에서 그녀의 남자친구를 추켜 세우고 자신을 비하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녀가
라고 말하며 자신을 때렸다는 줄거리입니다. 현실성이 없고 드라마적인 요소가 지나치게 가미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 올린 '그녀의 남자친구' 라는 글이 결정타였죠.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래대로 숨기기
(전략 - 그녀의 말의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본 후 고백해야겠다고 결심한 차에 학교 기숙사 앞을 지나가다가 그녀가 웬 짧은 머리카락을 한 남자와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내용)
그 남자, 그녀의 남자친구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첫 인상은 키도 저보다 큰 거 같고.. 얼굴도 준수하고..
옷도 정말 잘 입었더라구요.
기숙사로 걸어가는데 계속 왠지 모르지만 속이 울컥울컥 하더라구요..
그래서 멈춰 서서 다시 그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 앞에 서니
다시 쳐다보더군요..
주먹을 꽉 쥐고, 배에 힘을 주고 큰 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저: 저기요! 죄송하지만 저 그녀를 너무 좋아합니다!!!
정말 미안하지만!! 저 그녀를 너무 좋아합니다!
남자: ..
그녀: ..
이 부분에 이르러서 '이건 소설이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저것이 정말 일어난 일이고 실제로 기숙남이 했던 대사일 수도 있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가진 모든 합리적 사고력을 총동원해서 이해하고 또 이해하려 노력해보아도 일방 당사자가 제공한 텍스트 하나만으로 저것이 사실임을 믿어주기엔 역부족입니다.
이런 유형의 일이 드문 것은 아닙니다. 젯털 님이 참으로
기묘한 인연이라고 소개를 하시면서도 혹 자작극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던
'산타녀 투숙남' 사건은 자작임을 증명하는 집요한 댓글들이 계속 달린 끝에 작성자인 투숙남에 의해 삭제되고 말았습니다.
참고 자료 :
삭제 직전까지의 원문과 댓글 8백여 개를 갈무리한 파일 (워드패드용)
다 읽기는 버거우실테고, 문서의 맨 마지막 부분에 바이프람 님께서 작성하신 장문의 댓글만 읽어보시면 개략적인 진행내용과 분위기 파악이 가능하실 겁니다.
누리그물이 정보의 공급과 확산, 그리고 수용의 모든 측면을 과거에 비해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모습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덕에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이며 어떤 것에 감동받고 어떤 것에 분노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일은 그 바뀐 분량 만큼 우리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 같습니다. 그 틈을 비집고 먹물을 뿌리는 사람은 더욱 많아질 겁니다. 그것을 분별하는 것도 우리들의 몫일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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