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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린내 나는 공기청정기는 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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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에 대한 막연한 신뢰
가습기가 건강을 위하여 꼭 필요한 가전 제품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데에는 실질적인 기능 보다는 시각적인 효과 덕이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속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병원의 병실이나 일반 가정의 거실 한 구석에 놓여진 가습기에서 하얀 김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광경이 아닐런지요.
거기다가 매마른 실내 공기를 저 셀 수 없이 많은 수증기들이 촉촉히 적셔준다고 생각하면 더욱더 믿음직스러워집니다. 물론 가습기가 없는 집은 잠을 자기 전에 물을 한 대야 떠놓거나, 빨래를 방안에 널어놓으면 자연 가습이 된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하지만 가습기가 가진 저 시각적 효과 때문에라도 그런 자연 가습 방식은 못내 미덥지가 않고 '그래 가지고 될까' 하는 의문만을 남겼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희 집도 가습기가 세 대나 있었고, 낡아서 폐기한 한 대를 빼고도 두 대가 깨끗하게 정비된 채 사용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 그 중 한 대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하루 종일 가동되고 있었습니다. 문제의 이 가습기는 기기 내에 습도를 측정하는 센서가 달려 있어서, 현재 습도가 몇 퍼센트인지를 쉽게 알 수 있고 또 몇 퍼센트를 유지하도록 가습할지를 조절할 수가 있는 약간 고가의 기계입니다.
이 가습기를 맨 처음 가동시키면 방안의 습도는 약 30퍼센트인 것으로 표시됩니다. 하루 종일 틀어도 약 45퍼센트에서 50퍼센트를 못 넘어서기 때문에 과습 상태로 인해 정지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것을 보고 저는 '역시 건조한 계절이라 방안이 많이 건조하구나' 생각을 합니다. 천식이 있는 제 동생이 밤에 골골 대는 것을 보면서 그나마 가습기가 있기 때문에 다행이라 여기곤 했습니다.
가습기의 문제점 - 세균
그런데 요 며칠 사이, 가습기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저녁 시간에 방송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가습기 청소의 중요함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를 방송했던 것입니다. 매일 매일 청소를 한 가습기의 물과, 일 주일에 한 번 청소하되 가습기 보조액을 첨가해 사용하는 가습기 물과, 전혀 청소를 하지 않는 가습기의 물을 샤알레에 담아 세균 증식 여부를 살펴보았습니다. 결과가 어땠을까요?
두말할 나위 없이 청소를 하지 않는 가습기의 물은 세균 덩어리였습니다. 매일 매일 청소를 해준 가습기의 물에서는 세균이 배양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주목한 결과는 일 주일에 한 번씩 청소를 하면서 보조제를 사용한 가습기였는데,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가습기를 매일 청소해주는 것은 너무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가습기 물에서도 상당한 숫자의 세균이 검출되고 말았습니다. 진행자가 한 논평이 인상적이더군요.
"매일 청소를 해주지 않을 바에야 가습기를 안 쓰는 게 낫습니다."
가습기 물의 세균이 그렇게 문제가 되는가, 실생활에서 수많은 세균을 만지고 먹고 하는 게 오히려 당연하지 않은가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만,
초음파 가습기에서 만들어지는 물방울 크기는 1∼5 마이크론 정도이기 때문에 가습기 물방울은 세균을 실어 폐포에 직접 전달해주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가습기의 문제점 - 백분 현상
건강과는 관계가 없지만 이런 문제점도 있습니다.
백분 현상이라고 다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가습기를 가동하면 바닥이나 가전제품들, 특히 텔레비전 브라운관 표면에 흰 입자가 달라붙습니다. 수돗물에 포함되어 있는 석회질이 물방울을 타고 날아가 앉은 것이죠. 초음파 가습기를 사용하는 가정에서 가스렌지를 켜면 불꽃이 파란색을 내지 못하고 붉거나 노란색이 되는데 이것도 가습기에서 나온 석회질 때문입니다.
