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섬 바닷가 - 유격의 추억'

화이바에 붙이는 유격번호(올빼미번호라고 한다.)

대개의 경우 2년여의 군생활동안 두 번의 유격훈련을 받게 되는데 2001년 가을의 유격이 내게 그 두 번째의 유격훈련이었다. 유격훈련은 대략 이런 것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1천미터 오래달리기를 하고선 터질 것 같은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누군가 채찍을 들고 그것을 1천 번 반복하게 하는 것...... 말로 어떻게 설명을 하겠냐마는 유격을 뛰고 나면 이따금 화면에 등장하는 연예인이나 학생들의 일일 병영체험에 등장하는 유격훈련을 보았을 때 분연히 떨쳐 일어나 '저건 유격이 아니다!'고 피눈물을 쏟으며 변론할 수 있을 만큼 '한'이 쌓이게 된다. 유격훈련이 다가오면 대함마(영화 <미저리>의 그 큰 해머)로 제 발을 찍어서라도 후송 가겠다는 농담이 나오는 게 그런 이유에서다. 아무튼 유격이란 그런 것이다.

유격훈련의 강도에 대하여는 '유격복'이란 것을 설명해야 한다. 유격훈련은 텔레비전에서 보이듯 외줄을 타거나 그물을 오르는 것이 아니다. 그 잘난 외줄을 한 번 타기 위해 몸이 걸레가 될 때까지 구르고 기어야 한다.(42.195km를 달리면 새우깡 한 알을 준다고 생각해보라. 그런 식으로 새우깡 한 봉지를 다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그러니 전투복이 성할리가 없다. 그래서 걸레로 만든 '유격복'이란 것이 따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날은 유격 3일째였다. 연병장에서 한참을 구르다 바지가 찢어졌다. 잠시나마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 감사하며 갈아입을 옷을 찾기 위해 중대 상황실로 들어갔다. 유격복이 찢어진 중대원 1명이 이미 와 있었다. 그는 내 고참이었는데 눈빛이 마주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짬밥의 왕국 <군대>에서도 유격앞에서는 선임병 후임병 구분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후 우리 둘은 비장의 결단을 내리게 된다.

그게 내 제안이었는지 그 고참의 제안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따져보니 유격복을 갈아입기 위해 열외하는 과정에서 인원체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따라서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상황실을 지키고 있던 당시 일직하사 강병학 병장은 -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 이해한다며 "나는 너희들을 못본거다"라고 말했다. 우리 둘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심정으로 할렐루야를 외치며 상황실 뒤편, 중대 숙영지로 내달아 가장 구석의 A텐트에 숨어들었다. 처음에는 군기를 위반한다는 두려움에 긴장감이 목을 죄어 왔으나 10분도 지나지 않아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다.

덧. 우리가 잠들어 있던 것은 3시간여였는데 그 사이 중대에는 꽤 큰 일이 있었다. CP(중대장실) 텐트를 지키던 1호차 운전병 황재현 상병이 난로에 기름을 부은 후 기름통 뚜껑을 잠그지 않고 방치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기화된 난방유가 텐트를 가득 채운 상태에서 그는 한가로이 담뱃불을 붙였고 CP는 폭발;;해버렸다. 연병장에서 훈련받는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대단했었다는데, 우리 두 도망자는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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