백분 현상은 단순히 그것을 닦아내느라 청소를 해줘야 한다는 것 이상의 문제점을 발생시킵니다. 바로 렌즈 부품이 들어 있는 광학 제품을 망가뜨린다는 것입니다. 이 백분은 유리와 같은 표면에 흡착되면 잘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집의 디브이디 플레이어나, 컴퓨터의 씨디(콤보 등) 드라이브의 렌즈에 붙어 인식율을 떨어뜨리고 심하면 미디어를 읽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런 문제점들은 초음파 방식이 아닌, 가열식이나 자연증발식 가습기를 사용하면 해결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대개 그런 종류의 가습기는 전력소모량이 과다하거나 고가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가격을 알아보다가 포기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이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문제점들은 사소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잉 습윤상태의 문제점
앞에서 언급한 가습기를 가동하면서 늘 의문이 들었는데, 왜 실내 습도가 이렇게 낮은데 방안은 눅눅하고 군내가 나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과연 실내 습도가 가습기에서 표시된 대로 30~40퍼센트가 맞는지 궁금해졌고 그러다 마침내 습도계를 구입했습니다.
습도 뿐만 아니라 온도계까지 포함된 이 제품은 가격이 매우 저렴(배송비 포함 8,000원)해서 고민 없이 결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도착한 이 제품을 벽에 걸어놓고서야 제가 알게된 사실...
가습기의 센서는 엉터리였던 것입니다.
습도계의 정확도를 알기 위해 창문을 모두 열어놓고 한 시간여를 기다렸더니 현재 습도가 약 50퍼센트임을 나타냈습니다. 그것은 당시(오후 6시경)
기상청에서 측정하여 공시한 값과도 일치하는 수치였습니다. 즉, 아무런 가습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미 방안은 습도 50퍼센트의 적정 습윤 상태였습니다.
그렇다면 가습기가 그동안 건조하다면서 뿜어온 수증기들은 실내를 과습상태로 만들어버렸다는 얘기가 됩니다. 과습이 되면 마냥 좋은 게 아니죠.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습니다. 25도의 온도에서 적정 습도 이상의 습윤 상태가 지속되면
집먼지 진드기가 이상 번식을 시작합니다. 익히 아시는 것처럼 집먼지 진드기는 알레르기성 천식, 두드러기, 접촉성 피부염, 아토피성 피부염, 알레르기성 비염 등의 알레르기성 질환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여러분의 가습기는 과연 여러분의 집안을 적정 습도의 상태로 유지시켜주고 있는지 의심해보셔야 합니다. 습도계가 달려있는 가습기조차도 믿을 수 없습니다. 저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엉터리 센서가 달려있다면 끝도 없이 무턱대고 수증기만 뿜어낼 테니까요. 습도계가 달려 있지 않은 가습기의 경우는 더 문제입니다. 가습기가 보여주는 시각적 효과 때문에 계속 틀어놓기만 하지, 어느 정도까지가 적정 습도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습도계를 사서 실내 습도를 재어 볼 생각을 한 것이 저입니다만, 여러분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자연 가습으로도 적정 습도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거든요.
자연 가습만이 해법
가로 세로 20x40cm 정도의 쟁반에 물을 담은 사발을 올리고 사진처럼 부드러운 소재의 수건을 빗겨 걸어놓습니다. 저는 항균 효과가 있다고 하는 극세사 타월을 사용했습니다. 저렇게 해두면 조금씩 물이 흘러서 쟁반 위로 찰랑찰랑해집니다. 이 상태로 놔두면 방 안의 습도는
항상 50~55% 선에서 유지가 됩니다. 밤이나 낮이가 변함 없이요(그 상태에서 습도를 조금 내리기 원한다면 창문이나 방문을 5cm 가량 열어두면 됩니다).
혹시나 해서 저것과 함께 빨래까지 널었더니 과잉 습윤 상태가 되더군요. 즉, 저렇게만 해도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겁니다. 가습기가 절!대! 필요 없습니다.
따져봅시다. 초음파식 가습기는 매일 청소를 해주어야 합니다. 가열식 가습기는 전기를 너무 많이 먹고요. 게다가 정확한 센서가 달려 있지 않으면 실내 습도가 올라가 집먼지 진드기의 천국이 된단 말입니다. 따라서 가장 좋은 가습기가 자연 가습식 가습기인데, 그렇다면 굳이 비싼 돈 들여 살 필요가 있을까요? 쟁반 하나, 사발 하나, 수건 하나면 충분한데 말입니다.
세 줄 요약
1. 일반 가습기는 실내를 과잉 습윤 상태로 만들어 오히려 건강에 해악이 된다.
2. 습도 센서가 있는 가습기 조차도 그 성능을 확신할 수 없다.
3. 물 한 사발이나 빨래를 이용한 자연 가습에 대한 편견을 버리자. 그걸로도 가습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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